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의 ‘여백서원에서’] 어려운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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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의 ‘여백서원에서’] 어려운 한 마디
2025년 06월 12일(목) 00:00
서른일곱 살 괴테가 했던 2년여의 이탈리아 여행은 독일이라는 한 나라의 문학사가 질풍노도기에서 고전기로 바뀌는 기점이 된다. “마흔이 되기 전에 공부 좀 해야겠다”며 1786년 9월 3일 새벽 3시 아무도 모르게 이탈리아로 떠날 때 그가 ‘유일한 동반녀’라면서 함께 떠난 것이 ‘이피게니에’의 원고 뭉치이다. 산문으로 써서 무대에 올리며 출연까지 했던 작품을 괴테는 긴 여행 중에 공들인 운문으로 개작했고 그 작품 ‘이피게니에’, 정확히는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는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한 작품이 되었다.

주제는 화해인데 소재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 아마도 가장 잔혹한 이야기, 탄탈루스 가문의 이야기이다. 신들의 식탁에 함께 앉던 뛰어난 인간 탄탈루스는 신을 시험하려 든 오만으로 인하여 그 징벌을 자신만 받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인육을 그 아비에게 먹이는 등 입에 담기도 끔찍한 잔혹한 존속살해의 저주가 자손대대로 이어진다.

괴테가 다루는 부분은 아가멤논의 자식들, 즉 그 저주를 마침내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트로이를 몰락시킨 후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미케네 왕궁으로 귀향하지만 아내 클뤼템네스트라와 정부의 손에 죽는다. 표면적 이유는, 트로이로 갈 때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딸 이피게니에를 제물로 희생시켰기에 딸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아들 오레스트는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죽인다. 거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고, 그 후 복수의 여신들의 추적으로 광증에 시달리며 가문에 내려진 저주를 풀려는 오레스트의 행적에다 운명의 무게를 무겁게 얹어 조명한 것이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괴테는 이피게니에의 내면을 집중해서 비춘다. 제물이 되었던 이피게니에는 죽지 않고 다이아나 여신의 호의로 구출되어 타우리스라는 먼 야만국의 외로운 바닷가에서 그 신전을 지키는 여사제로 등장한다. 그녀는 그곳의 야만적 풍습 한 가지를 그치게 할 수 있었다. 해안에 와 닿는 모든 이방인을 인신공양 제물로 바치던 악습을 타파한 것. 운명에 대한 성찰,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무엇보다 그녀의 부드럽고 고결한 성품이 부각되어 있다.

처녀로서 사제의 직분을 지켜나가려는 이피게니에가, 노령의 왕 토아스의 구혼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것이 극의 발단이다. 최종적 거절을 듣고 노한 왕은 인신공양의 옛 풍습을 부활시킨다. 그리하여 해안에 와 닿은 이방인 둘이 바쳐질 희생 제물로 끌려 오는데, 이피게니에가 자기 손으로 희생시켜야 하는 그 이방인들이 바로 거의 광인이 된 동생 오레스트와 그 절친 필라데스이다. ‘누이’를 데려오면 가문의 저주가 풀린다는 아폴로의 신탁에 따라 아폴로의 누이 다이아나(아르테미스)여신의 신상을 훔쳐가려고 온 것이었다. 이피게니에는 극적으로 상봉한 아우를 자기 손으로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런데 신탁의 ‘누이’를 아폴로의 누이, 즉 다이아나 여신으로 해석한 건 오해였고, 그것이 실은 오레스트의 ‘누이’ 이피게니에임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출생과 사연을 왕에게 밝힌 이피게니에는 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을 호소한다. 왕의 구혼을 물리치고, 명령과 직분도 어기며 떠나려는 사람이 체념하거나 굴복하거나 도주하지 않고 에두름 없이 정직하게, 마침내 좋은 마음으로 떠나 보내줄 때까지 간곡히 허락을 구한다. 야만국 국왕의 인간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결국 노여움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왕이 신상까지 훔쳐가려던, 제물이 되었어야 할 이방인들과 이피게니에를 보내주며 축복의 말로 전송함으로써 휴머니즘의 대미가 이루어진다.

더없이 잔혹한 소재에서 저주의 사슬을 끊는 결말을 끌어내는 것이 이 작품이다. 그걸 하는 결정적인 한 마디가 국왕의 잘 가라는 인사이다. 헤어질 때의 인사이지만 통상의 ‘또 봐(아우프 비더 제엔·Auf Wiedersehen)’가 아니라, 무게가 실린 안녕히 ‘잘 살아(레베 볼·Lebe wohl)’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작품은 그 한 마디에 힘을 싣는 설득력을 구축해가는 과정이고 전체가, 모든 갈등을 푸는 화해를 이루어냄으로써 운명의 저주까지 끊는 한 여성의 부드러운 고결함의 부각이다. 그럼으로써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말 한 마디가 그만큼 어렵게 나왔고 그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이 실렸다. 화해의 말이란 본디 쉽게 나오지 않지만 단번에 모든 문제를 풀기도 한다. 단, 한 인간 전체의 고결함과 진심에 기반하고 있을 때이다. 진심과 실행이 따르지 않을 때는, 한 마디든 긴 사설이든 공허해지고 그런 화해의 제스처는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킨다. 사회적 차원의 것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기쁘게도 이즈음 우리가 사회적으로 도모하고 있는 것에 부디 만인의 힘이 모였으면 한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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