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호남가야와 낭인 야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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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호남가야와 낭인 야쿠자
2021년 09월 16일(목) 05:00
이덕일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필자는 이 난에 “가야가 전라도까지 차지했다고?”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전북 남원의 유곡리 고분군을 ‘호남가야 유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비판한 칼럼이었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남원을 ‘기문가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하자 남원 시민들이 연일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성서인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기문을,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남원이라고 우겼는데, 이를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등재의 논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길한 현상의 조짐은 2019년 12월 3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한 ‘가야본성’이라는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서 중앙박물관은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음(서기)’라는 연표를 제시했다. ‘삼국유사’는 ‘금관·아라·고녕·성산·대가야·소가야’의 6가야가 있었다고 말하는데 박물관 측은 이름도 생소한 ‘비사벌·탁국·안라·다라·탁순’ 등의 7가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근거로 박물관 측이 괄호 안에 제시한 ‘서기’ 역시 ‘일본서기’를 뜻한다. ‘일본서기’라고 써 놓으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야사에 웬 일본서기?’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기에 ‘일본’이란 단어를 빼고 ‘서기’라고만 표기했다. 아비를 아비라고 부르지 못하는 슬픈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자화상이다.

중앙박물관이 말하는 369년조는 ‘일본서기’ ‘신공(神功) 49년’조를 뜻한다. 야마토왜의 신공왕후가 재위 49년에 왜군을 보내 신라를 공격하고, ‘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임나일본부설’의 핵심 구절인데, 다른 곳도 아닌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를 사실인 것처럼 버젓이 써 놓은 것이었다. 웃기는 것은 신공 49년을 서기로 환산하면 249년이지 369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극우파들이 서기 369년에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우기기 위해서 120년을 끌어올린 것을 대한민국 중앙박물관이 그대로 받아들여 제시한 것이다.

현재 한국 역사학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신석호의 제자들이 거의 100%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총론으로는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고 자찬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가면 ‘임나는 가야’라는 임나일본부설의 핵심 논리를 전파하고 있다.

호칭도 생소한 ‘호남가야’라는 말도 그 뿌리는 일본 극우파에 있다. ‘호남가야’는 대일항전기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 일제 패전 후에는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가 주장했다. 한데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1895년 일본도와 석유를 들고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죽이고 그 시신을 불 질렀던 낭인 야쿠자의 일원이다. 이 야쿠자가 역사 연구가랍시고 ‘일본서기 조선지명고’라는 저서를 냈는데, 이 책에서 ‘임나=가야’가 경상도뿐만 아니라 충청·전라도까지 차지했다고 우겼다.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 7’에서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연구 결과는) ‘일본서기’에 왜의 한반도 내 지배 영역이었다고 상정된 ‘임나’의 범위를 넓혀 잡기 위해 그가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함으로써 얻어진 연구 결과로 여겨진다”고 칭송했다. 이런 야쿠자의 논리를 지금 대한민국 유수의 대학 역사학과 교수들과 역사 관련 국가기관들이 추종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괴기하다고밖에 표현하기 힘들다. 일반 국민들은 이제 극일(克日)을 넘어서 일본에 대한 관심 자체가 별로 없는데, 이 나라 역사학자들과 국가기관들은 아직도 일본인들을 상전 모시듯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반 민중들이 깨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결성된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가야사 바로잡기 전국연대’는 영남과 호남의 애국 시민들이 결집해 만든 단체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한 진정한 지역감정의 극복이 시작된 것이다. 지배층은 나라 역사를 팔아먹고, 일반 민중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역사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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