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에서부터 시조(時調)에 대한 관심을- 최 홍 길 서울 선정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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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에서부터 시조(時調)에 대한 관심을- 최 홍 길 서울 선정고 교사
2025년 08월 12일(화) 00:00
유럽의 소네트, 중국의 한시, 일본의 하이쿠, 대한민국의 시조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만의 시가(詩歌) 문학 양식이다. 고려말에서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창작되고 있는 시조에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이 작품 속에 내재돼 있는데 특히 조선후기의 사설시조를 살펴보면 서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런데 시조를 조상들이 창작한 결과물로만 보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관심이 거의 없는 듯해 마냥 슬프다. 자수에 너무 얽매인다는 지적도 있으나 심오한 사상이나 치열한 현실을 수용해 내기에 예술적 감흥이 풍기고 아취가 넘치는 양질의 작품이 현대시조에도 부지기수이다.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시조 작품이 등장한다. 최근에 창작된 작품이 실리지 않아 아쉽지만 우리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문학장르이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만 한다고 이들에게 여러 번 강조한 뒤에 수업에 들어간다. 작품에 대한 분석과 학습활동이 끝난 뒤에는 따로 1시간을 할애하여 시조를 지어보라고 학습지를 나눠 준다.

그 후에 시조의 길이에 따른 종류, 다른 학교 학생들이 지은 작품 등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설명을 곁들인다. 이어서 시조는 복잡하게 얽힌 생각을 음수율에 맞게 잘 정리한 것이기에 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분명해지며 인생의 풍미를 알게 해준다면서 독려하는 걸 잊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은 힘들어한다. 여태까지 9년 이상을 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시조 창작은 거의 해보지 않아서일까? 종장 전구의 자수를 3, 6으로 해도 되는지, 주제의식을 종장에 담아내야 하는지, 중장이 길어지는 사설시조를 만들어도 되는지, 제목을 뽑아야 하는지 등등의 잡다한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50분이 지나자 수업이 끝났다는 음악이 흘러나와도 아직 마무리를 못해서 시간을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앉아 학생들의 작품을 훑어보다가 30여 명 가운데 서넛 정도 입이 벌어질 만큼의 걸작이 나오기에 그래도 느껍다.

일본의 경우 지자체마다 하이쿠를 공모해 우수작은 시상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의 안내판에 그 작품 내용을 소개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 지자체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조를 공모·시상·게시했다는 기사를 아예 읽은 적이 없다. 하이쿠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창작하는 숫자 또한 많지만 우리의 시조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K-Pop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가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는 현실에서 시조의 아름다움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기회에 예향인 우리 고장에서부터 시조를 널리 알리는 운동을 시작하면 어떨까? 그래서 각 고장의 대표 관광지에 시조비를 만들고 연말에는 우수작을 모아 시조집을 발간하며 시조 낭송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필자의 고향은 여인송·무한의 다리·백길과 분계 해수욕장으로 잘 알려진 신안군 자은도이다. 분계 해수욕장의 백사장 뒤편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길이 조성되었는데 수백 그루의 소나무 중에서 여인이 하늘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는 나무 하나가 바로 여인송(女人松)이다.

고기잡이를 하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무사귀환을 빌던 부인은 해변에서 가장 큰 소나무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 어느 추운 겨울 얼어 죽고 말았는데 돌아온 남편이 부인의 시신을 수습해 그 소나무 아래에 묻어주자 나무는 거꾸로 선 여인의 자태를 닮은 여인송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관광객들은 여인송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사랑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최근 필자는 시조 습작을 하다가 숙고 끝에 작품 한 편을 탈고했는데 여기에 소개한다. 두 수로 된 연시조이고 제목은 ‘여인송 솔잣새’이다.

수저 둘 얹어 놓고 깨를 볶는 신접살림/ 어부 낭군 기다리던 갯바윗골 그 여인은/ 똬리를 거꾸로 틀고 소나무가 되었다// 오가는 처녀총각 그 여인송 끌어안고/ 손가락 고리 걸며 백년가약 다짐한다/ 손차양 이마에 얹자 솔잣새가 지저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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