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평온’을 추구한 한국의 미의식, 미술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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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평온’을 추구한 한국의 미의식, 미술로 만나다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현존의 아름다움, 최광진 지음
2025년 03월 21일(금) 00:00
6세기 후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78호)






14세기 고려 ‘수월관음도’






‘한국의 미학’ 저자 최광진 박사는 한국의 문화는 대립을 통합하려는 ‘접합의지’가 강하다고 본다. 그런 주장이 잘 드러난 사례가 바로 태극이다. 하늘과 땅의 대립을 조화하려는 접합의지가 태극에는 투영돼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합의지는 4매 미의식으로 발현된다. ‘신명’, ‘해학’, ‘소박’, ‘평온’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의 4대 미의식은 주변국인 중국, 일본과 비교해도 두드러지며 오늘의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광진은 우리나라 미의식에는 역경과 추함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멋과 지혜가 깃들어 있다고 본다. 그는 미술을 토대로 한 한국의 미의식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 ‘신명’, ‘해학’, ‘소박’을 주제로 한 결과물은 각 미학적 주제가 응결된 저작들이다.

이번에 최 박사가 한국의 미의식 시리즈 마지막 주제인 ‘평온’을 모티브로 책을 펴냈다. ‘현존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문화와 예술에 투영돼 있는 평온미를 조명한다.

저자는 홍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평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한 바 있다. 홍익대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유튜브 채널 ‘최광진의 미학 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평온’(平穩)은 고요하고 평안함을 뜻한다. 동요가 없는 마치 잔잔한 수면과 같은 상태를 상정한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불안의 시대에 평온을 유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요인 외에도 분단 상황, 이념 갈등, 지역 갈등 등 불안 요인이 산재한다. 더욱이 급속한 산업화와 자본주의화로 양극화 심화되고 있다.

작금의 시국만 봐도 그렇다. 탄핵정국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많은 이들이 심리적으로 지쳐 있다. 평온을 추구하고, 평온을 바라는 것은 모든 이들의 바람일 터다.

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고대 불교 조각을 토대로 미의식의 조형화를 면밀히 살폈다. 저자는 반가사유상을 일컬어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난 법열의 미소’라 표현한다. 일련의 불교 사유상은 인간적인 고뇌를 넘어 우주적 진리를 깨닫는 순간의 희열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은 눈을 지그시 감은데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드리워져 “‘텅 빈 충만감’”을 준다. 최순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오른쪽 뺨에 가볍게 손가락을 댄 모습을 한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가히 일품이다. 서양의 아름다운 미소로 정평이 난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비견된다. ‘모나리자’가 미묘한 표정과 복합적 감정을 살렸다면 우리의 반가사유상은 집착을 탈피한 법열의 행복감을 투영했다.

2장은 고려 불화에서 평온미를 찾는다. ‘수월관음도’는 현존 고려 불화 160여 점 중 40여 점에 이른다. 하버드대 박물관 소장 작품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고귀하면서도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3장은 조선 문인화의 평온미에 초점을 맞췄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속 선비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무심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선비는 세상의 잡다한 생각과 망상에서 한발짝 떨어진 듯 초연하다.

마지막 장에서는 현대미술이 구현한 평온미를 초점화한다.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공부했던 박수근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그림에 담았다. 서민의 일상에서 종교적 감정을 포착했으며, ‘세 여인’은 작가의 따뜻한 연민이 발현된 작품이다. 저자는 박수근이 국민작가로 사랑을 받는 것은 “화강암 같은 캔버스에 새겨놓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 오늘의 우리에게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현암사·2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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