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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주특별자치도 -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아트 아일랜드’
미술관과 연계 ‘저지예술인마을’
작가 30여명 스튜디오·갤러리 입주
유명 작가 이름 딴 미술관 10여개
서커스공연장 개조 ‘노형수퍼마켙’
‘유동룡 미술관’ 뉴 핫플레이스로
2023년 11월 07일(화) 20:55
매년 1천만 여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제주도에는 도립미술관과 시립미술관 등 모두 7개의 공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제주도립관 전경.
광주 출신의 서양화가 장정순(65·장정순 갤러리 대표)씨는 올해로 ‘제주살이’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결혼 후 대전에 정착해 살던 장씨는 지난 2000년대 중반 남편과 함께 오랜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왔다.

장씨 부부를 제주로 이끈 건 ‘저지문화예술인마을’(저지예술인마을)이었다. 지난 2010년 제주도가 제주시 현경면 저지리 일대를 문화지구로 지정하고 전국의 예술가들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수십 여개의 미술관을 연계시켜 서울의 인사동,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 마을에 뒤지지 않는 ‘아트 아일랜드’로 가꾸기 위해서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인근에 자리한 제주현대미술관.
제주의 저지예술인마을 프로젝트에 손을 내민 예술인은 30여 명. 이들 가운데에는 장씨를 비롯해 지난달 세상을 떠난 고 박서보 화백(1931~2023), 서양화가 김창열(1929~2021), 김흥수 화백(1919~2014) 등이 포함됐다.

10년 전 이 곳에 둥지를 튼 장씨는 초기엔 작업실에서 그림을 주로 그렸지만 8년 전 ‘장정순 갤러리’라는 근사한 건물과 게스트 하우스를 지어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건물에는 장씨의 작품들이 내걸린 전시장에서부터 캔버스와 물감이 놓여있는 아틀리에, 간단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꾸며져 있다. 저지예술인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작가의 완성된 그림은 물론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전경.
장씨는 “2023년은 저지예술인마을이 설립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매년 10월이면 입주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아트 & 저지’가 열리는 데 올해는 20년에 맞춰 21개의 갤러리와 공방에서 다양한 주제로 기념전시 주간(10월20~29일)이 진행됐어요.”

초창기 예술인들의 ‘신청’이 저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저지예술인마을은 인근의 제주현대미술관과 분관, 김창열 도립미술관, 김흥수 아뜰리에 등이 속속 문을 열면서 제주의 특화된 문화예술지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유동룡(이타미 준)미술관은 ‘바람의 건축가’로 불리는 유씨의 삶과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김용관
현재 예술인마을에는 ‘먹글이 있는 집’, 박광배(사진가), 고영훈(화가), 양순자(몽생이), 갤러리 노리(이명복), 갤러리 데이지, 서담 미술관, 제이제이 갤러리, 더갤러리 현(김현숙), 파파사이트, 규당미술관 등이 들어서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예술인마을과 인접한 곳에 방주교회, 포도호텔을 설계한 ‘바람의 건축가’ 재일 교포 유동룡(이타미 준, 1937~2011)의 삶과 예술세계를 담아낸 ‘유동룡 미술관’이 개관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저지예술인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공간은 제주현대미술관(관장 변종필)이다. 지난해 개관 15주년을 맞은 제주현대미술관은 예술인마을의 다양한 문화공간과 어우러져 관광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문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저지예술인마을 20주년을 기념해 제1기 입주작가였던 고 김흥수 화백의 10주기(2024년)와 제주 출신 변시지 화백(1926~2013)의 10주기(2023)에 맞춰 기획한 ‘황금빛 고독, 폭풍의 바다’전이 좋은 예다.

지난해 제주현대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18만 명으로 개관 사상 최고의 기록을 거뒀다. 특히 인근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공수장고 다목적실’에만 5만 여명이 다녀갔다. 비어있던 공간을 문화체육관광부로 부터 지원을 받아 미디어아트 영상실로 꾸며 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활용한 몰입형 실감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변종필 관장은 “제주도는 7개의 공립미술관(제주시3, 서귀포시 4개)과 14개의 사립미술관이 운영되는, 말 그대로 예술의 섬”이라면서 “개별 미술관 마다 차별화된 콘셉트와 주제의 기획·상설전은 전시가 바뀔 때 마다 관광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제주를) 방문하게 하는 유입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변 관장의 말대로 제주에는 유명 작가들의 이름을 딴 미술관들이 10여 개에 이른다. 타 지역 출신이지만 제주도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작가들이 대부분으로,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인기가 높다. 평안남도 출신인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은 6·25 한국전쟁 당시 제주로 남하해 1년간 서귀포 칠십리에서 살았고, ‘물방울화가’ 김창열(1929~2021) 역시 전쟁을 피해 1년 6개월 이곳에 머물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돼 1985년 섬에 둥지를 틀었다.

건축가 홍재승씨의 설계로 지난 2016년 개관한 김창열 미술관은 지난 2021년 92세로 세상을 떠난 한국추상미술 거장의 치열한 예술세계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심플한 디자인의 블랙톤 외관과 미술관 입구의 물방울 조형물이 인상적인 이곳은 저지예술인마을의 구심체이기도 하다. 제주도가 총사업비 92억 원을 투입해 지상 1층, 연 면적 1597㎡ 규모로 건립한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미술관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한자 돌아올 회(回) 모양이다. 김 화백은 캔버스의 물방울 작업을 통해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보낸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비록 세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제주도에 가면 이들의 예술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중섭미술관과 초가, 제주도립김창열 미술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덕분이다. 이들 미술관은 차별화된 컬렉션과 프로그램으로 제주의 문화명소로 자리잡았다.

근래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코스가 있다. 다름 아닌 몰입형 미디어아트 체험관이다. 지난 2017년 제주 서귀포시 고성리에 문을 연
옛 서커스장을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한 ‘노형수퍼마켙’ 내부 모습.
‘빛의 벙커’와 지난 2020년 옛 스피커 제조공장을 리모델링한 ‘제주 아르떼 뮤지엄’, 2021년 서커스장을 개조한 ‘노형수퍼마켙’이 개관하면서 미디어아트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제주에 가장 먼저 등장한 ‘빛의 벙커’는 가로 100m, 세로 50m, 외부 높이 10m, 내부 높이 5.5m에 달하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젊은 세대들로 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아르떼 뮤지엄은 누적관람객이 200만 여 명으로 개인 관람객은 물론 가족단위, 수학여행 등의 단체 관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도심 속 미디어아트장’을 표방한 노형수퍼마켙은 최대 20m 높이의 6층 건물 크기로, 프로젝터 46대와 7.1채널 EAW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한 사운드와 영상이 관람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처럼 자연과 예술, 그리고 미디어가 공종하는 제주는 색다른 추억과 감동을 선사하는 미래의 관광지로 변신중이다.

/제주=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