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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관에서 배운다 <2> 차별화된 컬렉션(중)
자선사업가 기증으로 완성된 ‘LACMA 컬렉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2008년 개관… 서부 최대 미술관
202개 가로등 조형물 ‘어반 라이트’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컬렉션
파블로 피카소 ‘초상화 시리즈’ 등
15만2000여 작품 스케일 인상적
2023년 12월 17일(일) 19:15
미 서부 최고의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은 LA의 자선사업가, 미술애호가, 기업인들이 기증한 컬렉션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미술관은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기증자의 이름을 딴 상설 갤러리를 꾸며 명품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LA를 찾은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다운타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이하 LACMA)이다. LA 도심의 더 브로드(The Broad),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미술애호가들 사이에는 반드시 가봐야 할 필수 코스다.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 맞서기 위해 지난 2008년 문을 연 미 서부 최대 주립미술관이기 때문이다.

LA의 낮과 밤을 밝히고 있는 크리스 버든의 ‘어반 라이트’(Urban Light).
LA의 윌쇼가에 자리한 LACMA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야외 조형물 ‘어반 라이트’(Urban Light)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2008년 개관과 동시에 선보인 ‘어반라이트’는 1920년대와 1930년대 LA시를 밝힌 가로등 202개를 복원해 만든 작품이다. 이곳에 둥지를 튼지 불과 15년만에 LACMA의 아이콘이자 LA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LA의 낮과 밤을 밝히고 있는 크리스 버든의 ‘어반 라이트’(Urban Light).
얼핏 ‘빛의 사원’을 연상케 하는 어반 라이트는 미국의 개념주의 작가 크리스 버든이 수년간 공들여 기획한 결정체다. 밤이 되면 ‘안전하지 않은’ LA를 밝게 비추기위해 고안된 것으로 로마의 사원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202개의 가로등은 로마 건축양식의 기둥을 닮았다.

특히 작가는 작품에 타이머를 설치해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빛의 세기에 따라 램프의 조도가 바뀌는 드라미틱한 효과를 연출했다. 햇볕이 강한 한낮에는 평범한 조형물이지만 해가 지는 늦은 오후에는 조명에 불이 켜지고 컴컴한 야간에는 강렬한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어반 라이트는 LA의 밤을 안전하게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다.

방문객들은 미술관에 입장하기전에 이 곳에 잠시 머무르며 인증샷을 찍는 등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미술관에서 2~3시간 작품을 감상한 후 오후 늦게 밖으로 나오면 어느새 환하게 불을 밝힌 황홀한 광경에 또 한번 탄성을 터뜨린다. 낮에는 시민들의 쉼터로,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는 관람객들로 연중 문전성시를 이룬다.

자선사업가 헨리 라조로프가 기증한 세계적인 조각가 알베르트 자코메티 컬렉션.
하지만 LACMA의 진가는 인류의 6000년 예술적 표현을 담은 15만2000여 점의 컬렉션에 있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컬렉션을 한곳에 모은 전시장에서부터 야외마당의 대지 미술가 마이클 하이저의 ‘공중에 뜬 바위’(Levitated Mass)는 한 해 관람객 120만 명을 끌어 들이는 일등공신이다.

특히 지하에 자리한 한국관에는 다양한 그림과 서화 등이 전시돼 한국미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위스 출신의 자코메티 컬렉션은 여타 미술관과 차별화된 스케일이 인상적이다. 1922년 스위스에서 파리로 건너간 그는 실존주의 작가 샤르트르와 친분을 맺은 데 이어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의미를 되돌아 보는 작업에 몰두했다. 외형적으로, 그의 조각상은 전통적인 인체의 모습과 달리 길고 가느다란 모습과 큰 보폭으로 걷는 독특한 이미지다. 부피를 줄인 최소한의 형상이지만 그 어떤 거대한 인체에서 느끼기 힘든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조각 컬렉션은 최소한의 선만 남긴채 극도의 단순화를 통해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LACMA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피카소 컬렉션. ‘헬렌 파멜린의 초상화’(Portrait of Helene Pameline)
LACMA에서 놓칠 수 없는 또 다른 컬렉션은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초상화 시리즈이다. 미술관 3층에 자리한 ‘피카소 갤러리’는 친구, 모델, 연인 뿐만 아니라 자신을 그린 초상화 10여 점이 전시돼 있는 데, 이중 뮤즈이자 연인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사진작가 도라 마르를 그린 ‘손수건을 쥐고 우는 여인’(Weeping Woman with Handkerchief·1937년)과 마지막 연인이자 46세 연하의 부인인 재클린을 모델로 그린 ‘재클린의 두상’(Head of a Woman, 1961~62년)은 세기의 걸작으로 꼽힌다.

LACMA가 자코메티와 피카소의 명작들을 품게 된 데에는 작곡가 헨리 라조로프(Henri Lazarof, 1932~2013)의 기증이 있었다. 불가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그는 부인 제니스(Janice)와 공동으로 평생 모은 당시 1억 달러의 컬렉션을 LACMA에 쾌척한 것이다.

LACMA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피카소 컬렉션. ‘손수건을 쥐고 우는 여인’.
컬렉션의 리스트에는 ‘여인의 두상’(Head of a Woman, 1906년), ‘손수건을 쥐고 우는 여인’, ‘할러퀸’(Harlequin, 1923년) 연작 등 피카소 작품 20점과 알베르토 자코메티,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헨리 무어, 후안 미로, 윌렘 드 쿠닝 등 현대미술작가의 130 점이 포함됐다. 미술관측은 제니스 & 헨리 라조로프의 기증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제니스 & 헨리 라조로프 컬렉션 갤러리’를 꾸며 이들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4년 LA 자선사업가 제롤드 페렌치오로 부터 기증받은 프랑스 회화 작품 45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작품 가운데에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Nympheas,1905)과 마네의 ‘초상화’(M. Gauthier-Lathuille fils, 1879), 에드가 드가의 ‘카페 풍경’(Au Cafe Concert, 1875), 르네 마그리트의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 1935) 등이 포함돼 있다. 당시 5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일명 ‘제롤드 페렌치오 컬렉션’은 LACMA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기증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기증으로 LACMA는 인상주의와 모더니즘 작품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미술관으로 자리잡게 됐다.

당시 제롤드 페렌치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LACMA가 세계적 미술관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고 흔쾌히 미술품을 기증하게 됐다”면서 “이번 기증이 주변의 컬렉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란다”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LA=글·사진=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