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자멸, 희망-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전체메뉴
절망과 자멸, 희망-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3년 04월 14일(금) 01:00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마태오복음 12장 20절) 부자들이 쌓아 올린 재산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정당한 방법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는지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적했는지 궁금하다. 정당한 방법이란 혼자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다.

작금의 세상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한다. 편안한 삶, 풍요로운 삶, 남들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최고의 목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것이 옳고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결코 옳고 좋은 것인지는 반문해 봐야 한다. 불편하고 부족해도 기쁘고 행복한 삶은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소개되는 부유한 이들과 기득권이라 칭하는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집중한다. 소유하고 쌓고 넘치도록 누리려고 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래서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는 모습이 다분하다. 그러나 이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부와 높은 자리는 항상 그들 곁에서 열심히 묵묵하게 일하는 이들의 덕이라는 사실이다.

부유함은 그냥 소유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자리와 같은 기득권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피와 땀의 결실이고 누군가의 목숨 값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편안과 풍요의 탐닉으로 가려지고 잊힌다.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들인데 보이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이 작은 이들이 있기에 자신들이 부를 향유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데도 말이다.

차별과 착취의 이유는 높고 낮음이라는 물질과 경쟁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한 이들과 가장 밑바닥에서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이들의 피와 땀이 저평가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말을 자주 사용했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화되어서는 안 된다.” 임마누엘 칸트의 말이지만 지금의 세상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모습이다. ‘절망과 자멸’에서, 절망은 어떤 기대와 희망에 대한 좌절이다.

우리가 무엇과 어디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 묻고 싶다. 희망이 갈기갈기 찢기고 짓밟히면 좌절하게 되는데, 좌절은 대부분 물질을 향한 절대적인 복종이며 결핍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이다. 그래서 절망은 자멸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페인어의 ‘Suicidio’(수이시디오)는 자살이라고 번역되는 단어이지만 자멸의 의미도 있다. 자신의 부와 자리를 위해 목적 자체인 인간 존재가 수단화되었을 때, 이용당한 사람들은 가진 것이 조금인데도 불구하고 그것마저도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러진 갈대를 꺾어 버리는 것이고, 약한 불씨를 강풍으로 꺼 버리는 것과 같다.

부정한 부자들의 부를 축적하는 방법도 그렇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 창고에 비어 있는 공간을 그대로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빈 공간을 기필코 채우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오직 한 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는 가난한 농부의 전 재산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빼앗고 빈 공간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부정하게 부를 축적하는 부자가 빈 공간을 채우려는 행태는 하나의 쾌락이지만, 가난한 농부에게는 자신과 가족에게 마지막 재산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쾌락을 위해 한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현상인데, 우리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부정한 부자는 망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농부의 존재는 자신을 지켜주는 동료요 세상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사실이다. 결국 부자와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부를 축적해 줄 원천과 자리를 만들어 주고 지켜 주는 근본을 없애 버려 자멸하는 어리석은 자일뿐이다.

“우리는 얻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지만, 주는 것으로 삶을 꾸립니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떠오른다. 절망으로 함께 자멸할 것인지, 아니면 희망으로 공존할 것인지? 부활을 맞이하며 모두가 희망으로 기뻐하기를 기대해 본다.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