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정원예찬, 현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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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정원예찬, 현진 지음
꽃을 보고 있는 현재가 내 인생의 ‘花(화)일라이트’
2025년 05월 02일(금) 00:00
요즘의 산하는 온통 연둣빛이다. 겨우내 숨 죽였던 새순들은 어느새 잎을 틔어 산과 들을 뒤덮었다. 연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듯 맑고 투명한 빛깔은 그 자체로 힐링을 선사한다.

자연은 때가 되면 그렇듯 어김없이 특유의 색을 풀어놓는다. 신록의 계절 4월, 계절의 여왕 5월은 1년 중 가장 푸른 기운이 넘치는 시기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가을보다도 봄이 더 아름다운 것은 특유의 생명력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아름답지만 이맘때 자연이 베푸는 은전은 무엇에 비할 바 아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바라보는 산과 들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온다. 계절은 스스로 화가가 돼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풍경이라는 작품을 부려놓는다.

현진 스님의 ‘정원예찬’을 읽고 있으면 곳곳에서 반짝이는 사유의 글들을 만나게 된다. 13년간 사찰 정원을 가꾸며 느낀 사유의 단상들이 명료한 문장으로 갈무리돼 있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따스한 정감은 스님 글이 갖는 미덕이다.

이번에 출간된 ‘정원예찬’은 산사의 뜰을 가꾸며 수행을 해온 기록이자 세상과의 대화이다. 스님은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청주 마야사 주지를 맡고 있다. 지금까지 ‘수행자와 정원’을 비롯해 ‘스님의 일기장’, ‘꽃을 사랑한다’,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등을 펴냈으며 산중에서 정원을 가꾸며 느낀 일상을 사전하고 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스님은 수행처럼 가꾸는 정원을 통해 더러는 깨달음이 담긴 사유를, 더러는 위로가 담긴 응원의 말들을 건넨다. 흙을 만지고 꽃나무를 키우는 것은 노동을 넘어 순리의 과정을 따르는 일로 수렴된다.

저자는 “해마다 마중하는 봄이지만 여전히 봄꽃과의 해우는 설렌다”며 “그 어떤 이가 나를 이토록 가슴 뛰게 할 것인가. 하루라도 꽃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으면 금세 시들해지는 이런 증세를 ‘정원 중독자’라 이름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정원은 “요동치게 하고 신명 나게 하는 활발한 수행처”라고 덧붙인다.

스님은 텃밭과 정원을 가꿀 수 있어 근면하고 성실할 수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천국을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천국이란 채소를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이 가까이 있는 곳, 그곳 정원에서 나이를 잊은 정원사가 흙을 일구는 곳’이라고.

손바닥만한 텃밭을 소유한 이는 천국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토머스 제퍼슨은 후일 식물들의 생태를 담은 ‘가든 북’을 남겼는데 후일 정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원을 가꾸며 살았던 삶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스님은 정원을 일컬어 ‘땅에 씨앗을 심고 시간의 시를 쓰는 곳’이라 정의한다. 사실 나무 심는 일은 시를 쓰는 것과 유사하다. 각각의 시행이 결합해 하나의 작품을 이루듯 저마다의 꽃과 나무가 모여 다채로운 그림이 된다. 시간이라는 나무가 자라는 곳이기에 정원은 ‘시간의 미학’인 것이다.

저자는 꽃과 나무가 모여 다채로운 그림이 되는 정원은 다양한 사유와 깨달음을 준다고 한다. <담앤북스 제공>
책에는 이렇듯 자연이 전하는 향기로운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특히 봄날의 낙화가 주는 의미는 깊고 넓다. “권력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는 말은 절정이 지나면 반드시 낙화의 시간도 다가온다는 뜻이다. 아울러 꽃 피고 지는 과정이 모두 삶의 연속이기에 수용하고 이해하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한 문장 한 문장은 울림과 의미로 연계돼 울창한 사유의 숲을 이룬다. 스님이 정원에 몰두하는 것은 ‘정원을 통한 전법’의 차원이기도 하다. 물론 정원 포교라는 말은 아직은 낯설다. 그러나 “꽃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에 기대어 휴식하고 치유하는 길”을 알려주는 역할은 설법 못지않은 의미로 확장된다.

여러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부쩍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 스님의 말은 따스한 응원의 말로 다가온다. “이제는 힘들 때 괜히 자신에게 힘내라고 주문하지 마시라. 좀 느릿느릿 쉬어 가도 되는 나이다.” 그리고 지금 꽃을 보고 있는 현재가 인생의 절정기다. “지금이 내 인생의 花(화)일라이트!” <담앤북스·1만72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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