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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른 대나무 같은 절개를 보다
호남 누정-광주<18> 균산정
문용현 유지 받들어 아들 문인환 1921년 건립
북구 청풍동 위치…팔작지붕 정면 3칸·측면 3칸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주변에 대나무·소나무
계곡 건너 400년 된 보호수, 누정 정취 오롯이
2023년 11월 19일(일) 20:15
광주시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에 있는 균산정(筠山亭)은 1921년 문인환이 부친인 균산 문용현의 유지를 받들어 지은 정자다.
“내 벗이 몇 인고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더하여 무엇하리.”

그 누정을 가면서 고산(孤山)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떠올랐다. 고산은 자신의 벗은 다섯이라 했다. 물과 돌,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동산에 떠오르는 달이 그것이다. ‘다섯 친구면 족하다’는 표현은 벗으로 삼을 만한 이가 자연 외에는 없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만추의 시간이 시나브로 흘러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올해 첫눈까지 내렸다. 이제 시간은 한해의 끝자락을 향해 줄달음칠 것이다. 날씨가 점차 추워지고 세밑이 다가올수록 문득문득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오랜 벗이 그리워지는 건 인지상정.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무엇에 비할 바 없는 보석과도 같다. 그러나 벗이 꼭 인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고산의 오우가처럼 자연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반려동물이, 또 어떤 이에게는 애지중지하는 특정한 사물일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오우가’에는 사람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균산정(筠山亭). 광주시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에 있는 정자다. 균산정을 찾아가면서 ‘균’(筠)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균(筠)은 대나무의 일종 또는 대나무의 푸른 껍질을 뜻한다. 균산정에 추운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푸른 대나무와 같은 절개가 투영돼 있을 거였다.

언어와 존재는 불가분의 관계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시사철 푸른 빛깔은 대나무를 지칭하며 그것은 곧 절개로 수렴된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에 그린 세한도(歲寒圖) 속 글귀 ‘추운 계절이 온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름을 안다’는 말도 동일한 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균산정은 남평문씨 균산(筠山) 문용현(1837~1886)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아들 해사(海使) 문인환이 1921년에 지은 정자다. 이후 1961년 지붕 개와를 하였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균산 문용현은 노사(蘆沙) 기정진의 제자로 많은 후학을 배출했다. 그의 5대조 문필상은 수헌(水軒)이라는 별당을 짓고 학문을 연마하며 후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집은 무너져 없어졌다 한다.

문용현은 늘 선조들의 학문과 유지를 떠받고자 했다. 자신의 대에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아들 인환에게 전한다. 부친의 유명을 받은 인환은 언젠가는 그 뜻을 실행하리라 다짐한다. 여러 사정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뜬 35년 후인 1921년 누정을 건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름을 선친 균산의 호를 붙여 ‘균산정’이라 명명했다.

예상했던 대로 균산정 뒤편에는 대나무와 시누대가 펼쳐져 있다. 그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병풍처럼 에두르고 있는데 야산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와 여러 수종이 섞여 있어 단출하다. 앞쪽으로는 풍광에 맞춤한 맑은 계곡이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내(川)의 가장자리는 큼지막한 돌들을 잇대어 구획을 지었다.

달이 뜨는 보름이면 둥그런 달빛이 계곡에 살포시 어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다섯의 벗이 어우러지는 진경이 펼쳐질 것 같다. 송죽과 수석 그리고 달빛이 정자를 에워싼 풍경은 엄동설한의 추위마저 저만치 물리칠 것도 같다.

서쪽 언덕에 서너 칸 정자 들이니

흔들리는 대나무그늘 먼지를 쓰는 듯

서석의 정기는 문 앞에 가득하고

영천의 낙수는 뜰을 따라 흐르네

선인의 유훈 받들려니

처사의 노래 길 따라 이어지네

어찌 부모의 뜻 이었으리오

그저 말없이 애잔하게 술잔만 만지네

(문인환, ‘균산정운’)

선친의 뜻을 받들려는 아들의 깊은 효심이 읽힌다. 이곳의 풍경 또한 화폭을 펼친 듯 삽상하게 흘러간다.

정자 내부에서 바라본 탁 트인 풍경.
누정이 자리한 곳은 하천으로부터 지근거리다. 높은 축대 위에 정자를 들인 것은 혹여 수해에 대비한 방책이었을 것이다. 돌담 사이로 늦가을 화초들이 피어 있다. 서리가 내리고 첫 눈도 내렸는데 여전히 빛깔이 고운데다 잔향도 그윽하다. 뒤로는 송죽이, 담 아래로는 화초가 버성기듯 자리한 모습이 균산정이라는 누정의 이름과 맞춤하게 떨어진다.

팔작지붕의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돼 있다. 도리 석초에 도리 기둥의 골기와 형태다. 정자의 가운데에는 여느 정자와 다르게 정 사각형의 거실이 꾸며져 있다. 문을 열면 조선의 선비가 서안에 앉아 서책을 들여다보는 모습과 마주할 것 같다.

균산정 앞 공원에 있는 400년된 당산나무와 입석들.
정자 왼쪽으로는 석축토담이 에둘러 있고, 그 옆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괴석이 담을 받치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자 병풍처럼 담을 에두른 대나무와 시누대가 흔들린다. 청풍동이라는 지명이 환기되면서 청아한 대나무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환청이다. 대의 살갗이 유독 푸르러 시린 겨울에는 누정의 정취가 더 오롯이 전달될 것 같다.

계곡 건너편으로 400년 된 보호수가 서 있다. 가운데에 두 개의 큰 입석과 하나의 작은 입석이 있는데, 당산나무 사이라 마치 기다란 돌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때마침 마실을 나온 노인 한분이 당산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조근조근 전해준다. “아주 오래 전인 어느 해에 비가 많이 내렸었지요. 마을 앞에는 들이 있고 큰 보가 하나 있었는데 자칫 보가 터지기 직전이었소. 자칫하면 마을이 큰 물난리를 입을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던 게지.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당산나무에 모여 고사를 지냈다오. 얼마 후 지극정성에 감동을 했는지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분이 정자나무에서 나타났소. 흰옷을 입은 노인은 물이 넘쳐 흐르는 보를 향해 긴 막대기를 저었는데, 갑자기 보가 둘러 갈라졌던 게지. 그러더니 물이 저편 개울로 흘러들어갔고, 다행히 마을은 큰 화를 면했던 것이오.”

이곳에서는 지난 1990년대까지 정월 대보름날이면 당산제를 지냈다 한다. 지금은 시대 변화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여느 시골 마을이면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마치 실재했던 일처럼 다가오는 것은 주위의 모든 풍경이 생생한 장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호수 주위로 아담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지오빌리지청풍마을’. 한자와 영어와 한글이 뒤섞인 조어 때문일까. 다소 뜨악하지만 그럼에도 ‘자연’, ‘푸르름’ 등을 담고 있어 의미만큼은 각별하게 다가온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