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면접·첫 출근…옷, 추억과 삶을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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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면접·첫 출근…옷, 추억과 삶을 소환하다
옷의 말들-알렉산드란 슐먼, 김수민 옮김
2022년 10월 08일(토) 03:00
흰색 셔츠, 슬립 원피스, 임부복, 트렌치코트, 트레이닝복, 티셔스, 비티니, 타이츠, 실내옷 가운….

위에 열거한 것들의 공통점은 옷이다. 물론 일부분이다. 셔츠도 종류에 따라 색상에 따라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옷장 안에 몇 벌의 옷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대부분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학 입학식 때 입었던 옷이나 첫 직장에 출근하면서 입었던 옷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정한 날에 입었던 옷은 기억과 아울러 추억 그리고 그 사람과 관련된 역사를 자연스럽게 소환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실은 옷이 지닌 역할이나 상징성은 간단치 않다. 옷은 그 사람을 드러내고 역사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간된 ‘옷의 말들’이라는 책은 옷장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작가이자 ‘보그’ 편집장을 지냈던 알렉산드라 슐먼이 저자다. 한 패션지의 전설적인 시대를 이끌었던 저자의 화려한 이면에 담긴 솔직한 삶과 옷에 대한 철학이 버무려져 있다. 저는 “‘보그’라는 필터를 통해 삶을 기록하는 작업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옷에 둘러싸여 살면서 그것이 일이 돼버렸다고 고백한다.

책은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파이낸셜 타임즈’ 올해의 책, ‘이브닝 스탠더드’ 올해 최고의 논픽셕에 선정됐다. 전설적인 편집장이 말하는 옷,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옷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생각하게 한다.

책에는 어린 시절 고른 신발, 첫 면접 때 입은 정장, 흰색 셔츠, 브래지어 등 옷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등이 담겨 있다. 어느 날 열어본 옷장에는 다양한 목록의 옷들이 있었다. 저자는 옷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각각의 아이템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숙고해본다. 브래지어에 대한 단상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내가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했던 시기인 1969년에 브래지어는 내가 간절히 기다렸던 유년 시절로부터의 탈출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자유를 상징하게 되었다. 바로 브래지어를 착용이 아닌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페미니즘에 일어난 새로운 움직임이 브래지어가 억압적인 남성의 시선을 상징한다며 거부했다. 여성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보좌관이 아니라 여성의 모든 자연적인 특성을 부정하고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공범으로 간주했다.”

특정한 날에 입었던 옷은 기억과 아울러 그 사람과 관련된 역사를 보여준다.
옷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옷과 액세서리와 백이 있는지를 통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옷은 원하든 원치 않든 현 시점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저자가 입사를 위해 면접 때 입은 정장은 이모가 준 선물이었다. 소유했던 것 중 가장 비싼 옷이었는데 ‘회의실과 사무실에서 좋은 심상을 줘야 한다’는 조카를 배려하는 이모의 진심이 투영돼 있다.

브로치와 배지, 핀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사실 휘장은 그 사람이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명징한 사물이다.

그 가운데 브로치는 제일 세련된 것이다. 이들은 원래 가시와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잠금장치였다. 그러나 진화를 거듭하면서 금속과 보석으로 제작됐고 부와 지위를 보여주는 도구가 됐다. 무엇보다 브로치는 착용하는 사람의 뜻을 드러낼 뿐 아니라 능력, 어떤 목소리를 함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저자는 80년대 초반 남자 친구가 선물했던 브로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분홍색 굴레와 색색의 유리로 된 인도코끼리 모양의 브로치다. 언제부턴가 저자는 향수를 환기하는 브로치를 더는 착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범박하게 말하면 옷은 한 개인의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인생의 조각이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답은 당신들이 입고 있는 옷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현암사·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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