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불씨, 인간을 태우다…차범석 ‘산불’ 무대에
광주연극배우협회 20회 정기공연…19~20일 광산문예회관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 조명…지역 연극인들 순수 제작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 조명…지역 연극인들 순수 제작
![]() 광주연극배우협회가 오는 19~20일 광산문예회관에서 차범석 희곡 ‘산불’을 선보인다. 출연 배우들의 연습 장면. <광주연극배우협회 제공> |
![]() 광주연극배우협회가 오는 19~20일 광산문예회관에서 차범석 희곡 ‘산불’을 선보인다. 출연 배우들의 연습 장면. <광주연극배우협회 제공> |
갈등과 분열이 일상이 된 오늘, ‘산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질문을 던진다.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의 명작을 지역 배우들이 무대 위로 다시 불러낸다.
작품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젊은 남성들이 모두 전장으로 떠난 산촌을 배경으로 한다. 마을에는 과부와 노인들만 남아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가고, 그 틈으로 전직 교사 출신의 탈출 공비 규복이 숨어든다. 두 젊은 과부 점례와 사월은 규복과의 만남을 계기로 억눌려 있던 욕망과 갈등을 터뜨린다. 사월이 규복의 아이를 임신하자 점례는 그들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권한다.
작품은 이념의 옳고 그름을 단순하게 재단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비정상적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욕망에 흔들리고, 공동체가 얼마나 잔혹한 선택을 강요받는지를 묘사한다. 규복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 시대에 휩쓸린 희생자에 가깝고, 점례와 사월 역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인물들이다.
이번 공연은 전쟁 속에서 선택권을 빼앗긴 개인들, 특히 여성들의 삶과 감정이 어떻게 왜곡되고 소모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전통적 가치와 유교적 규범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말할 언어조차 갖지 못했다. 이번 ‘산불’은 그 침묵의 지점을 파고든다.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은 ‘덜 말하고 더 보여주는’ 연출이다. 대사에 기대기보다 무대 이미지와 배우의 신체, 공간의 변화가 서사를 이끈다. 인물의 감정은 설명되지 않고 움직임과 호흡, 침묵과 음향을 통해 나타낸다. 관객은 이를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은 물론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품고 있던 긴장과 억압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연출을 맡은 김민호는 작품 속 여성들을 “피해자가 아니라 견딘 자, 그리고 다시 살아가야 했던 남겨진 자들”로 바라본다. 남편을 잃고 생계를 떠안은 채 공비와 국군 사이에 놓였던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과부라는 처지에 놓인 존재들이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결핍과 욕망, 고독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솔 회장은 “이번 작품은 녹록지 않은 제작 여건 속에서도 광주 연극인들의 마음과 진심이 모여 완성된 무대”라며 “연출부와 배우, 스태프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작품을 올렸다”고 했다.
이어 “전쟁 이후의 상처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 공동체의 균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 작품이 관객에게 깊은 울림으로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석 무료, 네이버폼 예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