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평화공원과 너븐숭이 4·3기념관]낭만 제주의 또다른 모습…4·3항쟁 흔적은 오늘도 숨을 쉰다
# 제주 4·3평화공원
민간학살 도민 처절한 삶 기억
발발부터 진상규명까지
평화·인권 소중한 가치 되새겨
# 너븐숭이 4·3기념관
북촌리주민 462명 학살 현장
민간학살 도민 처절한 삶 기억
발발부터 진상규명까지
평화·인권 소중한 가치 되새겨
# 너븐숭이 4·3기념관
북촌리주민 462명 학살 현장
![]() 제주 4·3평화공원에서 만나는 설치 작품 ‘이젠...’은 평화로운 미래를 기원하며 한발 한발 내딛는 이들의 마음이 담겼다. |
제주도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푸른 바다와 한라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 방문할 때마다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등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이 반기는 제주도하면 사람들은 휴양과 관광을 먼저 떠올린다. 낭만적인 제주의 한편에는 또 다른 모습이 감춰져 있다. ‘제주 4·3항쟁’의 흔적이다. 제주 4·3항쟁은 공식 기록 1만4533명, 진상조사에서는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수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뒤로 하고 ‘역사의 현장’을 방문한 이들과 함께 천천히 둘러본 제주 4·3항쟁의 흔적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만난 각종 역사적 자료와 숱한 사연, 그 이야기들을 풀어낸 작품들을 보며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한발은 다가선듯했고, 너븐숭이 마을의 ‘애기무덤’ 앞에서는 쉽사리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특히 과거의 역사를 재현할 뿐 아니라, 현재로의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다양한 작품들은 역사가 현재도 숨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먼저 찾은 곳은 제주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제주 4·3평화공원.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학살과 제주도민의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조성된 평화·인권기념공원이다.
그 중에서도 2008년 개관한 제주4·3평화기념관은 핵심공간이다. 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외양은 4·3의 역사를 담은 ‘진실의 그릇’ 형태를 하고 있다.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를 토대로 전시 연출된 상설전시실은 4·3의 발발, 전개, 결과, 진상규명운동까지 전 과정이 차례로 펼쳐져 있어 자연스럽게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흔들리는 섬-해방과 좌절’, ‘바람타는 섬-무장봉기와 분단 거부’, ‘불타는 섬-초토화와 학살’, ‘흐르는 섬-후유증과 진상규명 운동’,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다’ 등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실은 잘 짜여진 구성으로 역사의 흐름을 한 눈에 가늠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3항쟁은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해 경찰,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단독정부를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4·3을 다룬 영화 ‘지슬’의 어느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제주 전통의 용암동굴 통로를 지나면 이름없는 백비(白碑)가 눈에 들어온다. 봉기와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불려온 4·3이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글귀가 무겁게 다가온다.
수많은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과 함께 미래의 세대에게 그 가치를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게 예술로 승화된 작품들이다. 박재동 화백의 애니메이션, 문경원 작가의 미디어 작품 ‘레드 아일랜드’, 강요배 작가의 ‘제주도민의 5·10’, 고길현 작가의 ‘학살의 유형’ 등을 만날 수 있다.
평화공원 이곳 저곳에는 의미있는 공간이 많다. 위령탑을 중심으로 들어서 있는‘각명비’(刻銘碑·죽은 사람의 성명, 성별, 연령, 사망 일시 및 장소 따위가 기록된 비석)와 예비 검속과 대전, 경인, 제주, 호남 등지 형무소로 이송된 후 행방불명된 제주도민3953위(2020년 현재)가 안치된 행방불명 표석은 4·3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보여준다.
마음을 움직이는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작품이 ‘비설(飛雪)’이다. 조각상을 둘러싼 제주 돌담을 따라 걷는다. 돌담을 따라 ‘월이 자랑 월이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놈으 아기 우는 소리/우리 어진이 단밥먹엉 혼저 재와줍서’라는 제주 자장가 ‘웡이 자랑’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만나는 건 눈밭에서 어린아이를 꼭 껴안은 엄마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다. 1949년 1월 6일 토벌대를 피신하던 도중 눈보라속에서 희생된 25살 어머니(변병생)와 두 살배기 딸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된 작품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4·3하면, 동백꽃을 떠올린다. 1992년 강요배 작가의 4·3연작 ‘동백꽃 지다’를 통해 상징성을 갖게 된 동백꽃은 제주4·3 70주년이었던 2018년 이후부터 4·3의 상징이 됐다. 평화공원에서도 붉은 동백꽃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4·3 당시 민간인들의 죽음과 수의(壽衣)’를 모티브로 한 작품 귀천((歸天)’도 인상적이다. 죽음에 대한 직접적 묘사 대신 어른 남녀, 청소년 남녀, 어린 아기 등 5개의 수의를 단순화시킨 부조 작품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원 잔디밭에 놓인 강문석·서성봉 작가의 ‘이젠...’은 평화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담긴 작품이다. 4·3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됐던 조각상을 평화공원으로 옮겨 세운 것으로 제주를 상징하는 한라산을 배경으로 남녀노소의 모습이 담겼다.
발길을 옮겨 평화공원에서 30분쯤 떨어진 조천면 북촌리 너븐숭이 4·3기념관으로 향했다. 북촌리는 1949년 1월17일 토벌대가 마을 주민 462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북촌마을에서는 한날 한시 제사를 지내고, 한 때 ‘무남촌(無南村)’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희생자 이름이 새겨긴 검정색 현수막과 촛불 하나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어지는 증언 역시 생생하고 아프다. “동생들을 찾기 위해 막 다녔는데, 저 소냥밭에서 찾았어요. 제일 밑에 동생(당시 5세)은 총 안맞고, 추워서 죽었어요. 누이동생(10세)은 가시덤불 위에 넘어져 있었고, 제 밑에 동생(8세)은 이마에 총을 맞았어요. 각기 손에 고무신을 다 쥐고 그렇게 죽어있었어요. 그래서 너븐숭이에 지금 무덤이 있어요.”(김석보·북촌리 주민).
기념관 앞에는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들의 무덤인 ‘애기무덤’이 남아있다. 20여기 가운데 적어도 8기 이상이 학살된 어린아이 무덤이라고 한다. 당시 어른들의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됐지만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 매장 상태 그대로 남아있다. 누군가가 놓아둔 장난감 자동차, 인형, 과자 등에 눈길이 머문다. 함께 전시관을 둘러봤던 초로의 부부가 무덤 앞에 한참을 서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현기영 소설가의 작품 ‘순이삼촌’ 문학비다. 여느 문학비와 달리 바닥에 흩어져 있는 문학비에는 ‘순이삼촌’의 구절구절이 새겨져 있다. 현기영은 197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북촌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순이 삼촌’을 발표했고 30여년간 금기시돼온 제주 4·3을 정면에서 다뤘다는 이유로 그는 정보기관에 연행돼 고초를 겪어야했다.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 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은 당연한 거야.” 제주에서 발행되는 ‘제주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현기영이 했던 말이다.
4·3은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현재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까지 10회를 진행한 ‘제주 4·3평화문학상’은 시, 소설, 논픽션 분야에서 수상자를 발표하는 데 장강명 ‘2세대 댓글부대’, ‘아몬드’ 작가 손원평의 ‘1988년생’ 등이 당선됐다. 또 소설가 김석범과 현기영, 정치학자 브루스 커밍스가 수상한 ‘제주 4·3평화상’ ‘4·3과 평화영상공모전’ 등도 눈에 띄며 올해는 ‘4·3 언론상’을 신설했다.
눈에 띄는 건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다. 제주4·3의 아픔과 토벌대의 학살로 아이를 잃은 어미의 슬픔을 4막의 오페라로 표현한 소설 ‘순이삼촌’이 원작이다. 지난 2020년 초연된 후 올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됐으며 일본 등 해외 공연도 추진중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4·3의 상징인 동백꽃 조형물. |
‘흔들리는 섬-해방과 좌절’, ‘바람타는 섬-무장봉기와 분단 거부’, ‘불타는 섬-초토화와 학살’, ‘흐르는 섬-후유증과 진상규명 운동’,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다’ 등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실은 잘 짜여진 구성으로 역사의 흐름을 한 눈에 가늠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3항쟁은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해 경찰,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단독정부를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4·3을 다룬 영화 ‘지슬’의 어느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제주 전통의 용암동굴 통로를 지나면 이름없는 백비(白碑)가 눈에 들어온다. 봉기와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불려온 4·3이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글귀가 무겁게 다가온다.
수많은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과 함께 미래의 세대에게 그 가치를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게 예술로 승화된 작품들이다. 박재동 화백의 애니메이션, 문경원 작가의 미디어 작품 ‘레드 아일랜드’, 강요배 작가의 ‘제주도민의 5·10’, 고길현 작가의 ‘학살의 유형’ 등을 만날 수 있다.
![]()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비설’ |
마음을 움직이는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작품이 ‘비설(飛雪)’이다. 조각상을 둘러싼 제주 돌담을 따라 걷는다. 돌담을 따라 ‘월이 자랑 월이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놈으 아기 우는 소리/우리 어진이 단밥먹엉 혼저 재와줍서’라는 제주 자장가 ‘웡이 자랑’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 만나는 건 눈밭에서 어린아이를 꼭 껴안은 엄마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다. 1949년 1월 6일 토벌대를 피신하던 도중 눈보라속에서 희생된 25살 어머니(변병생)와 두 살배기 딸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된 작품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4·3하면, 동백꽃을 떠올린다. 1992년 강요배 작가의 4·3연작 ‘동백꽃 지다’를 통해 상징성을 갖게 된 동백꽃은 제주4·3 70주년이었던 2018년 이후부터 4·3의 상징이 됐다. 평화공원에서도 붉은 동백꽃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 북촌리 마을의 현기영 문학비 |
공원 잔디밭에 놓인 강문석·서성봉 작가의 ‘이젠...’은 평화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담긴 작품이다. 4·3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됐던 조각상을 평화공원으로 옮겨 세운 것으로 제주를 상징하는 한라산을 배경으로 남녀노소의 모습이 담겼다.
발길을 옮겨 평화공원에서 30분쯤 떨어진 조천면 북촌리 너븐숭이 4·3기념관으로 향했다. 북촌리는 1949년 1월17일 토벌대가 마을 주민 462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북촌마을에서는 한날 한시 제사를 지내고, 한 때 ‘무남촌(無南村)’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희생자 이름이 새겨긴 검정색 현수막과 촛불 하나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어지는 증언 역시 생생하고 아프다. “동생들을 찾기 위해 막 다녔는데, 저 소냥밭에서 찾았어요. 제일 밑에 동생(당시 5세)은 총 안맞고, 추워서 죽었어요. 누이동생(10세)은 가시덤불 위에 넘어져 있었고, 제 밑에 동생(8세)은 이마에 총을 맞았어요. 각기 손에 고무신을 다 쥐고 그렇게 죽어있었어요. 그래서 너븐숭이에 지금 무덤이 있어요.”(김석보·북촌리 주민).
![]() 북촌리 마을의 애기무덤 |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현기영 소설가의 작품 ‘순이삼촌’ 문학비다. 여느 문학비와 달리 바닥에 흩어져 있는 문학비에는 ‘순이삼촌’의 구절구절이 새겨져 있다. 현기영은 197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북촌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순이 삼촌’을 발표했고 30여년간 금기시돼온 제주 4·3을 정면에서 다뤘다는 이유로 그는 정보기관에 연행돼 고초를 겪어야했다.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 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은 당연한 거야.” 제주에서 발행되는 ‘제주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현기영이 했던 말이다.
![]() 6개의 상설 전시실 등으로 이뤄진 ‘제주 4·3평화 기념관’에서는 4·3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만날 수 있다. |
눈에 띄는 건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다. 제주4·3의 아픔과 토벌대의 학살로 아이를 잃은 어미의 슬픔을 4막의 오페라로 표현한 소설 ‘순이삼촌’이 원작이다. 지난 2020년 초연된 후 올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됐으며 일본 등 해외 공연도 추진중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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