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 63일간의 ‘바르샤바 봉기’ 폴란드인의 자긍심으로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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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바르샤바] 63일간의 ‘바르샤바 봉기’ 폴란드인의 자긍심으로 남다
1944년 나치 독일에 점령된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독립항쟁
소련 등 주변국 외면으로 실패
시민군 1만 6000여명 사망
도시 85% 참혹하게 파괴
2022년 11월 23일(수) 02:00
바르샤바 봉기박물관은 독일에 대항해 1944년 63일간 벌어졌던 항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작곡가 쇼팽(1810~1849)은 폴란드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다. 평생 조국을 사랑했던 그의 무덤은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유언에 따라 ‘심장’만은 바르샤바 성(聖) 십자가 성당에 안치됐다. 폴란드 관문은 ‘바르샤바 프레데리크 쇼팽 공항’으로 명명돼 방문객을 맞는다. 쇼팽의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떠올릴 때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다. 독일군 장교의 선처로 생과 사의 걸림길에서 살아남은 피아니스트가 파괴된 건물 안에서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은 가슴에 박힌다.

영화는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폭격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도시를 넋나간듯 걷는다. 카메라 앵글 속에 비춰지는 도시의 모습은 참혹하다. 성한 건물이 거의 없는 완전한 폐허의 도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괴된 도시는 1940년대 바르샤바다. 바르샤바는 2차 세계대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39년 독일 나치가 바르샤바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고, 바르샤바 봉기 등을 거치면서 전쟁 막바지 도시의 85%가 파괴됐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게토(유대인 격리지구)가 있었고, 인근 도시 크라쿠프에는 독일의 만행을 상징하는 아우슈비츠수용소가 자리한다.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듯한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 입구
잿더미가 됐던 도시는 완벽하게 재건됐고, 구시가지 등은 198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옛 향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거리를 걷다보면 60여전 등 새롭게 복원된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도심 곳곳에서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바르샤바 봉기’는 폴란드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바르샤바 봉기는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8월 1일부터 10월 2일까지 63일간 독일군에 항거했던 사건을 말한다. 봉기는 소련 등 주변국들의 외면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시민군 4만명 중 1만 6000여명이 사망하고 도시는 완전히 파괴됐다. 비록 실패한 봉기였지만, 폴란드인들은 항쟁에 자긍심을 갖고 역사를 기억한다. 봉기가 시작됐던 8월1일 오후 5시, 사이렌이 울리면 시민들 자동차 할 것 없이 모두 잠시 정지해 1분 동안 침묵하며 희생자를 추모한다.

지난 2004년 봉기 6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바르샤바봉기박물관’은 항쟁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의미있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알차게 꾸려져 있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 인형 컬렉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강한 비트의 음악과 북소리가 심장을 뛰게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노란색 박스 안에 일렬로 놓여 있는 검은색 전화다. 마치 봉기현장의 누군가와 접속하듯 과거의 역사와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 전화기를 들면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파괴된 도시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전시장 구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시물 배치가 눈길을 끈다. 실제 사용되던 무기,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문패, 선전물, b-24 폭격기 등을 통해 당시 생생했던 현장을 느낄 수 있으며 봉기군의 비밀통로였던 지하통로도 재현해 두었다. 또 생존자 인터뷰와 각종 영상 자료 등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농민, 교사, 간호사, 군인 등 봉기에 참여했거나 지원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기증한 유품은 울림을 준다. 특히 63일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매일 매일의 이야기를 일력으로 제작해 학생 등 관람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도심에서 만나는 소년병 동상
3D극장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 20만명이 사망하고 85% 폭격으로 황폐해진 1945년의 바르샤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상 ‘파괴의 도시’를 만날 수 있다. 또 당시 전단지를 만들었던 인쇄기로 찍은 전단을 직접 제작해 나눠주기도 한다. 그밖에 “당신은 이들처럼 행동할 수 있겠냐” 묻는 질문이 담긴 인터렉티브 작품 앞에 서면 자신과 가장 비슷한 ‘봉기군’을 보여주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봉기박물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500여 점의 종이인형은 전쟁과 다른,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또 박물관 밖 야외전시장에는 평화의 종과 함께 사망자의 이름을 새긴 대형 벽이 설치돼 있다.

바르샤바 법원 옆의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는 봉기 45주년을 기념해 설치됐다. 전쟁에 참여한 봉기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긴박감이 넘친다. 또 바로 앞에는 아이를 안은 엄마, 기도하는 성직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세워져 있다.

올드 타운을 벗어나면 붉은 벽돌의 바르바칸(도시나 성의 외벽 요새) 담장 아래 동상 하나가 눈에 띈다. 어른용 커다란 철모를 쓰고 커다란 장화를 신고, 자기 키만 한 총을 들고 있는 소년병의 모습을 담은 ‘작은 저항군 동상’이다. 예지 야르누슈키에비치가 제작한 동상은 봉기 당시 연락병 등으로 활약했던 어린 소년 전사와 청소년 군인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바르샤바 봉기 35주년 기념일인 1979년 8월 1일 공개된 안제이 도만스키의 ‘바르샤바 반군 기념비’는 봉기가 벌어진 날을 상징하는 63개의 다양한 길이의 기둥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바로 앞에 설치된 멀티미디어 벤치에서는 쇼팽의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바르샤바 봉기 45주년을 기념해 설치된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
44년 봉기에 앞서 43년 벌어진 게토 바르샤바 봉기도 역사의 한 장면이다. 나치는 유럽 전역에 게토를 설치해 유대인의 주거를 제안했고 바르샤바 게토에는 최대 46만명이 거주했다. 1942년부터 게토 폐쇄와 집단 수용소로의 강제 이주로 26만명이 학살당했다.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폴린유대인 역사 박물관 앞에는 1946년 건립된, 유명한 게토 위령탑이 있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던 1970년 12월 7일 위령탑에 헌화하고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사죄하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 모습은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과 속죄로 받아들여지며 전 세계인의 감동을 자아냈다.

폴란드 취재 중 빈번하게 만나는 광경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집회나 모금활동이었다. 청소년들이 주축인 행사도 많았다. 바르샤바 뿐 아니라 크라쿠프, 브로츠와프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참혹함을 견디며 나라를 재건한 그들이기에 바로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현실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르샤바=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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