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 일상으로 스며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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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 일상으로 스며들어야
아우슈비츠수용소
베를린 ‘슈톨퍼슈타인’
‘바르샤바봉기박물관’
흥미롭고 인상적인 공간들
80년 오월 공간들의 역할
여순사건 70년 기록 고민해야
2022년 11월 29일(화) 23:00
나치에 저항했던 백장미 단원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 뮌헨 법원 253호 법정.
역사의 ‘현장’을 찾는 건 강렬한 경험이다.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의 ‘시간’으로까지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장소’에 발을 딛는 순간 앞으로 잊히지 않을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치에 항거했던 백장미단 한스·쇼피 숄 남매가 전단지를 뿌리고 게쉬타포에게 붙잡혔던 뮌헨 대학 건물 중앙홀에 섰을 때,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글귀를 지나 아우슈비츠수용소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일 히틀러’라는 함성이 들려올 듯했던 독일 뉘른베르크 나치전당대회장, 80여년전 혁명군과 이어질 것만 같았던 폴란드 바르샤바 봉기박물관에서의 경험도 오래 남을 것이다. 경기도 안산 ‘4.16 기억교실’에서는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느꼈다.

‘도시가 역사를 기억하는 법’ 시리즈를 진행하며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났다. 이번에 취재 차 찾은 곳들은 그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는 아니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는 이들이라면 아름다운 건물이 즐비한 올드타운과 쇼팽박물관 등 쇼팽의 흔적을 찾는 데서 여행의 재미를 느낄 것이다. 크라쿠프와 브로츠와프를 여행하는 이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도(古都)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길 터다. BMW박물관 등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즐비한 뮌헨도 마찬가지다. 제주 역시 푸른 바다와 한라산, 오름 등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과 수많은 볼거리를 둘러보는 데 더 열광한다.

브로츠와프의 난쟁이 조형물
몇 년전부터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의미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화려한 관광지 대신, 역사의 현장을 찾아 공부하고 애써 역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굳이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새로운 나라와 도시를 방문할 때 그 도시가 ‘걸어온 길’을 한 번쯤 눈여겨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작정하고 역사 투어를 나서는 이들을 위한 공간도 중요하지만 자연스레 역사를 만나는 장치도 중요하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만난 수백개의 작은 난쟁이 동상은 국민들이 공산당의 계엄령 선포에 항의하며 탄생한 저항의 상징에서 출발해 지금은 사람들의 일상과 어우러지며 도시의 아이콘이 됐고, 관광자원으로도 큰 역할을 한다.

제2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관문. 1944년 5월부터 대학살의 대상이 된, 유대인들을 실은 열차는 이 관문을 통해 수용소 중앙지점의 램프에 정차했다.
베를린의 길거리 바닥에 박혀있는 작은 추모 동판 ‘슈톨퍼슈타인(Stoplerstein·걸려 넘어지는 돌)’도 인상적이다. 나치가 추방하거나 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가로, 세로, 높이 각 10㎝크기로 제작된 동판에는 희생자 이름, 태어난 해, 추방된 해, 사망 장소 등을 간략하게 적는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을 기억하고, 사라졌던 이름을 돌려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의미다. 2022년 9월 현재 전 세계 30국에 9만4000여개, 베를린에는 9000개가 설치돼 있다.

뮌헨대학을 비롯한 뮌헨 도심과 독일 전역에는 소피 숄 남매와 후버 교수 등 백장미단의 이름을 딴 학교, 거리, 광장, 건물 이름 등이 즐비하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기대가 적었던 ‘바르샤바봉기박물관’은 의외로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공간이었다. 사실, 홀로코스트나 히틀러 등 많이 알려진 역사적 소재들은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바르샤바 국민들이 나치에 대항한 역사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었다.

하지만 옛 건물을 활용한 박물관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알차게 구성하고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넣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전시장에서 자료나 사진으로 접하는 ‘현장’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했고, 실제 그렇게 몇몇 장소를 다녀왔다. 요즘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들이 콘텐츠 대신 지나치게 큰 규모를 지향하며 외관에 집착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결국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역사를 재해석하는 예술가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만나는 ‘익명의 사람들’은 공산당에 대항했던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베를린의 대표역 중 하나인 프리드리히스트라세역에서 만난 ‘삶의 열차, 죽음의 열차 1938~1945(Trains to Life-Train to death 1938~1945)나 브로츠와프 대로변의 ‘익명의 사람들’은 한 번 보면 결코 잊히지 않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휘말려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은 사람들을 각성시킨다.

취재를 하며 자연스레 5·18과 광주의 모습을 비춰보게 됐다. 국립 5·18민주묘역과 구묘역, 헬리콥터 사격 흔적이 남아있는 전일빌딩을 리모델링한 ‘전일 245’, 5·18민주광장 등과 오월길 등 광주의 오월을 기억하는 공간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특히 80년 5월의 핵심 공간인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등을 어떻게 복원하고, 어떤 콘텐츠로 꾸밀지 다같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또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주목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자산을 활용해 광주의 오월을 기록하는 작업들도 꾸준히 전개하는 게 필요하다.

그밖에 이제 본격적인 진상규명과 기념사업이 시작될 여수순천사건 역시 70여년전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지 고민해야한다.

“이 작은 추모 조형물은 일부러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일상속에서 계속 생각을 하고, 역사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문득문득 떠올려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슈톨퍼슈타인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안나 바르다 씨의 말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스며들 듯’ 역사를 기억하고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끝>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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