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극장 없이는 못살아’] 암스테르담 말러페스티벌처럼 긴 호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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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범의 ‘극장 없이는 못살아’] 암스테르담 말러페스티벌처럼 긴 호흡으로
2025년 05월 29일(목) 00:00
1888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암스테르담의 음악당인 콘세르트허바우에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페스티벌이 1995년 이후 30년 만에 다시 열렸다. 원래는 5년 전인 2020년에 이 페스티벌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펜데믹 때문에 드디어 올해 열리게 된 것이다. 원래 계획은 말러 교향곡 1번부터 미완성작인 10번 그리고 ‘대지의 노래’까지 11개의 작품을 5월 8일부터 18일까지 밤마다 공연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워낙 국제적인 클래식팬들의 열렬한 관심이 쏟아져 이 페스티벌은 이미 일년 전에 모두 매진되었고 페스티벌 측은 부랴부랴 저녁 레퍼토리와 같은 낮 공연도 만들어서 두 번씩 공연했지만 역시 모두 삽시간에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최측은 1995년과는 다르게 콘세르트허바우 공연장 인근 본델 파크에 1500석 규모의 야외 텐트형 공연장(말러 파빌리온)을 설치해놓고 누구나 무료로 와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바닥도 완벽하게 닦아놓아 휠체어를 타고 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세심히 신경을 썼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등록만 하면 핸드폰이나 PC로 공연 라이브 스트리밍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공연장 안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함께 즐길 수 있게 만든 점이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필자는 1995년부터 이 말러페스티벌에 가고 싶었지만 워낙 일찌감치 매진이 되어 “이번에도 못가는구나”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양도표를 받아 말러 교향곡 9번, 8번, 10번과 ‘대지의 노래’ 3개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떤 분들은 “말러 페스티벌이 왜 말러의 주요 무대였던 빈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냐”고 의아해하며 질문한다. 이 엄청난 규모의 국제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유는 말러가 암스테르담을 1903년,1904년, 1906년, 1909년, 1910년까지 모두 5차례 방문해서 교향곡 1번, 2번, 3번, 4번, 5번, 7번 그리고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까지 공연한 데서 기인한다.

24세부터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아온 네덜란드의 젊은 천재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그는 말러가 20세기의 베토벤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초대해서 1903년에 처음 3번 교향곡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공연 지휘를 하게했고 당시 1번 교향곡도 부탁하면서 그와 매우 친해졌다. 말러가 멩겔베르그를 ‘젊은 말러’로 생각할 정도였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3번을 처음 리허설한 말러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나의 호흡을 멈추게 했다. 정말 최고의 오케스트라이며 정말 준비가 잘되어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첫 공연이 끝난 후 “어젯밤 연주가 정말 숭고했다”고 부인 알마에게 편지를 썼을 정도로 말러는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홀을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다. 빈으로 돌아간 말러가 멩겔베르그에게 쓴 편지에서 “난 두 번째 음악의 고향을 암스테르담에서 찾은 것 같소”라고 했을 정도로 암스테르담은 말러의 유럽에서 두 번째 집이 되어주었다.

18일 마지막 날 공연에서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8번 천인교향곡을 클라우스 매켈레가 지휘하기 전 한 부인이 등장해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말러와 알마 부부의 친손녀가 아닌가! 그녀는 정말 “이 오케스트라야말로 말러가 가장 좋아한 오케스트라다”며 말러 페스티벌이 암스테르담에서 왜 열리는 가에 대한 이유를 증명해 주었다.

말러가 1911년 50세를 일기로 빈에서 심내막염으로 세상을 떠나자 슬퍼하던 멩겔베르그는 오랜 준비 끝에 1920년 암스테르담에서 첫 말러 페스티벌을 열었다. 두 번째 페스티벌은 1995년 명장 리카르도 샤이가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던 시절 75년만에 다시 열렸다. 샤이는 물론 사이먼 래틀, 리카르도 무티라는 거장 지휘자들과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베를린필, 빈필,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들을 연주했다. 금년에는 5월 8일부터 시작되었고 말러가 세상을 떠난 날을 기념하며 5월 18일에 끝났다.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키릴 페트렌코와 베를린필 등의 말러교향곡 전곡 연주외에도 말러 가곡을 세계의 다양한 성악가들과 함께 연주했는데 최초로 시카고심포니와 NHK심포니 등 미국과 아시아(일본)오케스트라가 함께 했다는 점도 말러 페스티벌을 글로벌화하려는 의도를 읽게 한다.

1920년에 시작해서 2회 페스티벌을 1995년에, 3회 페스티벌을 2025년에 치른 암스테르담 콘세르허바우 4회 행사는 언제 치러질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우리 시대에 다시 한번 경험하고 싶다. 이런 오래 준비하는 긴 호흡의 페스티벌을 우리도 소유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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