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주방 연기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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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주방 연기가 무섭다
2022년 12월 14일(수) 22:00
예전에 자꾸 기관지에서 피가 나와 겁이 덜컥 났다. 몇 달 간 지속되다가 약을 먹으면 나아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종합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다. 시티(CT)를 찍었고 그는 “폐암이 의심된다”고 했다. 담배 탓이었을 거라고 했다. 끊었다. 금연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나는 호흡기가 안 좋다. 꼭 담배 때문에 폐가 나빠진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나는 기름 연기를 많이 마시는 요리사이고, 그걸 그 의사가 다 추정하지 못했다.

몇 년 전인가, 어느 산업의학자의 글을 읽었다. 요리사들이 폐암에 잘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통계는 아니었고, 외국의 사례를 들었다. 어느 지역 중국 여성들이(비흡연자) 유달리 폐암 발생률이 높길래 조사를 해 보니, 튀기고 볶는 요리가 많은 중국요리의 특성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요리를 하면 분진이 생긴다. 유증기라고도 하고, 요리 연기(cooking fume)이라고 한다. 아주 최근에 이런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교육부에서 조사한 ‘학교 급식 노동자 폐암 건강검진 현황’이 언론을 탄 것이다. 신문 기사 제목이 이랬다.

“급식 노동자 1백 명당 1인꼴 폐암 의심”

무서운 소식이다. 학교 급식 노동자가 최초로 산재 판정을 받은 것도 역시 최근이다. 그 이후 교육부에서 급히 조사를 한 모양이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외식이 증가하면서 가족 친지 중에 요리사가 없는 집이 드물다. 나는 오륙 년 전에 신문 칼럼에 이런 문제를 일찍이 경고하고 조사와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 그 이후 급식 노동자(요리사)의 폐암 산재 판정으로 사회의 수면 위에 떠오른 셈이다.

나는 주방에 미세먼지 측정기를 두고 검사를 해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볶고 굽고 튀기는 시간대에 미세먼지가 몇 백 단위로 올라간다는 걸 확인했다. 내가 일하는 주방은 배기 시설이 상당히 좋다. 그런데도 그렇다. 문제는 대다수 주방 배기 시설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영세할수록 더 심하다. 배기 설비는 상당히 비싸다. 요새는 연기를 마구 밖으로 빼지 못한다. 민원도 있고, 허가 관청에서 감독하기 때문이다. 5~6층 이상 되는 건물 1층이나 지하에 식당에 입주하면 옥상까지 배기통을 빼서 올리기도 한다. 당연히 거액의 비용이 든다. 그러니 영세한 식당은 어떻게든 ‘대충’ 배기를 하고 만다. 심지어 있는 배기 팬도 전기세가 들고 시끄럽다고 꺼놓는 경우도 많이 봤다. 아닌 게 아니라 고깃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제일 낫다는 말도 있다. 고깃집은 냄새와 연기로 배기 설비가 테이블마다 붙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치킨집도 유심히 봐야 한다. 치킨은 튀기는 작업이 이어진다. 튀김은 유증기를 많이 발생시킨다. 우리가 맡는 고소한 기름 냄새의 이면에는 그걸 만드는 사람의 고난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영세한 치킨집에 배기 설비를 제대로 갖추라고 압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단순히 허가와 행정지도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 차원에서 심도 있고 즉각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요리사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가. 조사만 하고 말 일도 아니다.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산재 판정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근로복지공단도 최근 급식 노동자의 폐암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주고 있는 추세다. 지금까지 50여 명이 인정받았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급식 요리사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므로 그나마 비교적 빨리, 전향적으로 산재 판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영세한 개인업체에 일하는 절대 다수의 일반 요리사들의 폐암은 아직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멀다고 할 수 있다. 또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끊었더라도 피운 이력이 있는 요리사는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으려면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튀기거나 볶는 요리는 맛있다. 구운 고기가 삶은 고기보다 맛있는 이유다. 구이집이 많은가 보쌈집이 많은가. 불고기가 한국의 대표 요리가 되고, 스테이크가 세계적 요리가 된 것은 바로 구울 때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맛 생성 프로세스가 가동되기 때문이다. 튀길 때도 마이야르 반응이 아주 높게 출현한다. 책상도 튀기면 맛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국민 건강에 정부, 지자체가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니 이런 설비를 할 때는 보조금이라도 지급해야 한다. 그게 사회적 비용이 훨씬 싸기도 하다. 무엇보다 얼마나 어떤 상황에 노출될 때 위험한지 정확한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 그래야 막연한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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