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가 백년전쟁 때 프랑스 아닌 영국 편을 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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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가 백년전쟁 때 프랑스 아닌 영국 편을 든 이유는?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 나이토 히로후미 지음, 서수지 옮김
2025년 06월 20일(금) 00:00
소크라테스는 적정량의 와인을 조금씩 마시면 와인은 이성에 해를 끼치지 않고 유쾌한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준다고 했다. 니콜라 몽시오 작 ‘소크라테스와 아스파시아의 논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와인 세계를 뒤바꿔놓은 국가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경제력과 와인에대한 선호도는 와인의 패러다임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또한 대형 여객기 등장과 맞물린 ‘하늘의 시대’는 호화로운 미식, 특히 명품 와인에 새롭게 눈을 뜨게 했다.

60년부터 73년까지 와인 소비량은 2배 증가했는데 당시 미국인들은 보르도 명품 와인을 구매했다. 그 가운데 프랑스 5대 샤토의 명품 와인에 대한 선호는 유독 높았다. 그러나 프랑스 와인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직접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와이너리를 건립하고 와인 양조에 돌입한 것이다.

로버트 몬다비는 이 시기 미 와인 제조업자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몬다비로 대변되는 캘리포니아 와인은 이후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발생한 기술 혁신을 이끈 선두주자격으로 인식된다. 90년대 이후 실리콘벨리에는 IT기술 개발 열풍으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메타)의 마크저커버그 등이 나타났다. IT의 눈부신 발전처럼, 60년대~70년대 걸쳐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와인은 역사 이래 많은 예술가, 철학자들에게 영감과 상상력을 제공한 ‘음료’다. 와인에 대한 명언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이는 ‘신의 음료’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세계로 가는 여권’이라고 정의한다. 사상가 볼테르는 ‘와인은 9월의 신성한 주스’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는 흥미로운 책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매혹적이고도 위험천만한 와인 세계사 이야기”라는 수사가 말해주듯 와인을 모티브로 한 이색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세계사로 풀어내는 명화의 비밀’, ‘유럽 왕실로 본 세계사’ 등을 펴낸 나이토 히로후미가 저자다.

책은 와인이 어떻게 세계사를 바꾸었는지 재미난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낸다. 질문 하나하나가 이색적이다. 일테면 이런 것들이다. 와인은 어떻게 중세 가톨릭교회의 주요 수익 창출 수단이 됐을까? 보르도가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가 아닌 영국 편을 든 이유는? 등등의 질문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와인은 고대 그리스 민주정 탄생과 연관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지형은 “산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형상이어서 왕, 귀족과 같은 지배계급이 토지를 독점하기 어려웠다. 대신에 좁은 농토를 소유한 농민들이 전쟁 포로를 노예로 부리며 농사를 지었다. 평민계급이었지만 농민들은 와인농사를 지어 나름의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했다.

이완 연계된 토론의 정치문화는 민주주의 발전으로 전이됐다. 아테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등 철학자, 수학자 등을 배출하며 눈부신 문명을 일궜다.

오늘날 독일은 프랑스,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와인 강국이다. 세계 최고 명산지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라인가우가 있기까지는 카롤루스 대제의 안목이 빛을 발했다. 사실 카롤루스 등장 이전에는 라인가우에 포도밭이 없었다.

어느 날 라인강 잉겔하임을 방문한 카롤루스가 대제는 요하니스베르크 산 인근을 보게 됐다. 볕이 잘 들고 눈이 잘 녹는 땅이었다. 포도 재배에 적합한 곳임을 직감한 그는 포도를 심을 것을 명했다. 세월이 흘러 라인가우는 세계적 포도 산지로 명성을 얻게 된다.

또 다른 이색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 전쟁 당시 보르도 지역은 줄곧 영국 편을 들었다. 보르도, 부르고뉴는 프랑스 판도 안에 있었지만 영국 왕의 영토였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는 보르도를 되찾아 편입했다. 샤를 7세는 ‘보르도 특권’을 박탈하려는 생각도 갖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후일 세계 2대 와인 명산지를 지도에 새기는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이밖에 책에는 와인이 바꾼 세계사의 명장면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수록돼 있다. 편집자는 “‘신의 음료’ 와인이 인간의 욕망과 충돌하고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바꾸었던 세계 이야기는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고 언급한다.

<사람과 나무사이·1만8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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