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홍준다운 글의 향연…다양한 경험과 사유·답사의 산물
  전체메뉴
가장 유홍준다운 글의 향연…다양한 경험과 사유·답사의 산물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지음
2024년 11월 08일(금) 00:00
“풍부하되 한마디 군더더기가 없고, 축약했으되 한마디 놓친 게 없다.”

간략하지만 빠진 것이 없으며 풍성하면서도 사족이 없다는 의미다. 글을 그렇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펴낸 에세이 안쪽 내지에 쓰인 문구다. 직접 유 교수가 짓고 썼으며 문인화 한 점까지 첨부돼 있다.

책 제목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라는 제목부터 눈에 들어온다. ‘잡문집’, ‘인생만사’, ‘답사기’라는 키워드에서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대략 가늠이 된다.

사실 유홍준 하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글쟁이’ 가운데 한 명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국내편(1~12) 외에도 일본편(1~5), 중국편(1~3) 등 다수의 답사 관련 저서를 펴냈다. 지난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하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를 이끌었다.

일반 대중과 독자에게 유홍준은 문화유산답사를 매개로 개성적이면서도 맛깔스러운 글을 쓰는 글쟁이로 알려져 있다. 500만 부 판매라는 신화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그만의 글쓰기 비법에서 비롯됐다.

이번 책을 가리켜 저자는 ‘잡문집’이라고 일컫는다. ‘일정한 체계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쓴 글’을 잡문(雜文)이라고 한다. 고상하게 말하면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젊은 시절에 루쉰(魯迅)의 잡문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내 또래와 내 선배들 세대에게 루쉰은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루쉰은 자신의 글을 잡문이라 했고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등 루쉰 잡문집이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알려진 대로 루쉰의 잡문은 일상과 사상을 아우르는 담론 성격의 글이다.

저자의 글은 여러 직장, 직책을 가로지른 데서 보듯 다양한 경험과 사유와 답사의 산물이다. 미술사학과 교수를 비롯해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 직함이 이를 방증한다. 직함에 따라 썼던 글과 생각의 단편들이 씨줄 날줄 엮이듯 글이라는 유기체를 형성한다.

책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인생만사’, ‘문화의 창’, ‘답사 여적’, ‘예술가와 함께’, ‘스승과 벗’ 등이 그것이다.

가장 앞자리를 장식한 첫 번째 잡문은 ‘고별연: 마지막 담배를 피우며’이다. 서두에 고별연을 실은 것부터 이색적인데 모티브가 담배다. 45년간 함께해온 기호품과 결별하기까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담배의 순기능을 비롯해 애용하던 담배 이름, 담배를 끊게 된 직접적인 이유 등을 기술하고 있다. “서럽고 처량하고 치사해서 끊은 것”이라고 한다. 담배 피우는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과 냉대가 직접적인 이유다. 유 교수는 “인생의 벗이 되어주었던 것에 감사하며 강제로 이혼당한 기분”으로 금연을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 봄 벗들이 떠나면서 장례를 치르다 다시 담배를 입에 댔고, 책 발간과 맞물려 다시 금연을 해야 하는 처지라고 고백한다.

식견이나 유려한 문체가 빛나는 글 가운데 눈에 띄는 작품은 ‘‘한국의 이미지’로서 누정의 미학’이다. 유 교수는 정자 내력을 알려주는 기문(記文)에 대해 “문사로서는 자신의 학식과 인문정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글이라고 본다.

성종 때 서거정이 금강변 정지산의 취원루에 붙인 기문을 명문으로 평가한다. “정자에 오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판을 바라보면서 농사의 어려움을 생각해보게 하고, 민가를 바라보면서는 민생의 고통을 알게 하고, 나루터와 다리를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내를 잘 건너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한편 ‘스승과 벗’에는 리영희 선생, 백기완 선생, 신영복, 이애주, 박영선, 홍세화 그리고 올해 세상을 떠난 김민기에 대한 추도사 등이 실려 있다. 또한 부록으로 ‘나의 글쓰기’에는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이 수록돼 있어 문장 강화를 위해 참고할 만하다. <창비·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