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진짜 동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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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맛있는 제주 월동무가 나와서 동치미를 담갔다. 시원한 국물 한 사발을 들이켜니 살 것 같다.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동치미 진짜배기 주는 집이 있으면 일 년 내내 단골 하겠다고. 아직도 ‘아짐’들이 일을 하는 골목 식당에서는 동치미를 더러 얻어먹을 수 있는데 찾기 정말 어렵다. 동치미란 게 담그기 쉬워 보여도 발효음식이라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게다가 무와 국물까지 같이 소비하게 되므로 보관해야 하는 물리적 양이 아주 크다. 가게 크기가 곧 월세인 도시에서 동치미 담가 내주기가 어려운 이유다.
원가는 빨간 김치에 비해 적게 먹히지만 은근히 힘든 김치가 동치미다. 그 무심한 동치미의 성정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제대로 된 대우도 못 받는다. 맛있으면 몇 번이고 청해서 마시고 씹는다. 그렇다고 돈 내라 할 수도 없다. 야박하다 소리 듣기 싫어서다. 그래서 시중에 가짜 동치미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식초와 더러는 빙초산, 설탕과 인공감미료로 만든 ‘유사 동치미’가 대부분이다. 무를 썰어 넣기는 했는데, 씹으면 익은 것이 아니라 생 무 맛이 난다. 그렇다고 주인 탓하기도 그렇다. 앞서 얘기한 이유 때문이다. 담그기 어렵고, 담가도 보관할 충분한 장소가 없으며, 손님에게 별 칭찬도 못 듣는 걸 열심히 만들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반찬은 공짜인 한국의 정서가 있다. 독자 여러분께 여쭌다. 기막힌 동치미 한 사발과 계란말이 한 접시의 가치를 비교해 보시라. 둘 다 가치 있는 음식인데 요즘 계란말이는 따로 만들어서 대부분 돈을 받는다. 동치미에 이런저런 원가와 공이 들었으니 한 사발에 5천원씩 내시오, 한다면 그럽시다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중국산 김치가 어쩌네, 가짜 동치미를 주네 하고 섭섭해 할 일도 아닌 것이다. 맛있는 김치, 동치미 칭찬만 하지 말고 그 공과 가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생겨야 담가도 담글 식당이 생겨나지 않을까.
실은 이런 글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 한 십 년 전에 신문에 “김치는 돈 내고 먹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가 독자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물론 동의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부정적 의견이 대세였다. 김치만큼은 그래도 잘 만들어서 무료로 내는 게 정상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리사인 나로서는 계산이 뻔히 나오는 일이라 답답한 일이다. 만약 김치며 동치미를 어지간한 국산으로 만들어 쓴다면 가게 망하기 쉽다. 사서 쓰면 그것도 비싸다. 10킬로그램에 요즘 시세가 5만원 언저리에서 왔다갔다한다. 더워지면 맛도 떨어지고 값도 크게 오른다. 그러니 많은 식당들이 중국산 쓰거나 웬만하면 김치 안 주는 메뉴와 업종을 하게 된다.
동치미는 冬沈(동침)이에서 왔다. 겨울에 담가 먹는 김치란 뜻이다. 꼭 무로만 하는 건 아니고 배추든 무든 다 동치미가 된다. 요즘은 문화가 달라져서 무로 담그면 동치미, 배추로 담그면 백김치라고들 하지만 원래는 재료의 구분이 없었다. 동치미는 김치 문화의 원형에 가까운 조상 김치다. 고춧가루와 젓갈을 넣고 무를 썰어서 소를 버무려 넣는 송엽채(솔잎처럼 썰었다는 뜻)식 빨간 김치는 조선시대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 김치는 소금이나 간장에 담가서 겨울을 났고, 배추보다 무가 훨씬 많았다. 배추가 맛있게 개량되고 물이 많아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면서 빨간 배추김치가 우선이 되었다. 자연스레 무 김치는 보조로 물러앉았다. 무짠지며 싱건지, 비늘김치(무를 비늘처럼 저며 담그는 이북 김치) 등은 점차 구경하기 어렵다.
기후변화로 여름이 빨라져서 4월 중반이면 이미 식당 동네에서는 차가운 면 음식을 준비한다. 냉면이며 냉국수에 콩국수, 열무국수와 일본식 메밀면이 계절 메뉴로 나온다. 중국집에서도 짬뽕 주문이 줄어드니 중국식 냉면과 더러는 콩국수를 판다. 여름 무는 맛이 없지만 그래도 시원한 진짜 동치미, 백김치에 말아내는 냉국수를 먹고 싶다. 김치냉장고가 좋아져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물론 큰 기대는 하면 안 된다. 한반도 식생이 아열대에 가까워져서 온대, 한대 식물인 무와 배추 농사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의 뜨거운 기후로 인한 무 배추 파동을 생각해보라. 아, 아쉬운 시절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실은 이런 글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 한 십 년 전에 신문에 “김치는 돈 내고 먹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가 독자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물론 동의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부정적 의견이 대세였다. 김치만큼은 그래도 잘 만들어서 무료로 내는 게 정상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리사인 나로서는 계산이 뻔히 나오는 일이라 답답한 일이다. 만약 김치며 동치미를 어지간한 국산으로 만들어 쓴다면 가게 망하기 쉽다. 사서 쓰면 그것도 비싸다. 10킬로그램에 요즘 시세가 5만원 언저리에서 왔다갔다한다. 더워지면 맛도 떨어지고 값도 크게 오른다. 그러니 많은 식당들이 중국산 쓰거나 웬만하면 김치 안 주는 메뉴와 업종을 하게 된다.
동치미는 冬沈(동침)이에서 왔다. 겨울에 담가 먹는 김치란 뜻이다. 꼭 무로만 하는 건 아니고 배추든 무든 다 동치미가 된다. 요즘은 문화가 달라져서 무로 담그면 동치미, 배추로 담그면 백김치라고들 하지만 원래는 재료의 구분이 없었다. 동치미는 김치 문화의 원형에 가까운 조상 김치다. 고춧가루와 젓갈을 넣고 무를 썰어서 소를 버무려 넣는 송엽채(솔잎처럼 썰었다는 뜻)식 빨간 김치는 조선시대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 김치는 소금이나 간장에 담가서 겨울을 났고, 배추보다 무가 훨씬 많았다. 배추가 맛있게 개량되고 물이 많아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면서 빨간 배추김치가 우선이 되었다. 자연스레 무 김치는 보조로 물러앉았다. 무짠지며 싱건지, 비늘김치(무를 비늘처럼 저며 담그는 이북 김치) 등은 점차 구경하기 어렵다.
기후변화로 여름이 빨라져서 4월 중반이면 이미 식당 동네에서는 차가운 면 음식을 준비한다. 냉면이며 냉국수에 콩국수, 열무국수와 일본식 메밀면이 계절 메뉴로 나온다. 중국집에서도 짬뽕 주문이 줄어드니 중국식 냉면과 더러는 콩국수를 판다. 여름 무는 맛이 없지만 그래도 시원한 진짜 동치미, 백김치에 말아내는 냉국수를 먹고 싶다. 김치냉장고가 좋아져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물론 큰 기대는 하면 안 된다. 한반도 식생이 아열대에 가까워져서 온대, 한대 식물인 무와 배추 농사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의 뜨거운 기후로 인한 무 배추 파동을 생각해보라. 아, 아쉬운 시절이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