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브로츠와프] ‘저항의 상징’ 조각상들 ‘도시 정체성’ 대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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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브로츠와프] ‘저항의 상징’ 조각상들 ‘도시 정체성’ 대변하다
‘오렌지 대안운동’ 지하조직
반정부 슬로건과 함께 그린 ‘난쟁이’
300여개 동상 관광자원 인기
1981년 계엄령 선포 이후
검거·탄압으로 고통받던 역사
‘익명의 보행자들’로 기억
2022년 11월 24일(목) 23:00
브로츠와프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난쟁이’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작정하고 찾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게, 무심히 거리를 걷다 발견하게 되면 즐거움이 더 컸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의 일정은 ‘작은 난쟁이들’을 찾는 여정이었다.

바르샤바에서 기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브로츠와프는 폴란드 최고의 공업도시로 꼽힌다. 삼성·LG 등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독일 영토였던 브로츠와프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폴란드로 귀속됐다. 13세기 세워진 고딕양식 시청사가 있는 르넥광장 등은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골목 구석구석에는 옛 흔적이 남아있다. 2016년에는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

브로츠와프에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도심 구석 구석에 세워진 난쟁이 동상들을 찾는 일이다. 동상은 시민들의 저항운동과 관계가 있다.

1980년 자유연대운동 이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공산당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억압은 심해진다. 폴란드 전역에서 반체제 운동이 벌어지고 브로츠
브로츠와프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난쟁이’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와프에서는 ‘오렌지 대안운동’(Osange Alternative Movent)이라는 지하조직이 반정부 슬로건과 함께 일명 ‘붉은머리 요정’(난쟁이)을 도시 곳곳에 그리기 시작했다. 계엄령 기간동안 그들은 저항의 상징이 됐고 2001년 난쟁이 청동 동상이 처음 세워진다. 이후 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20~30cm의 아주 작은 동상은 현재 300여개에 이른다.

저항의 상징으로 출발했던 동상은 이제 역사를 기억하는 차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관광자원으로도 활용중이다. ‘난쟁이 워킹 투어’도 있고, 거리를 걷다보면 ‘난쟁이 지도’를 들고 난쟁이 찾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쉽게 만난다.

취재 중 가장 먼저 만난 건 음악당 앞의 오케스트라 난쟁이들이었다. 이어 시지프스의 신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난장이, 소방활동 중인 난장이, 폭음중인 난장이 등을 만났다. 각각의 난장이들은 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또 가게, 음식점, 은행, 교회, 오페라하우스 등에 세워진 난장이들은 건물이나 가게가 어떤 곳인지 단박에 알려주기도 해 여행자에게는 근사한 길라잡이도 된다.

난쟁이 찾기에 몰두하던 중 인상적인 조각상을 만났다. 브로츠와프 스비드니카 거리에 설치된 ‘익명의 보행자(Anonymous Passerby)’다. 세계 유수 저널들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조각작품’ 등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작품으로 사진으로 접하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보는 감정은 남달랐다.

브로츠와프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조각상 ‘익명의 사람들’은 공산당의 계엄령 선포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1981년 12월 선포된 계엄령으로 2000여명의 반정부 인사들이 체포된다. 하지만 노조의 연대투쟁과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계엄령은 선포 19개월 만인 1983년 7월 해제되고, 이후 폴란드는 1989년 동구권에서 최초의 비공산 연립정부를 출범시킨다.

2005년에 설치된 이 작품은 계엄령 선포 이후 많은 이들이 검거되고 탄압받은 역사를 기억한다. 보도 블럭 바닥을 뚫고 바닥으로 가라앉거나,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는 듯이 보이는 실물 사람 크기의 조형물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 보도에 각각 7명씩 설치돼 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 중절모를 쓴 신사, 타이어를 든 노동자 등이다. 가라앉는 모습으로 표현된 7명은 계엄령으로 탄압받던 시절을, 반대편의 솟아오르는 7명은 계엄령 해제 후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들을 묘사했다고 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역사의 현장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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