[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짬뽕 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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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짬뽕 해장국
2025년 04월 10일(목) 00:00
민족이나 국가마다 각기 다른 음식 문화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독특한 식사 문화, 관습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또렷한 온대성 기후, 해양을 접하고 토질이 다양한 국토의 특징, 침략과 저항으로 점철된 역사 등 조건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수많은 대륙과 해양(일본)의 침략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으니 그들과 섞이면서 생겨난 음식 문화가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환경에서 한국만의 무엇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꺼내드는 건 해장 문화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해장이 없는 건 아니다. 술 좋아하는 나라가 한국만 있는 건 아니니까. 레몬즙이나 커피를 마신다거나 스프를 먹기도 하고, 된장국(일본)으로 해장을 한다. 하지만 해장 내지는 해정(해장의 원래 낱말. 술 취한 상태를 푼다는 뜻)이란 말이 이토록 일상적이고 당연시되는 나라는 단연코 없다.

술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마시는 나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은 순 알코올 소비량 순위에서 48위에 불과하다(data commons). 물론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아니라 음식과 술 문화가 조화된 형태로 즐긴 선조들의 영향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륙성 기후가 미치는 국토 때문일 수도 있다. 해장국은 대개 뜨거운 국물이다. 물론 더 추운 나라가 많다는 점에서 적절한 예시는 아니다.

어떤 해장국집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붙여놓은 걸 본 적이 있다. 옛날 남한산성 인근에서 해장국을 끓여 옹기에 담아 밤새 달려 도성 안에 배달하는 문화가 있었다는 거다. 이걸 해정갱(解酊羹)이라 하여, 해장국의 중요한 기록으로 본다는 것이다. 갱이란 국을 의미한다. 어쨌든 시중의 식당에서 여러 해장국을 파는 건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렵다. 게다가 해장국에 해당하는 형식도 매우 다채롭다. 복어국(복국), 북엇국, 콩나물국, 소 선지국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장국은 음식문화 전공자라면 연구해서 세계 학회에 보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역사성과 민족성이 결합된 아주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서울은 보통 소 선짓국을 해장국 삼아 많이 먹었다. 사 먹는 음식의 경우에 그랬다. 그냥 ‘해장국’ 하면 소 선짓국을 의미했다. 선지, 소 뼈, 우거지 등을 넣어 끓이는 게 표준적인 방식이다. 이런 음식으로 100년 가까이 살아남아 여전히 장사를 잘하는 가게도 있다 (종로의 청진옥). 서울은 소를 많이 잡는 도성이었고, 일꾼과 술꾼도 많아 해장국 수요가 컸다. 큰 가마솥을 걸고 상업지구에서 장사를 한 것이 해장국의 효시로 짐작한다.

돼지를 좋아하는 제주도에서 특이하게 소 부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해장국이 아주 유명하다. 제주 맛집을 얘기할 때 여러 개의 해장국집이 거론될 정도다. 실제로 맛도 아주 좋다. 전주 등 전북지역에 가면 콩나물국이 아주 유명하다. 콩나물이 맛있고 물이 좋아서 그렇다고들 한다. 과연 각별한 맛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 역사적인 해장국에 도전장을 던진 현대의 음식이 있다. 짬뽕이다. 짬뽕 해장은 꽤 순위가 높다. 아마도 5위권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원래 중국집의 메뉴였다가 아예 짬뽕만 하는 독립업소(?)도 많다. 짜장은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짬뽕만 그렇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얼큰한 국물이 해장국과 비슷해서 그렇지 않을까. 짬뽕은 원래 채소와 고기를 볶아서 약간의 국물을 부어 내는 일종의 기름기 많은 볶음면에 가깝다.

일부 지역의 중국집에 남아 있는 수소면이라는 게 그 흔적으로 보인다. 수소면은 ‘불맛’이 나는 자작한 국물의 탕면이다. 수소면 같았던 초기 짬뽕이 한국인의 해장국 스타일로 변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 기름을 적게 쓰고 세게 볶지 않아서 가볍고 시원한 짬뽕이 보통이다. 짬뽕으로 유명한 군산의 한 가게에 들렀더니 조개와 채소를 넣고 국물을 넉넉하게 잡아서 한국식 해물탕 같은 음식을 내고 있었다. 짬뽕의 기원은 짜장면과 달리 그 역사가 불분명한데, 아마도 한국인의 해장 입맛에 맞추느라 변해버려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오늘 해장은 짬뽕으로 하면 어떨까. 나도 그런 해장을 즐기는데, 한 가지 특별 주문을 건다.

“면은 절반만 넣어주세요!”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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