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5월 17일 ‘계엄군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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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문학부 건물을 한 바퀴 돈 김웅산은 숙직실로 들어와 다리를 뻗었다. 최근에는 토요일인데도 학생들이 밤늦게 건물을 출입했으므로 경비 보는 일이 힘들어졌다. 어떤 날은 마음에 맞는 수위끼리 만나 상대 건물 뒤쪽에 있는 대폿집으로 가서 막걸리를 한두 잔 마시기도 했지만 늘 고단했기 때문에 각자 숙직실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곤 했다. 사십 문턱을 갓 넘긴 김웅산은 쪽잠을 자다가 일어나 경비하려고 숙직실 방바닥에 누웠다. 밤 10시이니 쪽잠을 자두어야 하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5월 들어 이삼일 터울로 이어진 학생들의 시위 여파 때문인지도 몰랐다.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는 학생들의 잔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게다가 상대 건물 뒤쪽 숲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까지 귀속을 후비듯 파고들었다. 김웅산은 텔레비전을 켠 뒤 이 방송 저 방송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멈췄다. MBC 텔레비전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녹화중계를 하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뽑힌 후보들이 수영복을 입고 무대 위를 고혹적인 포즈를 취하며 느릿느릿 오갔다.
김웅산은 갑자기 3군 하사관학교 교관 시절에 한쪽 눈을 실명한 불운한 사건이 떠올라 화가 치밀었다. 자신의 청춘이 날아가 버린 사건이라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울진, 삼척지구로 무장공비들이 침투했을 때 토벌작전에 나가 왼쪽 눈을 다쳐 시력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한쪽 눈으로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담배를 꺼내든 김웅산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와 자신의 미모를 뽐내는 아가씨들 탓만은 아니었다. 텔레비전 화면 하단에 한 줄의 자막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기존의 계엄령을 제주도까지 확대한다는 자막이었다. 자막은 속보로 5월 17일 24시부터 발효되는 포고령 제10호를 알리고 있었다. 정치집회와 시위는 물론 전국의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린다는 속보였다. 김웅산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학생들 다 때려잡을 모냥인갑다.’
담배 한 대를 아껴가며 다 피우고 났을 때 숙직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벽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학생이 달려오더니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아저씨! 문 좀 열어주셔요.”
“뭔 일이여?”
“예, 3층 학생회 사무실에 볼 일이 있어라.”
문학부 건물 3층에는 인문대 학생회 사무실이 있었다. 여학생은 전남대생이 분명했다. 김웅산은 문을 열어주었다. 여학생이 말했다.
“아저씨, 계엄군이 곧 학교로 들어온대요. 3층에 학생들이 있어요?”
“몇 명 있제잉.”
여학생은 허둥지둥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실제로 3층 학생회 사무실에는 7, 8명의 학생회 간부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계엄군 소식을 접한 학생회 간부들은 시위 때 작성했던 선언문과 서류 등을 대충 챙긴 뒤 문학부 건물을 빠져나갔다. 여학생도 나가면서 김웅산에게 고맙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그때 정문 수위인 채춘영이 손전등을 들고 숙직실로 들어왔다. 야간순찰을 돌고 있는 중이었다. 채춘영이 말했다.
“벨 일 ?제라.”
“?기는. 방금 테레비서 봤는디 계엄령을 제주 일원까정 확대헌다고 그라대. 학생들을 전부 잡아갈 모냥이네.”
“은제부터라?”
“자정에 땡허믄. 근디 뭔가 틀어져가고 있는 것 같네.”
“나랏일은 나랏일이고. 출출해서 왔는디 한 잔 해불까라?”
“마침 나도 뱃속이 헛헛허그만.”
두 사람은 상대 건물 뒤 대폿집으로 올라갔다. 학교건물 공사장 일꾼들과 학생을 상대로 밥과 술을 파는 대폿집이었다. 두 사람은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켜놓고 쉬엄쉬엄 마셨다. 단숨에 들이키면 막걸리라도 취했다. 채춘영이 술을 마시다가 김웅산을 빤히 쳐다보았다. 김웅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눈을 보고 있그만. 나를 화나게도 허지만 가만히 따져보믄 이 눈 땜시 팔자를 고쳤제.”
“뭔 억지다요? 술 취헌 사람멩키로.”
김웅산은 눈 때문에 바뀐 자신의 운명을 채춘영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속에 담고 있는 것을 꺼내듯 실토했다. 상사 계급으로 제대한 후 출판사 수금사원이 되어 3년 동안 일했다. 그런데 수금사원 자리가 부담스러워서 원호청을 찾아갔다. 원호청은 김웅산이 무장공비 토벌작전을 하다가 왼쪽 눈을 실명한 보훈대상자였기 때문에 고향의 우체국 직원으로 취업시켜 주었다. 그는 우체국에서 저금과 보험 업무를 맡았는데, 그 업무가 농협으로 이관되자 자동으로 고향의 단위농협으로 전직이 되었다. 그러나 농협은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았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직인 줄 알았는데 농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농민의 피땀으로 운영되므로 농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웅산은 1979년 농협을 그만두고 광주로 올라와 지산중학교 서무과에서 3개월 근무하다가 1980년 4월 21일에 전남대 수위로 옮겼다. 그러니까 5월 17일은 전남대 수위가 된 지 1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날이었다.
“왼쪽 눈을 잃어 여그까정 온 것 같네. 안 그랬으믄 군대 가기 전멩키로 고깃배를 타거나 농사짓고 있을지 모르제.”
“출세했다는 말인지 불운했다는 건지 모르겄소. 병 주고 약 주고 했다는 말 같은디요잉.”
“운명이여. 근디 대학이 아조 시끄럽그만잉. 학생들이 ‘계엄령 철폐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허고 단과대별로 돌아감시롱 악을 써댄께 말여.”
“여그는 그래도 천국이어라. 여그서는 학생들 구호소리만 듣지만 나 같은 정문 수위는 경찰이 쏘는 최루탄 까스 맡으랴, 학생들이 던지는 돌멩이 맞으랴, 고래 싸움에 새비등 터지는 꼴이지라.”
“근디 정문은 학교 얼굴이라 아무라도 가는 곳이 아니라고 허드그만.”
“말만 제복 입은 정문 수위제, 빛 좋은 개살구 신세지라.”
김웅산이 주전자를 거꾸로 들다시피 했다. 그러자 막걸리가 겨우 채춘영 잔 밑바닥만 적셨다.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네댓 번 했을 뿐인데 한 되들이 주전자 술이 어느 새 비워지고 없었다. 두 사람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잠시 후에는 정문이 내려다보이는 경영대 건물 앞에서 헤어졌다. 그런데 그때 정문 쪽으로 공수부대 계엄군을 태운 군용트럭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거뭇거뭇한 계엄군들의 철모가 군용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에 번뜩거렸다. 김웅산이 급하게 말했다.
“정문으로 얼능 돌아가 근무허게.”
“참말로 뭔 일이 터져분 거 같그만요.”
“아까 여학생 말이 맞그만.”
김웅산은 문학부 건물 숙직실로 돌아와 앞문을 잠근 뒤 텔레비전을 켰다. 여학생 말대로 30분쯤 지나자 공수부대 계엄군들이 문학부건물에도 나타났다. 공수부대원 하나가 숙직실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아저씨! 우린 계엄군입니더. 문 좀 열어주이소.”
“여그는 출입문이 ?응께 저짝으로 돌아와부씨요.”
김웅산은 태연한 척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착검한 총을 든 두 명이 그에게 달려들며 총부리를 들이댔다. 육군 상사 출신에게 착검한 총을 들이대다니 뜻밖이었다. 멋쩍어하는 김웅산에게 공수부대원 한 사람이 말했다.
“학생들 어디 있십니꺼?”
“학생들? 이 건물에는 하나도 ?어요.”
“정말로 한 사람도 없십니꺼? 이 건물 구조가 어케 돼 있는교?”
“3층 건물인디 학생들은 나가고 하나도 ?어요.”
좀 전에 만났던 여학생과 학생회 간부들이 모두 나갔으므로 김웅산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도 공수부대원들은 건물 안과 밖을 몇 명씩 조를 짜서 수색을 시작했다. 김웅산은 실내 수색조를 따라가면서 안내했다. 층을 오르면서 실내수색조 조장이 각층 벽에 붙은 벽보를 보더니 짜증을 냈다.
“짜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런 것이나 써 붙이고 말이야!”
수색조 조장이 신경질을 부리자 조원들이 ‘민주일정 앞당기라’ ‘신현확 물러가라’ 등등의 시위 구호가 적힌 벽보를 일제히 떼기 시작했다. 또 일부 공수부대원들은 학생회 사무실에 있던 유인물들을 한 아름씩 가지고 내려와 문학부 건물 앞에 쌓았다. 문학부 건물 안팎을 수색하던 공수부대원은 30여 명쯤 되었다. 맨 나중에 나타난 두 명의 공수부대원이 학생 한 명을 끌고 왔다. 김웅산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학생에게 안심하라고 눈짓했다. 공수부대원이 끌고 온 학생을 김웅산 앞에 무릎 꿇게 하더니 물었다.
“아저씨, 이 새끼 학생이오, 아니오?”
“학생이 아니그만요.”
김웅산은 침착하게 말했다. 학생이라고 말하면 봉변을 당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자세히 보니 낯익은 이 목수의 아들이었다. 이 목수는 상대 증축공사 책임자였고, 아들은 낮에는 아버지 일손을 돕고 야간에는 증축공사장 옆의 천막에서 경비를 봐왔던 것이다. 이 목수 아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상대 3학년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학생이 아니라면 천막에 숨어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공수부대원이 이 목수 아들을 곧 짓밟을 듯이 군홧발을 쳐들었다.
“이 사람은 학생이 아니고 공사장 자재를 경비하는 일꾼이랑께요. 요 뒷동네서 온 공사장 일꾼이란 말이오.”
다그치던 공수부대원이 군홧발로 이 목수 아들을 툭 치더니 말했다.
“아저씨 말을 믿어 보지요.”
이 목수 아들이 너무 긴장했던지 일어나지 못하자 계엄군이 다시 군홧발로 이 목수 아들의 엉덩이를 차며 말했다.
“이 새끼, 어서 가!”
그 사이에 공수부대원 두어 명이 대기하고 있던 작은 군용트럭에 학생회 사무실에서 가져온 유인물을 실었다. 김웅산은 유인물이 작은 군용트럭이지만 한 차 분량인 것을 보고는 놀랐다. 숙직실에 다시 들어오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취기가 확 가시고 막연하게 불안함 같은 것이 밀려왔다. 도서관에서 숙직하고 있던 고광윤 씨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그 역시도 말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무장헌 계엄군 20명 가량이 공대 본관으로 갔는디 거그는 으쩐가?”
“형님, 계엄군들이 학생회 사무실을 뒤지고 옘병을 허고 갔지라.”
“학생들 열람실에서 다 내보내고 잠자는디 군인놈덜이 숙직실 문을 두드리고 난리가 나부렀네. 도서관을 수색허고 말이여.”
고광윤 씨는 고참 수위로 주로 도서관에서 숙직했는데, 잠을 자다가 깬 탓에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제1학생회관 숙직실에서도 전화로 상황을 알려왔다. 안용호는 후생과 고용직 신분으로 제1학생회관에서 일하는 수위였다.
“친구야, 공수들이 학생들을 잡아가고 있네.”
“여그는 아까 왔다 갔는디.”
“학생들이 도망치고 난리여. 한 학생이 박관현이가 온다고 문을 잠그지 말라고 허드니 말여.”
“학생들 잡히지 말어야 헌디 어치게 됐는가?”
“모다 도망쳤는디 무사헌지 모르겄네.”
“인자 자네도 학생들을 이해허는 거 같그만.”
“이해해야제 으쩌겄는가?”
“자네는 십년 동안 역전서 짐꾼을 했담시로. 긍께 시방은 잘된 거여. 정식으로 발령 받은 국립대학교 수위 아닌가.”
“수위가 한둘인게라? 그라고 학생들이 문 열어달라고 허믄 열어줘야 하고 또 형사들이 볶아대도 끽소리 못허고. 만만헌 것이 수위랑께요.”
실제로 형사들은 수위를 학생들 못지않게 귀찮게 했다. 학생들이 화장실 같은 데에 붙인 벽보를 ‘뜯었네. 안 뜯었네.’ ‘봤냐. 안 봤냐. 그런 것을 왜 살펴보지 않았느냐.’ 하면서 닦달했던 것이다.
안용호에게 문을 잠그지 말라고 한 학생은 학생회 부회장 이승룡이었다. 오전에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비롯한 학생회 간부들과 도청 앞을 청소할 때만 해도 계엄군 투입을 반신반의했는데, 밤11시쯤 본부 건물 앞에서 군용트럭 한 대를 보고는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군용트럭 운전병에게 말을 걸자 그는 통신 점검차 들렀다며 둘러댔다. 그러나 사전에 학내상황을 살피려고 들어왔음이 분명했다. 이승룡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공수부대 계엄군이 정문과 후문을 통해서 교정으로 들이닥치자 학생회 사무실에 있던 7명은 두 개조로 나누어 피신했다. 양강섭과 이청조 등 3명은 상대 건물 뒤쪽으로 도망쳤고, 나머지 학생회 간부 4명은 후문 쪽의 담을 넘어가려다가 실패했다. 헤드라이트 불을 켠 공수부대 계엄군 군용트럭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소쩍새가 상대 건물 뒤쪽 숲에서 초나흘의 가녀린 초승달이 진 뒤부터 피를 토하듯 울고 또 울었다. <계속>
담배를 꺼내든 김웅산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와 자신의 미모를 뽐내는 아가씨들 탓만은 아니었다. 텔레비전 화면 하단에 한 줄의 자막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기존의 계엄령을 제주도까지 확대한다는 자막이었다. 자막은 속보로 5월 17일 24시부터 발효되는 포고령 제10호를 알리고 있었다. 정치집회와 시위는 물론 전국의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린다는 속보였다. 김웅산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학생들 다 때려잡을 모냥인갑다.’
담배 한 대를 아껴가며 다 피우고 났을 때 숙직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벽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학생이 달려오더니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아저씨! 문 좀 열어주셔요.”
“뭔 일이여?”
“예, 3층 학생회 사무실에 볼 일이 있어라.”
문학부 건물 3층에는 인문대 학생회 사무실이 있었다. 여학생은 전남대생이 분명했다. 김웅산은 문을 열어주었다. 여학생이 말했다.
“아저씨, 계엄군이 곧 학교로 들어온대요. 3층에 학생들이 있어요?”
“몇 명 있제잉.”
여학생은 허둥지둥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실제로 3층 학생회 사무실에는 7, 8명의 학생회 간부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계엄군 소식을 접한 학생회 간부들은 시위 때 작성했던 선언문과 서류 등을 대충 챙긴 뒤 문학부 건물을 빠져나갔다. 여학생도 나가면서 김웅산에게 고맙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그때 정문 수위인 채춘영이 손전등을 들고 숙직실로 들어왔다. 야간순찰을 돌고 있는 중이었다. 채춘영이 말했다.
“벨 일 ?제라.”
“?기는. 방금 테레비서 봤는디 계엄령을 제주 일원까정 확대헌다고 그라대. 학생들을 전부 잡아갈 모냥이네.”
“은제부터라?”
“자정에 땡허믄. 근디 뭔가 틀어져가고 있는 것 같네.”
“나랏일은 나랏일이고. 출출해서 왔는디 한 잔 해불까라?”
“마침 나도 뱃속이 헛헛허그만.”
두 사람은 상대 건물 뒤 대폿집으로 올라갔다. 학교건물 공사장 일꾼들과 학생을 상대로 밥과 술을 파는 대폿집이었다. 두 사람은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켜놓고 쉬엄쉬엄 마셨다. 단숨에 들이키면 막걸리라도 취했다. 채춘영이 술을 마시다가 김웅산을 빤히 쳐다보았다. 김웅산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눈을 보고 있그만. 나를 화나게도 허지만 가만히 따져보믄 이 눈 땜시 팔자를 고쳤제.”
“뭔 억지다요? 술 취헌 사람멩키로.”
김웅산은 눈 때문에 바뀐 자신의 운명을 채춘영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속에 담고 있는 것을 꺼내듯 실토했다. 상사 계급으로 제대한 후 출판사 수금사원이 되어 3년 동안 일했다. 그런데 수금사원 자리가 부담스러워서 원호청을 찾아갔다. 원호청은 김웅산이 무장공비 토벌작전을 하다가 왼쪽 눈을 실명한 보훈대상자였기 때문에 고향의 우체국 직원으로 취업시켜 주었다. 그는 우체국에서 저금과 보험 업무를 맡았는데, 그 업무가 농협으로 이관되자 자동으로 고향의 단위농협으로 전직이 되었다. 그러나 농협은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았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직인 줄 알았는데 농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농민의 피땀으로 운영되므로 농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웅산은 1979년 농협을 그만두고 광주로 올라와 지산중학교 서무과에서 3개월 근무하다가 1980년 4월 21일에 전남대 수위로 옮겼다. 그러니까 5월 17일은 전남대 수위가 된 지 1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날이었다.
“왼쪽 눈을 잃어 여그까정 온 것 같네. 안 그랬으믄 군대 가기 전멩키로 고깃배를 타거나 농사짓고 있을지 모르제.”
“출세했다는 말인지 불운했다는 건지 모르겄소. 병 주고 약 주고 했다는 말 같은디요잉.”
“운명이여. 근디 대학이 아조 시끄럽그만잉. 학생들이 ‘계엄령 철폐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허고 단과대별로 돌아감시롱 악을 써댄께 말여.”
“여그는 그래도 천국이어라. 여그서는 학생들 구호소리만 듣지만 나 같은 정문 수위는 경찰이 쏘는 최루탄 까스 맡으랴, 학생들이 던지는 돌멩이 맞으랴, 고래 싸움에 새비등 터지는 꼴이지라.”
“근디 정문은 학교 얼굴이라 아무라도 가는 곳이 아니라고 허드그만.”
“말만 제복 입은 정문 수위제, 빛 좋은 개살구 신세지라.”
김웅산이 주전자를 거꾸로 들다시피 했다. 그러자 막걸리가 겨우 채춘영 잔 밑바닥만 적셨다.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네댓 번 했을 뿐인데 한 되들이 주전자 술이 어느 새 비워지고 없었다. 두 사람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잠시 후에는 정문이 내려다보이는 경영대 건물 앞에서 헤어졌다. 그런데 그때 정문 쪽으로 공수부대 계엄군을 태운 군용트럭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거뭇거뭇한 계엄군들의 철모가 군용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에 번뜩거렸다. 김웅산이 급하게 말했다.
“정문으로 얼능 돌아가 근무허게.”
“참말로 뭔 일이 터져분 거 같그만요.”
“아까 여학생 말이 맞그만.”
김웅산은 문학부 건물 숙직실로 돌아와 앞문을 잠근 뒤 텔레비전을 켰다. 여학생 말대로 30분쯤 지나자 공수부대 계엄군들이 문학부건물에도 나타났다. 공수부대원 하나가 숙직실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아저씨! 우린 계엄군입니더. 문 좀 열어주이소.”
“여그는 출입문이 ?응께 저짝으로 돌아와부씨요.”
김웅산은 태연한 척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착검한 총을 든 두 명이 그에게 달려들며 총부리를 들이댔다. 육군 상사 출신에게 착검한 총을 들이대다니 뜻밖이었다. 멋쩍어하는 김웅산에게 공수부대원 한 사람이 말했다.
“학생들 어디 있십니꺼?”
“학생들? 이 건물에는 하나도 ?어요.”
“정말로 한 사람도 없십니꺼? 이 건물 구조가 어케 돼 있는교?”
“3층 건물인디 학생들은 나가고 하나도 ?어요.”
좀 전에 만났던 여학생과 학생회 간부들이 모두 나갔으므로 김웅산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도 공수부대원들은 건물 안과 밖을 몇 명씩 조를 짜서 수색을 시작했다. 김웅산은 실내 수색조를 따라가면서 안내했다. 층을 오르면서 실내수색조 조장이 각층 벽에 붙은 벽보를 보더니 짜증을 냈다.
“짜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런 것이나 써 붙이고 말이야!”
수색조 조장이 신경질을 부리자 조원들이 ‘민주일정 앞당기라’ ‘신현확 물러가라’ 등등의 시위 구호가 적힌 벽보를 일제히 떼기 시작했다. 또 일부 공수부대원들은 학생회 사무실에 있던 유인물들을 한 아름씩 가지고 내려와 문학부 건물 앞에 쌓았다. 문학부 건물 안팎을 수색하던 공수부대원은 30여 명쯤 되었다. 맨 나중에 나타난 두 명의 공수부대원이 학생 한 명을 끌고 왔다. 김웅산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학생에게 안심하라고 눈짓했다. 공수부대원이 끌고 온 학생을 김웅산 앞에 무릎 꿇게 하더니 물었다.
“아저씨, 이 새끼 학생이오, 아니오?”
“학생이 아니그만요.”
김웅산은 침착하게 말했다. 학생이라고 말하면 봉변을 당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자세히 보니 낯익은 이 목수의 아들이었다. 이 목수는 상대 증축공사 책임자였고, 아들은 낮에는 아버지 일손을 돕고 야간에는 증축공사장 옆의 천막에서 경비를 봐왔던 것이다. 이 목수 아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상대 3학년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학생이 아니라면 천막에 숨어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공수부대원이 이 목수 아들을 곧 짓밟을 듯이 군홧발을 쳐들었다.
“이 사람은 학생이 아니고 공사장 자재를 경비하는 일꾼이랑께요. 요 뒷동네서 온 공사장 일꾼이란 말이오.”
다그치던 공수부대원이 군홧발로 이 목수 아들을 툭 치더니 말했다.
“아저씨 말을 믿어 보지요.”
이 목수 아들이 너무 긴장했던지 일어나지 못하자 계엄군이 다시 군홧발로 이 목수 아들의 엉덩이를 차며 말했다.
“이 새끼, 어서 가!”
그 사이에 공수부대원 두어 명이 대기하고 있던 작은 군용트럭에 학생회 사무실에서 가져온 유인물을 실었다. 김웅산은 유인물이 작은 군용트럭이지만 한 차 분량인 것을 보고는 놀랐다. 숙직실에 다시 들어오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취기가 확 가시고 막연하게 불안함 같은 것이 밀려왔다. 도서관에서 숙직하고 있던 고광윤 씨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그 역시도 말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무장헌 계엄군 20명 가량이 공대 본관으로 갔는디 거그는 으쩐가?”
“형님, 계엄군들이 학생회 사무실을 뒤지고 옘병을 허고 갔지라.”
“학생들 열람실에서 다 내보내고 잠자는디 군인놈덜이 숙직실 문을 두드리고 난리가 나부렀네. 도서관을 수색허고 말이여.”
고광윤 씨는 고참 수위로 주로 도서관에서 숙직했는데, 잠을 자다가 깬 탓에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제1학생회관 숙직실에서도 전화로 상황을 알려왔다. 안용호는 후생과 고용직 신분으로 제1학생회관에서 일하는 수위였다.
“친구야, 공수들이 학생들을 잡아가고 있네.”
“여그는 아까 왔다 갔는디.”
“학생들이 도망치고 난리여. 한 학생이 박관현이가 온다고 문을 잠그지 말라고 허드니 말여.”
“학생들 잡히지 말어야 헌디 어치게 됐는가?”
“모다 도망쳤는디 무사헌지 모르겄네.”
“인자 자네도 학생들을 이해허는 거 같그만.”
“이해해야제 으쩌겄는가?”
“자네는 십년 동안 역전서 짐꾼을 했담시로. 긍께 시방은 잘된 거여. 정식으로 발령 받은 국립대학교 수위 아닌가.”
“수위가 한둘인게라? 그라고 학생들이 문 열어달라고 허믄 열어줘야 하고 또 형사들이 볶아대도 끽소리 못허고. 만만헌 것이 수위랑께요.”
실제로 형사들은 수위를 학생들 못지않게 귀찮게 했다. 학생들이 화장실 같은 데에 붙인 벽보를 ‘뜯었네. 안 뜯었네.’ ‘봤냐. 안 봤냐. 그런 것을 왜 살펴보지 않았느냐.’ 하면서 닦달했던 것이다.
안용호에게 문을 잠그지 말라고 한 학생은 학생회 부회장 이승룡이었다. 오전에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비롯한 학생회 간부들과 도청 앞을 청소할 때만 해도 계엄군 투입을 반신반의했는데, 밤11시쯤 본부 건물 앞에서 군용트럭 한 대를 보고는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군용트럭 운전병에게 말을 걸자 그는 통신 점검차 들렀다며 둘러댔다. 그러나 사전에 학내상황을 살피려고 들어왔음이 분명했다. 이승룡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공수부대 계엄군이 정문과 후문을 통해서 교정으로 들이닥치자 학생회 사무실에 있던 7명은 두 개조로 나누어 피신했다. 양강섭과 이청조 등 3명은 상대 건물 뒤쪽으로 도망쳤고, 나머지 학생회 간부 4명은 후문 쪽의 담을 넘어가려다가 실패했다. 헤드라이트 불을 켠 공수부대 계엄군 군용트럭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소쩍새가 상대 건물 뒤쪽 숲에서 초나흘의 가녀린 초승달이 진 뒤부터 피를 토하듯 울고 또 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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