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식칼럼]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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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식칼럼]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정후식 논설실장·이사
2023년 02월 08일(수) 00:30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지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쓰나미 덮치듯 대유행이 일곱 차례나 반복되더니 소강 국면에 들어선 듯하다. 가족·친지들과 얼굴을 맞대고 거리 두기 없는 설 연휴를 보낸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됐다. 백신 접종과 치료제 공급 덕분이다. 코로나는 이제 계절 독감처럼 관리가 가능한 엔데믹(풍토병)으로 자리 잡는 양상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종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면역을 회피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근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엊그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해제 여부를 논의했지만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도시 봉쇄와 강제 격리로 ‘제로 코로나’를 꾀했던 중국도 “정권 퇴진” 구호까지 터져 나오자 백기를 들었다. 결국 세계 모든 나라가 코로나와 공존을 택하고 있다.



빼앗긴 애도의 시간·추모할 권리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 갔다. 방역을 이유로 일상생활과 이동이 제한되면서 경제는 침체의 수렁에 빠졌다. 직장 생활과 모임 등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소통 부족으로 인한 고립이 심화됐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력 격차가 커지고 출생률·혼인율마저 급락하는 등 사회 곳곳에 생채기를 안겼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소중한 이웃들을 허망하게 잃은 것이다. 7일 0시 기준 국내 누적 확진자는 3027만 9381명. 통계에 잡히지 않은 미확진 감염자까지 포함하면 국민의 70%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다 세상을 떠난 확진자는 3만 3624명에 달한다.

한데 코로나로 숨진 이들은 매일 발표되는 추상적 숫자로만 떠돌고 있다. 확진자·위중증 환자 수와 함께 감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이터의 하나일 뿐이다. 개별적 죽음의 절절한 사연은 알 길 없이 철저히 타자화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에겐 애도의 시간과 추모할 권리마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확진자가 사망하면 정부의 ‘선(先)화장, 후(後)장례’ 방침에 따라 24시간 내 화장을 해야 했다. 감염부터 임종에 이르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유가족들은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먼발치서 고인을 보내야 했다. 장례마저 화장시설 포화로 며칠씩 지연됐다.

더욱이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의료 공백이나 기저질환 악화, 과로·돌봄의 부재로 인한 죽음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유행이 없었다면 숨지지 않았을 ‘초과 사망자’가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 사이 4만 7516명에 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중 절반가량이 코로나 비확진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이고 우리와 동시대를 함께한 시민들이다. 늦었지만 숫자에 가려진 생명의 존귀함을 헤아리고 이름 없이 스러진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하기 위한 사회적 애도가 필요하다. 그동안 미국이나 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은 전국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고 사망자를 추모하는 정부·의회 차원의 애도 행사를 잇따라 열었다. 이를 통해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고통 속에 남겨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팬데믹 극복을 위한 국민의 단합을 호소했다.

3만 명이 넘는 국민을 잃은 우리나라 역시 상실의 고통이 집단적인 생채기로 남았지만 국가적 애도 분위기는 감지하기 어렵다. 사회적 애도는 지지와 연대를 통해 남은 사람들이 아픔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게 돕는다. 코로나 이후를 모색하는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려는 범사회적 노력이다.

감염병 하나를 막지 못해 지구 전체가 삼 년 이상 전쟁을 치르는 사이 680만 명이 숨졌다. 누구도 코로나가 이처럼 오래 이어질지, 엄청난 희생자를 낼지 예측하지 못했다. 종식의 시간표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의 말처럼 “바이러스가 정할 것”이다.

문제는 인류가 자초한 기후 위기로 인해 감염병은 더 자주, 더 파괴적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새로운 감염병 발생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사스(2002년), 신종인플루엔자(2009년), 메르스(2012년), 지카바이러스(2015년), 코로나19(2019년) 등 바이러스 출몰 주기는 점점 단축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다음 팬데믹에 대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약한 고리 ‘공공 의료’부터 강화를



사회적 애도는 감염병에 또다시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을 대비책과 자연을 착취하는 삶에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코로나는 민간에 90% 이상을 의존하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허약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중환자 병상이나 음압병실이 부족해 대기 중 숨지는 사태도 속출했다. 더 늦기 전에 공공 의료 시설과 인력을 확충해 필수 의료를 강화하고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의사와 공공 병원 부족 탓에 광주·전남에서는 날마다 네 명 이상이 제때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숨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전남은 전국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어 최악의 의료 취약지로 꼽힌다. 공공의료원의 부재로 감염병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광주의 현실도 방치해선 안 된다.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6월 세계 각국의 협력을 촉구하며 발표한 보고서 제목이다. 바이러스는 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노린다. 언제 닥칠지 모를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깊이 되새겨야 할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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