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식 칼럼] 호남 또다시 ‘정치적 섬’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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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식 칼럼] 호남 또다시 ‘정치적 섬’이 되는가
논설실장·이사
2022년 03월 30일(수) 03:00
대선이 끝난 지 어느덧 3주가 지났지만 그 파장은 여전하다. 국민 절반은 환호하고 나머지 절반은 절망했다. 지지층의 결집 속에 개표 막판까지 피 말리는 초박빙 접전이 펼쳐진 탓이다. 여야 정치권은 성별·세대 갈라치기와 네거티브 공방으로 혐오와 분열을 부추겼다. 서로를 적대시하다 보니 그야말로 ‘전쟁 같은 선거’가 치러졌다. 신구 권력 간 가파른 대치는 선거 이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는 그날의 치열했던 전황(?)이 생생히 남아 있다.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당선인은 1639만 4815표(48.56%)를 얻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1614만 7738표(47.83%)를 기록했다. 두 후보의 득표수는 역대 대선 후보들 중 1·2위에 해당한다. 표차는 불과 24만 7077표(0.73%)로 직선제 이후 사상 최소였다. 무승부에 가까운 간발(間髮)의 차이였지만 모든 것은 ‘승자 독식’이었다.



민주 쏠림, 국민의힘도 역대 최고



개표 과정을 어느 지역보다 마음 졸이며 지켜본 사람들은 호남 유권자들이었을 것이다. 광주 81.5%, 전남 81.1%, 전북 80.6% 등 전국 1~3위의 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참여 열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광주에서 84.82%, 전남 86.10%, 전북에서 82.98%를 득표했다. 압도적 지지였다. 반면 서울과 영남 등 열 개 시도에서는 윤 후보에 뒤져 호남 표심의 결집은 빛이 바랬다. 그 결과 호남이 또다시 ‘정치적 섬’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호남은 그동안 줄곧 민주개혁 진영을 지지해 왔다. 그 대가는 차별과 소외, 낙후였다. 보수 정권은 노골적이었고 진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호남은 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일까. 일부에선 배타적 지역주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호남은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을 지지했다. 역대 대선에서도 호남 후보를 제쳐두고 영남 출신인 노무현·문재인·이재명 후보에게 힘을 실어 줬다. 지연에 얽매인 ‘묻지 마’ 선택은 아니라는 얘기다.

호남 민심의 지지는 아마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체화된 정의·인권·평화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선거 결과가 종종 자신의 뜻과 다르게 귀결되어도 의연한 이유다.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보수 정당은 호남이 지향하는 가치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마음을 줄 만한 대안 세력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에서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도 통절한 반성이나 혁신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지도부 총사퇴 이후 당내 분란을 최소화한다는 명분 아래 ‘질서 있는 전열 정비’를 택했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그것이다. 한데 입으로는 반성과 분골쇄신을 이야기하지만 실천 의지가 의심스럽다. “대통령도 반성해야 한다”는 쓴소리에 발끈하고 나설 정도다. 0.73% 차이의 패배를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자위하려다 ‘지정못’(지고도 정신 못 차렸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천막 당사’나 ‘삼보일배’의 비장함도 없다. 오히려 야당이 되어도 172석의 슈퍼 정당 아니냐는 오만마저 읽힌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단일 대오가 아니라 백가쟁명이다. 성역 없는 난상공론으로 실패의 반복을 막기 위한 징비록(懲毖錄)을 새기고 과감한 혁신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 안에는 기득권을 해체할 정치 개혁과 인적 쇄신, 민생 회복 등 환골탈태 방안이 담겨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공천 쇄신은 말할 것도 없고, 호남의 상실감을 달래기 위한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대선 통계에 담긴 호남 민심에는 변화의 조짐도 있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광주에서 12.72%, 전남 11.44%, 전북에서 14.42%의 표를 얻어 보수 정당 후보로는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득표수도 44만 6869표에 달해 당락을 가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광주의 대표적인 아파트 부촌인 봉선2동 제5투표소에서 38.8%, 대학가와 가까운 서남동1투표소에선 30.3%를 얻었고, 고흥·영광·광양의 일부 투표소에서도 37~58%를 기록했다. 보수 정당 후보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던 호남 민심이 틈을 보이며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고립·소외 없도록 정책적 배려를



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는 우려스럽다. 인수위원 가운데 광주·전남 지역 출신은 한 명도 없고 전문·실무 위원도 소수다. 인수위는 차기 정부의 국정 과제와 지역 공약 등의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한데 호남은 인수위와 연결 고리가 약해 자칫 역대 보수 정권의 호남 소외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호남 지역 유권자 230만 가구에 직접 쓴 손편지를 보내 지지를 호소했다. 그 안에는 “5월 광주에 대한 보수 정당의 과오를 반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호남의 미래를 함께 걷고자 한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호남에서 저에게 주시는 한 표 한 표가 호남을 발전시킬 책임과 권한을 저에게 위임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고의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도 함께했다.

이제 윤 당선인이 진정성을 보여 줘야 한다.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면 대선 과정의 약속부터 국정 과제에 반영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 민주당과 적극 경쟁하면서 민심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호남도 고립에서 벗어나 정치적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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