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권리 없이는 내일의 기회도 없다 -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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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권리 없이는 내일의 기회도 없다 -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25년 08월 14일(목) 00:00
광주가 진정 기회의 도시라면 오늘의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오늘의 권리를 지키지 않는 도시에 내일의 기회는 없다. 지난 3년 동안 광주시는 내일이 빛나는 기회의 도시를 시정 철학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민선 8기의 마지막 해가 된 지금 나는 묻는다.

그 약속은 시민의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매일 그 질문을 되뇐다. 현실의 장벽은 언제나 이동에서 시작된다.

광주시는 저상버스 100% 도입을 약속했지만 휠체어를 탄 나의 하루는 여전히 불편과 불안으로 시작된다. 버스가 와도 리프트가 고장 나 있거나 기사님이 승차를 주저할까 걱정된다. 한 번 버스를 놓치면 길바닥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 여름 폭우가 쏟아지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첫 번째 버스는 리프트 고장으로 그냥 지나갔고 두 번째 버스는 승차를 돕느라 10분 넘게 정차했다. 그 사이 옷은 흠뻑 젖고 체온은 떨어졌다. 그날 깨달았다. 이동권은 편의가 아니라 생존이다. 대안으로 기대했던 광주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 새빛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출근 시간에 전화를 열 번 걸면 여덟 번은 배차 지연 문자가 온다. 어렵게 연결돼도 원하는 시간에 배차되기는 힘들다.

특히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대기 시간은 훨씬 길어지고 병원 예약이나 중요한 약속을 지키기조차 어렵다. 이동이 막힌 도시에서 기회의 평등은 허상이다. 이동할 수 있어야 배우고 일하고 즐길 기회도 생긴다. 그러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일자리도 멀어진다.

광주시는 맞춤형 장애인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단기·저임금 일자리의 반복이다. 경증 장애인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중증 장애인은 선택지조차 거의 없다. 설령 일을 구해도 대부분 시간제·단순 노무에 머물러 생활을 유지하기조차 벅차다. 오늘 일할 기회가 없다면 내일의 기회도 없다.

문화·체육 공간의 문턱 역시 높다. 공연장 휠체어 좌석은 한두 곳에 불과해 가족과 떨어져 앉아야 하고 체육시설은 접근조차 어려운 곳이 많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뛰고 웃으며 가족과 공연을 즐길 권리는 여전히 멀다. 이런 현실에서 통합교육과 기회의 도시라는 말은 허공에 맴돌 뿐이다.

물론 일부 정책은 작은 희망을 준다. 통합 돌봄 서비스, 장애인 통계 데이터 구축, 탈시설·자립 생활 지원은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이 매일 체감하는 이동권·일자리교육·문화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로 남는다.

결국, 문제는 우선순위와 예산이다. 광주시는 장애인 정책을 말하면 늘 예산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시내 곳곳의 대형 현수막, 조형물, 각종 축제와 행사에는 예산이 넘친다. 정작 시민의 권리를 위한 예산은 부족한데 보여 주기식 홍보에는 돈이 쓰인다. 과연 이 도시의 내일은 누구를 위한 설계인가. 오늘 이동하지 못하는 시민은 내일의 도시를 누릴 수 없다.

늘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민은 내일을 꿈꿀 수 없다. 광주가 진정 기회의 도시가 되려면 장애인의 권리를 오늘부터 지켜야 한다. 시민의 내일은 오늘의 권리 위에 세워진다. 권리는 미룰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다. 정치적 수사나 홍보성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생명줄이다. 오늘의 이동권과 일자리, 교육과 문화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면 내일의 화려한 도시 계획은 결국 종이 위 설계도에 그칠 뿐이다.

광주의 미래는 거대한 조형물이나 화려한 축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한 명의 장애인이 안전하게 버스를 타고 출근할 수 있는가? 가족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는가? 아이들이 차별 없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가? 이 사소하지만 절박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기회의 도시다. 오늘 권리를 지키는 도시만이 내일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기회를 나누는 도시는 오늘의 권리에서 시작된다.

광주의 내일은 거창한 표어가 아니라 오늘의 장애인 권리를 지키는 일상적인 실천에서 출발한다.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도시만이 미래를 설계할 자격이 있다. 광주가 그 길을 선택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오늘이 내일의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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