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극장 없이는 못살아’] 위대한 독학 피아니스트 브렌델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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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계에는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이 참 많다. 그 많은 음표를 외워서 콘서트홀에서 틀리지 않고 완주하는 것만 해도 늘 경이로운데 그런 연주자들 중에서 해석과 터치가 특별하고 세계의 많은 클래식팬들에게 찬사와 갈채를 받는 위대한 연주자로 우뚝선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영감과 예술적 경험을 청중에게 선사하는 존재들이 있으니 바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렐스, 마우리치오 폴리니, 예브게니 키신 그리고 우리의 젊은 아티스트 조성진, 임윤찬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여신 뮤즈처럼 청중에게, 음악감상자들에게 귀의 황홀로 행복한 만족감을 주는 예술가들이다. 한국 악기의 백악지장이 거문고라면 서양악기의 백악지장은 바로 피아노다. 피아노 한 대로 모든 악기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고 수많은 감정을 잡아내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유학하던 시기 음악원은 피아노과를 위해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 일찍 연습실을 잡으려고 해도 대부분 연습실을 선점하는 건 피아노과 학생들의 몫이었다. 가장 먼저와서 연습실을 선점했고 이 친구들은 하루 왼종일 엄청난 음량으로 연습을 계속 해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역대 우승자 등 러시아 국위선양에 1등 공신들인데다가 워낙에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전통과 계보가 있다보니 모스크바 음악원도 늘 피아니스트들에게 특별대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최근에 임윤찬이 한번 연습실에 들어가면 화장실에도 가지 않은 채 9시간을 나오지 않고 계속 초인적으로 연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중을 흥분시키고 큰 감동을 주는 연주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독공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다시 알려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런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중 세계 클래식 팬들의 존경을 받는 명망높은 거장 알프레드 브렌델이 지난 6월 17일 94세를 일기로 자택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1931년 체코 태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피아니스트로 꽃을 피웠다. 그는 “16세 이후에는 피아노 스승이 없었다”고 했는데 대신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음악적 성과와 명성을 독학으로 이뤄낸 그는 “홀로 발견해나가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스승의 가르침과 방향성 제시가 가장 절실해보이는 청소년기에 브렌델은 홀로서기를 한 것이다.
요즘 우리 시대에는 스승없이 혼자서 피아노를 공부해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장점은 확실하게 있었다. “나는 피아노 학파를 믿지 않는다”는 브렌델의 이야기처럼 스쿨이라고 하는 프랑스 학파, 독일-오스트리아 학파, 러시아 학파 이런 규정에 함몰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취사선택해서 자신의 것을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주를 브렌델은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이후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같은 빈 고전주의, 낭만주의 초기의 한정된 작곡가와 레퍼터리에 천착한 그는 특히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렸다. 이 레퍼터리들을 반복해서 공연하고 녹음해서 음반으로 발표했으며 두려움 없는 차가울 정도의 이지적이고 감정이 과장되지 않는 분석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아무도 하이든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주요 레퍼터리로 삼지 않았을 때 그는 이 레퍼터리들로 자신의 굳건한 궁전을 세웠다.
2021년에 프라하에 이마에스트리 공연을 하러 갔다가 브렌델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했다. 브렌델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마스터클래스였다. 체코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트리오 인첸디오는 많이 혼나며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트리오도 나도 정말 많이 배웠다. 90세의 연세에 귀도 정말 좋으셨고 몸은 불편했고 펜데믹 기간이었지만 엄청난 열정으로 중간 약간의 인터미션을 제외하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1악장부터 4악장까지 한 프레이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꼼꼼하고 꼬장꼬장하게 트리오에게 진정한 슈베르트 연주를 요구했다. 제일 재미있었던 건 “누가 너한테 그렇게 연주하라고 이야기해줬니?”라고 반복할 땐 객석에서 웃음이 타져나왔다.
체코 출신인 그는 직접 피아노로 들려줄 수는 없었지만 언어로 체코 청년 음악가들에게 음악적인 영감과 자신의 깨달음을 더 많이 전달해주고 싶어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이제 그는 타계했지만 많은 피아니스트와 음악팬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남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내가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유학하던 시기 음악원은 피아노과를 위해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 일찍 연습실을 잡으려고 해도 대부분 연습실을 선점하는 건 피아노과 학생들의 몫이었다. 가장 먼저와서 연습실을 선점했고 이 친구들은 하루 왼종일 엄청난 음량으로 연습을 계속 해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역대 우승자 등 러시아 국위선양에 1등 공신들인데다가 워낙에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전통과 계보가 있다보니 모스크바 음악원도 늘 피아니스트들에게 특별대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이런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중 세계 클래식 팬들의 존경을 받는 명망높은 거장 알프레드 브렌델이 지난 6월 17일 94세를 일기로 자택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1931년 체코 태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피아니스트로 꽃을 피웠다. 그는 “16세 이후에는 피아노 스승이 없었다”고 했는데 대신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음악적 성과와 명성을 독학으로 이뤄낸 그는 “홀로 발견해나가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스승의 가르침과 방향성 제시가 가장 절실해보이는 청소년기에 브렌델은 홀로서기를 한 것이다.
요즘 우리 시대에는 스승없이 혼자서 피아노를 공부해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장점은 확실하게 있었다. “나는 피아노 학파를 믿지 않는다”는 브렌델의 이야기처럼 스쿨이라고 하는 프랑스 학파, 독일-오스트리아 학파, 러시아 학파 이런 규정에 함몰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취사선택해서 자신의 것을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주를 브렌델은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이후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같은 빈 고전주의, 낭만주의 초기의 한정된 작곡가와 레퍼터리에 천착한 그는 특히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렸다. 이 레퍼터리들을 반복해서 공연하고 녹음해서 음반으로 발표했으며 두려움 없는 차가울 정도의 이지적이고 감정이 과장되지 않는 분석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아무도 하이든과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주요 레퍼터리로 삼지 않았을 때 그는 이 레퍼터리들로 자신의 굳건한 궁전을 세웠다.
2021년에 프라하에 이마에스트리 공연을 하러 갔다가 브렌델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했다. 브렌델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마스터클래스였다. 체코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트리오 인첸디오는 많이 혼나며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트리오도 나도 정말 많이 배웠다. 90세의 연세에 귀도 정말 좋으셨고 몸은 불편했고 펜데믹 기간이었지만 엄청난 열정으로 중간 약간의 인터미션을 제외하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1악장부터 4악장까지 한 프레이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꼼꼼하고 꼬장꼬장하게 트리오에게 진정한 슈베르트 연주를 요구했다. 제일 재미있었던 건 “누가 너한테 그렇게 연주하라고 이야기해줬니?”라고 반복할 땐 객석에서 웃음이 타져나왔다.
체코 출신인 그는 직접 피아노로 들려줄 수는 없었지만 언어로 체코 청년 음악가들에게 음악적인 영감과 자신의 깨달음을 더 많이 전달해주고 싶어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이제 그는 타계했지만 많은 피아니스트와 음악팬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남을 것이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