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리는 데 시민·계엄군 따로 있나요”…삼일의원 정영일 원장·반이비인후과의원 반상진 원장
5·18 당시 계엄군에 ‘온정’ 삼일의원 정영일 원장·반이비인후과의원 반상진 원장
부상 치료해주고 사복 입혀 병원 뒷골목으로 부대 복귀 도와
치료받았던 군인 43년만에 찾아와 큰절 올리며 ‘눈물의 재회’
부상 치료해주고 사복 입혀 병원 뒷골목으로 부대 복귀 도와
치료받았던 군인 43년만에 찾아와 큰절 올리며 ‘눈물의 재회’
![]() 삼일의원 정영일 원장 |
지난달 24일 광주시 북구 임동 삼일의원에 뜻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43년 전 5·18민주화운동 당시 삼일의원 정영일(83) 원장에게서 치료를 받은 계엄군이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며 방문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도움으로 정 원장을 만난 이 계엄군은 “43년이 지나서야 생명의 은인을 찾아뵙게 돼 죄송하다”면서 정 원장에게 큰절하며 눈물의 재회를 이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자신들을 해치는 계엄군조차 감싸며 온정을 베풀었던 시민들이 있었다.
삼일의원 정 원장과 광주시 동구 황금동에서 반이비인후과의원을 운영 중인 반상진(91) 원장이 그렇다. 이들은 부상당하거나 낙오된 계엄군이 발생하자 그들을 치료해주고 다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숨겨주면서 온정을 베풀었다.
삼일의원 정 원장은 5·18 당시 시위에 휘말려 실종됐던 20사단 61연대 소속 계엄군의 부상을 치료해 줬다.
정 원장은 5월 24일께 시민들이 부상당한 계엄군을 리어카에 싣고 왔던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전했다. 이 계엄군은 뇌를 받치고 있는 뼈에 금이 간 상태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군인이고 나발이고 일단 다친 사람부터 살려야 될 거 아니냐”, “이 사람을 꼭 살려달라”며 계엄군을 정 원장에게 맡겼다.
정 원장은 직접 응급 처치를 하고 병원 2층 개인실에 계엄군을 숨겨 주며 치료를 계속했다.
정 원장은 “광주국군통합병원에 이송 요청을 했는데, 구급차가 없는데다 민심이 사나워 이송할 수가 없다며 번번이 거부당했다”며 “일주일 가까이 계엄군을 숨겨주며 치료했는데 정말 하루가 3년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바깥 상황이 안정되자 정 원장은 “군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면서 계엄군에게 자기 사복을 건네 무사히 부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정 원장은 “적십자 정신이란 것이 시민, 계엄군 나눠서 적용되는 게 아니고, 환자를 가려 받는 건 의료법에도 어긋나는 행위다”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의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웃었다.
반이비인후과의원 반 원장은 5·18 당시 전남도의사협회장을 맡으면서 광주 전역의 의사들에게 “모든 병원을 24시간 가동하고 시민·계엄군 가릴 것 없이 받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던 중 1980년 5월 21일 11공수부대 소속 대구 출신 계엄군이 계엄군 퇴각 지시를 미처 못 받고 낙오된 채 시민들에게 붙들려 병원을 찾아왔다.
반 원장은 “시민들 여러 명이 계엄군을 붙잡아서는 ‘계엄군을 잡았는데, 부상을 입은 건지 부대에서 낙오된 것 같다’며 어떻게 할지 물어오더라고요. 일단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며 시민들을 돌려보내고, 의원 3층 벽장에 숨겨 줬습니다.”
5월 24일께 사태가 잠잠해지자 반 원장은 계엄군에게 자신의 사복을 내어주고, 병원 뒷골목길을 통해 몰래 부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항쟁 이후로도 계엄군이 ‘목숨을 건졌다’며 전화와 편지를 보내 왔으나, 반 원장은 “다 잊고 제 할 일 하며 살라”며 격려해주고는 연락을 끊었다고 돌아봤다.
반 원장은 “의사로서 사람을 살리는 데 시민이고 계엄군이고 따로 있나요. 그보다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을 잡았다고 곧장 보복하지 않고 병원으로 데려다 준 것이 다행이다”며 “따뜻한 광주시민 마음 덕에 생명을 살릴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삼일의원 정 원장과 광주시 동구 황금동에서 반이비인후과의원을 운영 중인 반상진(91) 원장이 그렇다. 이들은 부상당하거나 낙오된 계엄군이 발생하자 그들을 치료해주고 다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숨겨주면서 온정을 베풀었다.
삼일의원 정 원장은 5·18 당시 시위에 휘말려 실종됐던 20사단 61연대 소속 계엄군의 부상을 치료해 줬다.
정 원장은 5월 24일께 시민들이 부상당한 계엄군을 리어카에 싣고 왔던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전했다. 이 계엄군은 뇌를 받치고 있는 뼈에 금이 간 상태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군인이고 나발이고 일단 다친 사람부터 살려야 될 거 아니냐”, “이 사람을 꼭 살려달라”며 계엄군을 정 원장에게 맡겼다.
정 원장은 “광주국군통합병원에 이송 요청을 했는데, 구급차가 없는데다 민심이 사나워 이송할 수가 없다며 번번이 거부당했다”며 “일주일 가까이 계엄군을 숨겨주며 치료했는데 정말 하루가 3년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바깥 상황이 안정되자 정 원장은 “군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면서 계엄군에게 자기 사복을 건네 무사히 부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정 원장은 “적십자 정신이란 것이 시민, 계엄군 나눠서 적용되는 게 아니고, 환자를 가려 받는 건 의료법에도 어긋나는 행위다”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의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웃었다.
![]() 반이비인후과의원 반상진 원장 |
반 원장은 “시민들 여러 명이 계엄군을 붙잡아서는 ‘계엄군을 잡았는데, 부상을 입은 건지 부대에서 낙오된 것 같다’며 어떻게 할지 물어오더라고요. 일단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며 시민들을 돌려보내고, 의원 3층 벽장에 숨겨 줬습니다.”
5월 24일께 사태가 잠잠해지자 반 원장은 계엄군에게 자신의 사복을 내어주고, 병원 뒷골목길을 통해 몰래 부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항쟁 이후로도 계엄군이 ‘목숨을 건졌다’며 전화와 편지를 보내 왔으나, 반 원장은 “다 잊고 제 할 일 하며 살라”며 격려해주고는 연락을 끊었다고 돌아봤다.
반 원장은 “의사로서 사람을 살리는 데 시민이고 계엄군이고 따로 있나요. 그보다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을 잡았다고 곧장 보복하지 않고 병원으로 데려다 준 것이 다행이다”며 “따뜻한 광주시민 마음 덕에 생명을 살릴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