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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5월 26일 ‘장갑차 출현’
도청 상황실의 전화벨 소리가
푸른 밤의 적막을 깨트렸다
“실장님,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계엄군 놈덜이요?”
“장갑차 앞세우고 농성동 공단입구
통과하고 있습니다”
2020년 04월 30일(목) 00:00
도청 광장은 불빛 한 점 없이 숯덩이처럼 컴컴했다. 마치 잔해를 방치한 깊은 폐광 속을 연상시켰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희끗희끗한 빗줄기뿐이었다. 남학생 50여 명은 윤상원을 따라서 YWCA를 나와 비를 맞으며 도청으로 건너갔다. 도청은 2층 부지사실과 1층 상황실만 불이 켜져 있었다. 억센 빗줄기 때문에 불빛은 창문턱을 넘지 못했다. 창문턱이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2층 부지사실에는 시민수습위원들이 밤을 새우고 있었고, 1층 상황실에는 새로 짠 학생수습위원들이 회의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상황실장 박남선이 YWCA에서 온 학생들에게 총기를 지급했다. 엠1소총과 카빈소총을 골고루 나눠주었다. 학생들은 박남선과 위성삼에게 총기를 다루는 방법을 1시간쯤 익혔다. 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노리쇠를 잡아당긴 뒤 격발하는 요령을 반복해서 훈련받았다. 잠시 후 조비오 신부가 계림동성당 청년신도 12명을 데리고 현관에 나타났다. 조금 뒤에는 김성용 신부가 남동성당 청년신도 3명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박남선이 김성용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오늘밤 도청을 지킬 학생들입니다.”

“그라믄 내가 델꼬 온 사람들은 부지사실에서 잠을 재워야겄그만.”

“조비오 신부님을 따러 온 사람들도 부지사실로 갔습니다.”

김성용 신부는 학생들을 보자마자 감격했다. 곧장 부지사실로 가지 않고 현관에 잠시 있다가 참지 못하고 일장 연설을 했다. 남동성당에서 신자들에게 오전 10시 미사 때 했던 강론을 그대로 했다. 학생들에게 정신무장을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학생 여러분, 네 가지만 말씀드리겄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짐승과 같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두 발로 당당하게 서서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고 네 발로 기어 다녀야 하며, 꿈이 없는 개나 돼지처럼 입을 그릇에 처박고 사는 불쌍한 짐승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폭력과 살인을 밥 먹듯 하는 유신잔당이 우리를 짐승같이 취급해 죽이고 때리고 찌르고 끌고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두 다리로 걷고 인간답게 살려고 하면 목숨을 걸고 민주화투쟁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과거의 침묵, 비굴했던 침묵의 대가를 지금 우리들이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산, 마산 사건에서 희생한 분들은 유신 괴수의 죽음으로 보상받았습니다. 광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엄군에 맞서서 자유와 민주화를 위하여 희생한 많은 광주시민의 피도 보상받아야 합니다.

이제야말로 우리는 결단의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비굴하게 짐승 같은 목숨을 연명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다운 민주시민으로서 살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인가를 결단할 순간인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저를 감격케 했습니다. 여러분의 결단으로 광주는 지켜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화를 지켜낸 영웅이 될 것입니다.”

김성용 신부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빗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YWCA에서 온 학생들은 바로 김창길의 뜻을 따라 나간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어젯밤에 총을 받은 뒤에도 내심 불안했던 시민군들은 경비인원을 보충받자 조금 안도했다. 계엄군의 진입 소문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도청 사무실에서 감기는 눈을 비벼댔던 것이다. 더구나 시민들 틈에 끼어 계엄군 첩자도 드나들었다. 그런 소문은 시민군들 사이에 금세 돌았다. 김선문 귀에도 들렸다.

“2층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사람덜이 많은디 순천서 왔다는 머리가 짧은 놈 말이여. 나도 이상허게 봤는디 어저께부텀 첩자일지 모른께 조심허라고 허대.”

박래풍이 김선문의 말을 받았다.

“도청 지하실에서 그 놈을 봤다는 소문도 나돌드그만.”

“으떤 학생은 김창길이가 델꼬 왔다고 말허던디 그건 좀 거시기허요.”

김동수가 김창길을 의심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용호가 동조했다.

“설마 김창길이가 그랬을라고. 김창길이도 무자게 애를 쓰고 댕겼는디.”

박병규는 공대생답게 색다른 식견을 드러냈다.

“근디 순천서 왔다는 그 사람이 폭약전문가는 아닌지 모르겄소. 레버를 뽑아불믄 폭발물도 무용지물이 돼버려요.”

그런데 이런 긴장감을 주는 이야기만 졸음을 쫓는 것은 아니었다. 식산국장실에는 우스갯소리를 잘하여 감기는 눈을 뜨게 하는 노동자 시민군이 있었다. 식산국장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도 시민군들을 웃겼다. 그가 방귀를 소리 나게 뀌었다. 느닷없는 방귀소리에 졸던 시민군들이 깜짝 놀랐다.

“여그 국장님맨치 끝발이 ?으면 나멩키로 방구발이라도 있어야제.”

그는 시민군들 이름을 가지고도 우스갯소리를 했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못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한 바탕 웃으면 사기가 올랐다. 학생 시민군인 ‘구천서’를 보고 그가 말했다.

“자네는 코메디언 구봉서 동상인가?”

마침 시민군 중에는 이인철 학생도 있었다. 그가 이인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말했다.

“자네는 삼성 이병철 회장님허고 으쩌게 된 사인가? 공수폭도덜 쪼까내불고 나서 나도 묵고 살게 이병철 회장님 좀 소개해 주소.”

“형님은 결혼했지라?”

“했제.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내가 젤 잘헌 일이그만.”

“그라믄 젤로 못헌 일도 있겄소잉.”

“그야 마누라허고 억지로 살고 있는 것이제. 하하하.”

“젤 잘헌 일이람서 으째서 잘못헌 일이다요?”

“내 벌이가 시원찮은께 마누라가 집을 나가부렀어. 긍께 젤 못헌 일이 돼부렀제.”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시민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이가 30대라는 것과 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라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이름을 물어보면 그는 성은 노가이고 이름은 가대라고 했다. 그래서 시민군들은 그를 ‘노가대’라고 불렀다.

박병규는 창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어제 낮에 어머니를 뵙지 못한 것이 못내 죄스러웠다. 양동상인들이 리어카에 김밥을 싣고 와서 민원실 시민군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박병규는 그 자리를 피해버렸던 것이다. 시민군 시신이 있는 병원에 가서 염 봉사활동을 해왔던 남원댁 방귀례, 가구노동자 김종철의 어머니 등등 양동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쌀을 거두어서 만든 김밥이었다. 허기졌던 시민군들이 일시에 달라붙자 김밥은 금세 동났다.

김양애 양동시장 부녀회장이나 국밥집을 하는 김종철의 어머니가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도청까지 온 까닭은 오직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박병규나 김종철은 끝내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다. 특히 오전에 박병규는 사촌누나 박수복이 찾아와 “얼능 나와라. 아무도 모르게 나와라” 했지만 거절했고, 김종철은 아버지가 삼촌까지 보냈지만 “오늘 밤 안으로 들어가겄습니다.”라는 말만 하고 도청에 그대로 남았다.



도청에서 밤을 새우던 시민군들은 새벽 4시부터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복도나 의자에 앉은 채 잠들었다. 때마침 세차게 내리던 비도 그쳐 도청 안은 밑도 끝도 없는 심연처럼 적막했다. 그러나 1시간쯤 지나서였다. 갑자기 울려대는 상황실의 전화벨 소리가 깊고 푸른 밤의 적막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박남선은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무전기가 쐐액, 쐐액 다급하게 소리를 냈다. 상황실에서 함께 졸다가 먼저 눈을 뜨고 상황을 파악한 부실장 양시영이 박남선의 어깨를 흔들었다.

“실장님, 드디어 올 것이 온 거 같습니다.”

“계엄군 놈덜이요?”

“확실헙니다. 시민 제보도 그라고 무전기 보고도 그랍니다.”

박남선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계엄군이 진입했다는 거요?”

“장갑차를 앞세우고 농성동 공단입구를 통과허고 있다는 보곱니다.”

박남선은 비상을 걸고는 기동타격대 출동을 준비시켰다. 그런 뒤 상무대 계엄사에 전화를 걸어 계엄분소 사령관 소준열 중장을 찾았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사령관 참모였다.

“사령관님은 안 계십니다. 용무가 있으면 저에게 말하십시오. 전하겠습니다.”

“계엄군이 공단입구까지 와 있다는디 계엄군 병력을 원위치로 후퇴시키지 않으믄 우리는 회수한 무기를 전 광주시민에게 나누어줄 거요. 분명히 말허지만 우리는 총을 들고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요. 도청에 보관중인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켜버릴 각오로 맞설 것인께 내 뜻을 사령관과 부사령관에게 전해주씨요.”

“알았소.”

사령관 참모가 전화를 끊었다. 박남선은 즉시 기동타격대 지프차에 승차했다. 기동타격대 대원을 실은 트럭이 시동을 걸었다. 황금선도 트럭 조수석에 탔다. 이영생 장로와 수습위원 한 명은 박남선이 탄 지프차에 탔다. 계엄군과 협상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습위원은 승차하자마자 공포에 떨었다. 눈에 띌 정도로 평상심을 잃고 안절부절못했다. 박남선은 이영생 장로와 수습위원에게도 사령관 참모에게 한 말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이영생 장로는 “오, 하나님!”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였다. 김성용 신부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눈을 떴다. 부지사실 벽시계는 새벽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쪽잠을 잔 지 2시간 만이었다.

“탱크가 들어오고 있다!” “으디까지 들어온 거냐! 우리 모두 자폭해불자!”

김성용 신부는 농성동에 사는 신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다. 의자에서 자고 있던 부지사가 놀란 채 일어나 상황을 확인해보겠다며 말하고는 나갔다. 그러나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김성용 신부는 부지사에게 또 속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탄식했다.

“철야로 다이너마이트를 지켰는디, 파국만은 막아야 헌다는 일념으로 도청에 남았는디 이 무슨 날벼락인가.”

부지사실을 나오자 도청은 초비상사태에 빠져 있었다. 총을 가진 시민군과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등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계엄군 장갑차는 시민군의 바리케이드를 깔아뭉갠 채 국군통합병원 앞까지 나와 있었다. 시민군 기동타격대 지프차와 트럭은 서부경찰서 앞에서 멈추었다. 박남선은 수습위원과 함께 국군통합병원 앞 도로로 걸어갔다. 박남선이 계엄군 장교에게 따지듯 말했다.

“협상 중에 이럴 수 있소? 이건 반칙이요.”

“협상은 어제부로 결렬됐소. 불순분자나 선동자들을 제거하시오! 총기도 전부 회수하여 반납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력으로 진압할 수밖에 없소.”

계엄군 장교가 위협했다. 그러나 박남선은 지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원위치로 돌아가씨요. 지금 당신덜이 이렇게 일을 저지르면 저지를수록 우리는 더욱더 강해질 뿐이요. 서로 피 보는 일만 있을 것이요.”

계엄군 장교가 잠시 자리를 떠나 무전을 했다. 계엄분소의 지시를 받으려고 그런 것 같았다. 계엄군 장교가 다시 돌아와서 강경하게 말했다.

“계엄분소 부사령관님 말씀이오. 그대로 전하겠소. ‘총을 전량 회수해 오면 당신들의 신상만큼은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러나 그 외의 요구조건에 대해서는 들어줄 수 없다.’는 부사령관님 말씀이오.”

이영생 장로가 한 마디 했다.

“이보쇼. 그건 협상이 아니라 협상을 결렬시키겄다는 협박이오.”

“사령관님에게 다시 전하시요. 우리의 수습조건을 다 들어주지 않으믄 우리도 결사적으로 나갈 수밖에 ?다고 말이요.”

계엄군 장교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심리전을 펴면서 다른 작전을 수행하는 중인지도 몰랐다. 박남선은 그렇게 의심했다. 어쨌든 박남선은 계엄군의 진입을 지체시킨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 계엄군 장교가 계엄사 분소와 다시 무전을 하고 있는 동안 박남선이 수습위원에게 말했다.

“서울에서 오는 외곽도로를 점거해 병력과 수송로를 확보할라고 이런 거 같습니다. 또 우리 시민군이 차량을 가져오는 아세아자동차공장을 차단해 시민군의 기동력을 약화시킬라고 허는 작전인 거 같습니다.”

“박 실장은 모르는 것이 ?그만.”

“예비군 소대장을 험서 익힌 전술입니다.”

계엄군은 더 이상 장갑차를 전진시키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바리케이드를 칠 준비에 들어갔다. 그래도 박남선은 안심할 수 없었으므로 트럭에 탄 기동타격대원들은 그곳 지역을 방어하는 시민군과 합세시켰다. 박남선은 도청으로 돌아오면서 전옥주와 차명숙의 목소리를 들었다.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잠에서 일어나 가족들과 시민들을 보호합시다. 우리는 계엄군과 민주적으로 싸워 물리쳐야만 합니다. 빨리 잠에서 깨어나 도청 앞으로 나오십시오!”

백운동 로터리에 방송승합차 한 대가 멈추어 있었다. 전옥주가 마이크를 잡고 방송하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박남선은 전옥주의 목소리를 또 다시 들으면서 울컥했다. 괴롭고 참담했다. 한동안 사라졌던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날계란 두 개를 깨서 그녀들에게 내밀었다. 이영생 장로가 말했다.

“박실장, 저것이 광주의 마음이요. 시민덜이 또다시 우리에게 힘을 줄 것 같소.”

이 장로의 말은 옳았다.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도청으로 무너진 둑에서 물 쏟아지듯 모여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