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책상머리 벗어나 구석구석…최고 명승지 기억·시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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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책상머리 벗어나 구석구석…최고 명승지 기억·시간을 담다
선생님, 지도엔 없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시죠- 노승대 지음
2025년 06월 13일(금) 00:00
“책상머리에서 글 쓰지 마라.”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와 같은 뜻이다. 인사동문화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노승대 답사가가 스승인 고(故) 조자용(에밀레박물관 설립자)으로부터 듣던 말이다.

직접 다니며 보고 듣고 느끼라는 의미일 것이다. 현장을 취재하지 않고 쓰는 답사의 글은 울림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와 다름없다는 말이다.

지난 1993년부터 문화답사모임 ‘바라밀문화기행’을 이끌고 있는 노승대 답사가. 그는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공부하는 것을 금생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늘 길 위에 있다.

노 답사가가 최근 펴낸 ‘선생님, 지도엔 없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시죠’는 우리나라 명승고적에 관한 책이다. 지난 42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답사한 가운데 저자가 뽑은 내 인생의 장소들이 등장한다. 삼척, 완주, 김천, 남원, 안동, 보은, 밀양, 부안, 화순, 나주, 서산, 여주, 원주 등에 산재하는 명승지와 고적, 문화유산에 관한 인문 에세이다.

명승으로 지정된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 <불광출판사 제공>
먼저 삼척에는 한국전쟁 때에도 화를 면한 두 사찰이 있다. 바로 영은사와 신흥사다. 당시 크고 작은 절이 참화 속에 스러졌지만 두 사찰은 건재했다. 두 절을 창건한 이는 신라 말에 선종을 들여와 강릉에 사굴산파를 이룩한 범일 국사다.

영은사에는 근세의 명필 해강 김규진의 글씨를 볼 수 있는 현판과 주련이 많다. 많은 절에 유묵을 남겼지만 이곳에는 다양한 서체를 4점이나 남겼다.

강원도 절집의 특성을 갖춘 신흥사에는 흙벽이 아닌 나무 널벽을 사용한 ‘판벽’이 눈에 띈다.요사채인 설선당과 심검당이 대표적인데 부엌의 환기통을 ‘卍’자 형태로 뚫어 눈에 띈다.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고개가 추풍령이다. 터널이 없는 이곳은 가장 완만한 고개다. 그러나 조선시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은 추풍령을 넘지 않았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민간 신앙 때문이었다. 대구 쪽 선비들은 먼 거리를 돌아 김천, 상주, 문경을 경유해 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이른바 ‘문경’(聞慶)은 ‘문희경서’(聞喜慶瑞)에서 유래했는데 ‘기쁘고 경사스러우며 상서로운 일을 듣는다’라는 뜻이다. 경사를 바라는 일에 낙방의 징크스와 연관된 고개를 넘을 리 만무하다.

김천을 대표하는 절은 직지사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곳은 사명당 유정 스님이 출현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사명당은 승과에 급제 후 직지사 주지가 되었지만 바로 사양하고 서산대사 문하에 들어간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승군 총대장이 돼 전공을 세운다. 물론 그로 인해 직지사가 감당해야 했을 피해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보인 ‘부안 내소사 동종’은 고려 범종 가운데에서도 조각이 세밀하면서도 특유의 기운이 넘친다. 원래 이 종은 1850년 초까지는 청림사 터에 묻혀 있었다. 청림사는 영조 때 일어난 이인좌 난으로 소실되는 불운을 맞았다. 고응량, 정팔룡이 청림사에 근거지를 두고 난에 참여했다가 패배했던 것이다. 청림사는 불에 탔고, 오랜 세월 후 마을이 들어섰고 1852년 주민이 범종을 발견했고 이듬해 내소사로 옮기게 됐다.

섬세하고 화려한 승탑으로 유명한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도 국보다. 아래의 운룡문 조각, 지붕돌 등이 치밀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친다. 8마리 사자의 자세도 다르며 음악을 연주하는 8 가릉빈가도 제각각이다. 저자는 “신라인들의 구상력과 기술력은 지금도 흉내 내기 어려운 최상승의 가량이다”며 “각 부분의 조각을 살펴보노라면 그 정치하고 아름다운 솜씨에 저절로 숨을 고르게 된다”고 평한다.

쌍봉사 가는 길에 빼놓지 않아야 할 곳은 화순 고인돌 유적지다. 지난 2000년 고창, 강화, 화순의 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화순에는 계곡 4킬로미터 안에 596기 고인돌이 집중돼 있는데다 자연환경이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고인돌 채석장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광출판사·3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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