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역사를 기억하는 법 7] 독일 뉘른베르크, 곳곳 나치와 히틀러의 흔적…부끄러운 역사 현장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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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역사를 기억하는 법 7] 독일 뉘른베르크, 곳곳 나치와 히틀러의 흔적…부끄러운 역사 현장 보존
히틀러가 사랑했던 도시
1933년~1938년 나치전당대회
2차대전 전범재판 열린 법정 보존
나치당 기록센터에 자료 전시
2022년 11월 15일(화) 21:30
독일 뉘른베르크는 나치와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였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나치전당대회장은 역사의 교훈을 들려준다.
세계 1·2차 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쟁 당사자였던 독일의 많은 도시는 세계사(史)의 현장일 수밖에 없다. 1939년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세계 2차 대전의 사망자수는 공식적인 집계만으로도 5000만명이 넘고 학살된 유대인은 600만명에 달한다.

바이에른주를 대표하는 두 도시 뮌헨과 뉘른베르크는 나치와 인연이 있다. 뮌헨은 나치 전당대회가 가장 먼저 열렸던 도시였고 다하우강제수용소에서는 많은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뉘른베르크는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세련된 느낌의 뮌헨을 떠나 뉘른베르크로 향했다. 악명높은 독일 기차의 연착으로 1시간 40분 걸려 도착한, 인구 50만의 도시 뉘른베르크는 중앙역 바로 앞 고성이 눈에 띄는 차분한 느낌이었다. 뉘른베르크는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르는 도시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도(古都)의 풍광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고향,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 등 여행자로 즐기는 낭만적 요소가 그 첫번째다.

나치당전당대회 기록센터
또 하나는 나치와 히틀러의 도시라는 이미지다. 1934년 나치 전당대회 모습을 담은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는 강렬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히틀러가 하늘에서 마치 ‘신처럼’ 등장하고, 수십만명의 대중들이 열광하는 모습 등을 담은 4일간의 기록은 나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전당대회 현장이 바로 뉘른베르크다. 군소정당이었던 나치는 이 곳을 지지 기반으로 힘을 키우고, 독일을 장악한다.

뉘른베르크는 2차 대전 후 전범 재판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또 독일내 유태인의 독일국적을 박탈하고 유태인과 독일인의 성관계와 결혼을 금지하는 한편, 유태인의 공무 담임권을 박탈한 일명 ‘뉘른베르크법’이 제정된 곳이기도 하다.

세계 2차 대전 과정에서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뉘른베르크는 복원됐고, 그들은 나치 전당대회장 등 자신의 과오를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전당대회가 열렸던 체펠린 광장의 연단.
뉘른베르크에서는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매년 9월 6번의 나치 전당대회가 열렸다. 당시 인구 40만명 정도의 뉘른베르크에 전국에서 100만여명이 모여들었고, 나치는 입장권과 굿즈까지 팔았다고 한다.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20여분쯤 가면 제3제국 건설에 골몰했던 히틀러와 나치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트램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나치당 전당대회 기록센터가 눈에 띈다. 2001년 문을 연 이곳은 박물관과 기록보관소 역할을 하는데 방문 당시에는 아쉽게도 오는 2024년까지 대규모 리노베이션 중이었다. 대신 센터에서 가장 큰 전시홀에 나치 전당대회와 관련한 다양한 전시물을 설치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에는 1918년부터 2020년까지 모두 4개의 시기로 나눠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보여준다. 나치당의 성장과정과 범죄행각, 뉘른베르크전당대회 모습 등을 영상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나와 붉은 벽돌의 대형 아치를 지나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33년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 떠 지은 의회홀이다. 폐허처럼 남아 있는 원형의 붉은 건물 아래 서면 그 규모에 압도당하고 만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지상 39m 정도다. 당초 70m 높이로 지으려했으나 제 2차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공사는 중단됐다. 건물 앞에 놓인 안내판에는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천장을 씌운 실내체육관 형태로 구상했다는 설명이 씌어 있다.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에는 전당대회장 모형이 전시되기도 했다. 히틀러를 추종하는 수만명의 나치당원들이 이 곳에서 함성을 지르는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했다.

두첸트타이히 호수 너머로 보이는 전당대회장(의회홀).
전당대회장 옆으로는 아름다운 두첸트타이히 호수가 보인다. 호수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역사적 현장을 만날 수 있다. 체펠린 비행장이다. 이곳은 최초로 비행선을 만들어 비행에 성공했던 체펠린이 1909년 비행선을 착륙했던 곳이다. 1932년 히틀러 추종자이자 건축가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이곳에 연단을 지었고 히틀러가 참여한 가운데 전당대회를 열기도 했다.

압도적인 규모의 연단에 올라선다. 페르가몬 신전을 본떴다는 연단에서 내려다본 광장은 아득해 보인다. 나치 전당대회 당시 사진과 영상 등에서 본, 나치의 상징인 연단의 독수리 문양과 회랑은 모두 사라졌지만 역사의 흔적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두첸트타이히 호수 넘어 전당대회장(의회홀)의 온전한 모습이 보인다. 건물 부지 내부에서 볼 때 가늠하기 어려웠던 규모에 새삼 놀랐다. 콜로세움을 모방했다는 건물 형태도 제대로 보인다. 잔잔한 물결과 아름다운 산책길 너머로 보이는 대규모 건물은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뉘른베르크는 국제군사재판이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국제전범 및 반인륜범죄자들을 단죄하기 위한 열린 국제전범재판의 시초가 된 뉘른베르크 재판은 1945년 11월 시작돼 이듬해 10월까지 이어졌다. 24명의 나치 장성들이 평화에 대한 범죄,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 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2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재판이 열렸던 뉘른베르크 지방법원 2층 600호 법정은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3층의 기념관에는 뉘른베르크 재판 현장 사진을 비롯해 나치와 홀로코스트, 전범재판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광기 넘친 나치의 현장과 아름다운 고성과 동화같은 마을이 어우러진 뉘른베르크를 떠나며 국립게르만박물관 정문 앞 ‘인권의 길’에서 만난 글귀를 마음에 담는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한다” 30개국의 언어로 쓰인 ‘UN 세계인권선언 조항’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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