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800㎞ 걷고 또 걷고 … 삶의 지혜 깨닫는 ‘길 위의 학교’
  전체메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800㎞ 걷고 또 걷고 … 삶의 지혜 깨닫는 ‘길 위의 학교’
‘여든의 도전’ 이경환 씨
TV 예능 접한 뒤 뇌리에 각인…“가보고 싶다” 꿈 꿔
아름다운 자연·길동무…새로운 것 만나는 즐거움 커
포르투갈서 출발하는 600㎞ 순례길 도전 목표
‘단단해진 나 발견’ 정금선 씨
75개국 여행…교사 직업 대신 오지·트레킹 여행가로 불려
건강 위기 극복 후 걸으며 온몸이 정화되는 경험
2025년 04월 23일(수) 08:00
홀로 800㎞를 뚜벅 뚜벅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많은 사람이 꿈꾸는 버킷 리스트다. 순례길 중 오리손에서 피레네산맥 정상으로 가는 길. <박응렬씨 제공>
지난 12일 광주가톨릭대평생교육원에서 진행된 ‘산티아고 스쿨’ 현장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몇 개월 후 당장 순례에 나서는 이들, 언젠가는 떠날 날을 기약하는 이들 모두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경청했다. ‘산티아고 스쿨’ 운영자이자 ‘그래서, 산티아고’의 저자인 박응렬 강사는 직접 배낭을 싸는 시범을 보이고 신발 신는 법 등을 알려주는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주말반·주중반으로 진행된 강의에는 모두 75명이 참여했고, 경기도 화성에서 온 이도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다. 지난 한해에만 7900명의 한국인이 순례길을 걸었다. 800㎞에 이르는 길을 뚜벅뚜벅 걷는 일. 사람들은 길 위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 걸까. 길을 걷고 돌아온 이들, 앞으로 길 위에 오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티아고 전도사’ 박응렬 씨 부부
◇여든의 도전 이경환=광주 두암동 집에서 충장로 약속장소까지 40분을 걸어서 온 이경환 씨는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해 하루 평균 2만보는 거뜬하다고 했다. 그는 제주 올레길을 세 차례 완주했고, 산도 즐겨 탄다.

이 씨는 지난해 9월5일부터 39일간 800㎞ 순례길을 걸었다. 지난 2019년 순례길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을 본 게 시작이었다.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꿈꾸었던 소망은 코로나로 지체되기는 했지만 결국, 현실이 됐다. 가족들의 반대는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아들고 잦아들었다. 그는 관련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떠남을 준비했다.

“하루 20~25㎞를 걸었죠. 걷는 것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발에 물집이 생겨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전 괜찮았어요. 출발할 때 불안한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부딪쳐 보자고 생각했죠. 젊은 친구들에게 자주 묻고, 휴대폰의 도움도 받았어요.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날 프랑스 공항에서 버스를 놓쳐 노숙을 하고 4박5일간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걷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걷을 때면 행복했다.

“아름드리 고목을 볼 때면 지금은 사라진 광주의 큰 포플라 나무들이 떠오르더군요. 우리나라와 달리 오래 전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도 마음에 남습니다. 공동 숙소에 머물며 기본을 지키는 것, 남을 배려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죠.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록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다 머릿속에 들어있습니다. 고생한 것도 다 추억으로 남아있지요.”

순례길은 근본적으로 혼자 걷지만, 자주 스치는 사람들이 있어 자연스런 만남이 이어진다. 이번 순례길에서는 좋은 ‘길동무’를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좋은 추억을 쌓았고, 경비도 450만원~500만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인연은 이어져 인터뷰 전날 4명의 순례길 동지들은 1박2일 일정으로 여수 금오도 트레킹을 다녀왔다.

“내 나이가 올해 여든입니다. 새삼스레 무엇을 하겠습니까. 지식들에게 피해 안주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 좋은 것들,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순례길은 봄풍경이 아주 멋지다고 해요. 올해는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을 걷고 내년에 포르투갈 쪽에서 출발하는 순례길 600㎞를 걸을 생각입니다. 벌써 책도 읽고 있고, 자료도 모으고 있습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경환씨. <이경환씨 제공>
◇단단해진 나를 발견 정금선=수피아여고 교사였던 정금선씨에게는 이제 오지·트레킹 여행가, 자유여행가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지금까지 75개국 550개 도시를 여행한 그는 인터넷에서 ‘거문고 선녀’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여행 관련 강연을 하고 책도 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예기치 않은 암수술을 해야했고,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2019년 길 위에 섰다. 그는 순례길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 산티아고 순례길 34일에 더해 프랑스, 포르투갈 여행 까지 모두 46일간의 여정을 이어갔고 책 ‘기적의 순례와 여행’을 집필했다.

“완주하고 나니 내 몸안의 불순물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기분이 좋았어요. 홀로하는 여행이 진정한 일탈이요,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800㎞나 되는 낯선 길을 홀로 걸어가는 일이 두렵기도 하지만 이 일을 해냈을 때의 놀라움과 자긍심,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나를 내려놓는 겸손함과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더해지면 걷는 일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

그는 취준생, 재수생, 이직을 꿈꾸는 사람 등 젊은이들에게 순레길을 적극 추천했다. 완주하고 나면 자신감과 강한 의지가 생기고 순례 후 일상에서 만나는 웬만한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다고 했다.

“순례길에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온전히 나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얻고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끼죠. 시나브로 스스로 선해지고 좋은 생각으로 뭉쳐지고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는 스페인 민박집에서 만났던, “길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천년의 건축물이 영혼을 위로하는 길은 오직 산티아고에만 있다”라는 말에 100% 동감한다고 했다.

암 수술 후 산티아고 길을 걷는 정금선 전 수피아여고 교사. <정금선씨 제공>
◇산티아고 전도사 박응렬=박응렬 전 영산강유역환경청장이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공직자 시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장기간의 해외여행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그는 2019년 34일간 915㎞를 걸으며 너무 많은 걸 얻었고, 그 길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아쉬워 2023년 책 ‘그래서, 산티아고’를 펴냈다. 같은 해 책을 읽은 아내가 자신도 산티아고길을 걷고 싶다고 제안해 부부는 함께 산티아고길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더 많은 사람이 산티아고길을 걸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산티아고 스쿨’을 열었고 올해는 부천과 광주에서 주말반과 주중반을 운영했다. 올해까지 모두 200여명이 강의를 들었으며 하반기에 한 차례 더 강좌를 열 예정이다.

그는 오는 5월 다시 한번 순례길에 나선다. 이번에는 까미노여행사의 가이드로 참여해 43일 동안 순례자들을 인솔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순례길과 순례자들에 대한 또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까미노와의 인연은 숙명”이라고 말하는 그는 “산티아고길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며 “기적같은 인연들과의 만남, 감사하는 마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과정, 몸은 가볍고 욕심은 사라지는 순간들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저자 박응렬씨가 운영하는 ‘산티아고 스쿨’
◇순례길을 꿈꾸는 이들= 산티아고 스쿨에서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부모님과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강연장을 찾은 청년도 있었고, 부녀가 함께 떠날 준비를 하기도 했다.

이연숙(62)씨는 올해 2월말 퇴직했다. 지난해 이미 프랑스 행 비행기 표를 끊어둔 그는 오는 8월 24일 출발해 40일간 친구와 함께 걸을 예정이다. 방학을 이용해 남미와 아프리카도 다녀오는 등 여행을 많이 했던 그는 가톨릭신자로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출발’에 대한 마음을 다지는 데 의미를 두려한다.

2021년 명퇴한 후 오는 5월 바르셀로나로 출발 예정인 최현요(56)씨는 “오늘 강의를 들으니 혼자 걷는 데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신감이 더 생긴다”며 “인생 2막을 앞두고 나를 찾고 싶은 마음인데, 무언가 얻어오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강연 후 비슷한 연배의 50~60대 여성 다섯명은 정보를 주고 받기 위해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퇴직했거나, 1~2년 안에 퇴직을 앞둔 이들이었다.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백두대간길을 걸으며 준비한 이도 있었고, 2년짜리 1000만원 적금을 넣고 있는 이, 하루 1만보씩을 걸으며 처음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다.

‘홀로 걷는 일’에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두려움도 갖고 있지만 자유롭게 길을 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하나였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산티아고 순례길 (El Camino de Santiago)

예수 열두 제자 중 ‘사도 성 야고보’ 기리는 길

지난해 세계서 49만9242명, 한국서 7910명 순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성 야고보(스페인 이름 산티아고)를 기리는 순례길이다. 사람들은 프랑스 등 여러 곳에서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자리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지난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방문객은 49만 9242명으로 최대를 기록했으며 1위는 20만 8000명이 다녀간 스페인이었다. 한국 방문객은 7910명으로 세계 10위를 차지했으며 2023년에는 7563명이 순레길에 올랐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하는 프랑스길(약 800㎞)을 걸었다. 홀로 떠나는 순례객이 많지만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행사들이 패키지도 운영한다.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