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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5월 24일 ‘송암동 주민학살’
공수부대는 마을주민만 보이면 총을 쏘았다.
저수지에서 멱 감는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런데 조금 뒤에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상무대 보병학교 교도대 1개 중대병력이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향해
90mm 무반동총을 쏘았다.
2020년 04월 02일(목) 00:00
<삽화 이정기>
조선대에서 주남마을 뒷산으로 이동한 지 사흘 만이었다. 이경남 일병이 무등산 산자락의 선홍빛 철쭉꽃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11공수여단 공수부대원들은 아침 식사 후 산자락 구덩이 속에 숨겨놓은 배낭과 개인장구를 모두 챙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작전이나 출동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상부에서는 이미 여단장에게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었다. 계엄군이 27일에 광주로 재진입하기 위한 조치였다. 헬기로 도청에 살포한 이희성 계엄사령관 명의의 경고문이 그 방증이었다.

<…이제까지는 여러분의 이성과 애국심에 호소하며 자진 해산과 질서회복을 기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총기와 탄약과 폭발물을 탈취한 폭도들의 형태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부득이 소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개인별로 실탄 580발과 수류탄, 가스탄까지 지급했다. 이동 중에 돌발 전투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경남 일병은 엠16에 실탄을 장전하며 눈치를 챘다.

‘광주를 탈환하기 위해 어느 외곽으로 집결할 모양이군.’

1천여 명의 공수부대원들은 수십 대의 군용트럭에 지대별로 탑승했다. 맨 선두에는 장갑차가 섰다. 장갑차를 앞세운 까닭은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장갑차와 수십 대의 군용트럭은 지원동에서 송정리로 나가는 국도로 들어섰다. 국도는 광주시에서 전라남도로 나가는 길이기도 했다.

국도 주변은 시가지와 달리 선한 갈맷빛의 논밭들이 펼쳐진 농촌이었다. 목포로 나가는 길목 우측에는 금당산이 솟아 있었고, 산자락에서 발원한 계곡물은 작은 저수지를 지나 원제마을 앞으로 흘렀다.



저수지 물은 멱을 감기에 아직 차가웠다. 그러나 전남중 1학년 방광범과 친구 10여 명은 저수지 둑에서 마치 내기라도 하듯 몸을 풍덩풍덩 던졌다. 한 사람이 코를 잡고 입수하면 나머지 친구들도 찬물에 뛰어들었다. 물속으로 몸이 들어가 버리면 차라리 덜 추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맥질을 막 시작할 때였다. 주월동 쪽에서 총소리가 났다. 공수부대가 지나가면서 일부러 주민들에게 겁을 주는 총격이었다. 공수부대는 마을주민만 보이면 총을 쏘았다. 잠시 후에는 저수지에서 멱 감는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공수다! 숨자!”

놀란 중학생들이 후다닥 도망쳤다. 맨 늦게 입수한 방광범도 물 밖으로 나와 수문 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공수부대원이 쏜 총알은 정확히 방광범의 머리를 관통했다. 방광범은 ‘엄마’를 불러보지도 못한 채 머리가 반쯤 날아가 버렸다.

효덕국민학교 앞동산에서 놀던 진제마을 개구쟁이 국민학생들도 총소리에 놀랐다. 전재수 어린이는 집으로 뛰어가다가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놀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마음이 조급한 전재수 어린이는 신발을 주웠다가 떨어뜨렸다. 공수부대원의 사격은 인정사정없었다. 총알 세 발이 전재수 어린이의 가슴과 옆구리, 넓적다리에 명중했다. 전재수 어린이는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아, 어린 아이들에게 총을 쏘다니! 여기는 모내기를 하는 농촌이 아닌가! 시위와 상관없는 농사꾼들이 사는 곳 아닌가.’

이경남 일병은 눈을 감았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동산에서 뛰놀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과 총소리에 놀라 혼비백산 뛰고 자빠지던 중학생들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그런데 조금 뒤에도 끔찍한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 11공수여단 63대대가 오후 1시 55분쯤 효천역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상무대 보병학교 교도대 1개 중대병력이 산자락에 매복해 있다가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향해 90mm 무반동총을 쏘았다. 교도대 병력의 무반동총 사격 명중률은 보병학교 내에서 최고였다. 장갑차는 단 1발에 여지없이 폭발음을 냈다. 뒤따라오던 군용트럭들은 뒤엉켜버렸다. 공수부대를 시민군으로 오인한 교도대 병력의 공격이었다. 5분 안에 포탄 4발이 날아온 짧은 공격이었지만 정확하고 강했다. 공수부대원들은 당황한 채 트럭에서 뛰어내려 도로 변으로 피신했다. 이경남 일병은 미처 따라 내리지 못했다. 총알이나 파편이 뒷머리를 스친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뒷머리를 만지자 끈끈한 액체가 묻었다. 머리카락을 흠뻑 적신 검붉은 피였다. 순간 그에게 죽음의 공포와 삶의 허무함이 밑도 끝도 없이 밀려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내게 닥친 것일까?’

죽음이 두렵고 삶이 허무해지자, 이번에는 비탄에 빠져 괴로워하는 목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내 죽음이 알려진다면 어머니는 얼마나 슬퍼하실까?’

이경남 일병은 문득 삶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조용히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다면 얼굴에 구멍이 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그는 뒷머리의 상처가 깊지 않다고 짐작했다. 총알이 뒷머리를 스치기만 한 것이 분명했다. 문득 살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군용트럭 위에는 혼자 누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료들은 도로변 도랑에 엎드려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도 뛰어내려야 돼.’

그러나 그가 몸을 일으켜 뛰어내리는 순간이었다. 무반동총 포탄이 고막을 찢을 듯 폭발음을 내며 군용트럭 주변에서 터졌다. 그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뒹굴었다. 그의 몸 한쪽은 파편에 찢기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는 도로에 쓰러진 채 모기만한 소리로 웅얼거렸다.

‘아! 하나님, 아! 하나님!’

이경남 일병은 곧 의식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보병학교 교도대와 공수부대 간에 총격은 멈추어 있었다. 쌍방 간에 오인사격을 겨우 확인했던 것이다. 그의 의식도 차츰 돌아왔다. 주위에는 동료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뼈가 허옇게 드러난 시신도 눈에 띄었다. 시신들 중에는 그에게 빨갱이들을 대검으로 20명쯤 찔렀다고 자랑 삼아 말하던 하사관도 있었다. 부서진 물건처럼 널브러진 하사관 시신을 보자 인과응보란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빨갱이다, 적이다, 라고 규정해버렸으니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겠지. 양심이 마비돼버렸겠지.”

부상자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허우적거렸다. 그제야 이경남 일병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왼쪽 팔꿈치에는 파편이 박혀 있었다. 왼쪽 겨드랑이와 심장 사이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파편으로 패인 이마와 왼쪽 다리는 여전히 피가 흘렀다. 부상이 심해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목이 탔다. 그는 오른팔을 겨우 움직여 수통을 꺼낸 뒤 수통의 물로 타는 목을 적셨다. 정신이 좀 들자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뱉어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총알이나 파편이 심장을 관통하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에게 축복이자 은혜였다. 비로소 그는 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왔다.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에이씨! 이런 개죽음당하자고 군에 왔단 말인가.”

잠시 후 그는 동료들에게 발견되어 옷을 벗긴 채 군용트럭에 태워져 임시헬기장으로 옮겨갔다. 왼팔이 잘려나간 대대장과 복부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하사관 한 명이 먼저 와 헬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대장이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린 채 말했다.

“이 일병, 하나님이 지켜주실거야.”

“그럴까요? 예, 그러겠지요.”

대대장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이경남 일병이 평소에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대대장이었다. 그는 부상 중에 대대장을 만난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그가 대대장에게 물었다.

“대대장님, 하나님이 계시겠죠?”

대대장은 잘려나간 왼팔의 통증이 심한 듯 대답을 못했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부러 본심과 달리 웃는 척했다. 그러나 이경남 일병은 대대장이 속으로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하나님을 부른 뒤 욕을 했던 것이다. 친하게 지냈던 하사관은 자신의 철모에 피를 한가득 흘린 채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 일병, 나 살고 싶어. 살아야 돼.”

“헬기가 옵니다.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지요?”

“들려...”

“부근에 병원이 있다고 하니 걱정 마십시오.”

이경남 일병은 몸을 움직일 수 없어 고개만 돌리고서 배를 움켜쥐고 있는 하사관을 위로했다. 하사관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숨을 더욱더 거칠게 몰아쉬기만 했다.

여러 대의 헬기가 착륙과 이륙을 반복했다. 부상자들은 위중한 순서대로 헬기에 실렸다. 시신들 차례는 마지막 헬기였다. 이경남 일병은 두 번째 뜨는 헬기에 실려 국군통합병원으로 갔는데, 친한 하사관은 병원에서 수술 도중 숨을 거두었다.

동료를 잃은 공수부대원들은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미친 듯이 흥분했다. 교도대에 당한 분풀이를 송암동 주민들에게 했다. 철로 변에 살던 김승후는 엠16 총알이 집안으로 날아들자 솜이불을 덮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직업훈련소를 졸업하고 선반공 취업을 기다리는 꿈 많은 18세 청년이었다. 공수부대원 대여섯 명이 그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폭도는 자수하라!”

마당으로 별생각 없이 걸어 나온 김승후는 졸지에 폭도가 돼버렸다. 공수부대원들에게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다른 2명의 청년과 함께 끌려갔다. 마을에서 붙잡혀 왔지만 나이 든 주민 7명은 풀려났다. 소나기가 가랑비로 바뀌어 내렸다. 하사관이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훔치면서 공수부대원들에게 작은 소리로 지시를 했다.

“처치해버려.”

공수부대원들은 20여 미터쯤 청년 3명을 끌고 가다가 세웠다. 그 순간 김승후는 기능올림픽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야 되는데 내가 왜 여기 서 있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수부대원 중 한 명이 총구를 겨누었다. 가슴에 총을 맞은 그의 꿈은 굴뚝연기 사라지듯 허망하게 흩어져버렸다. 청년 3명 모두 총을 맞고 맥없이 쓰러졌다. 총소리에 놀란 40대 후반의 행인은 하수구로 피신했다가 공수부대원의 조준사격을 받고는 숨이 끊어졌다.



이날 계엄군의 만행은 송암동뿐만이 아니었다. 극락강이 흐르는 동운동 쪽에서도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구름 사이로 석양빛이 한 자락이 비칠 무렵이었다. 계엄군이 극락강을 넘어서 동운동 쪽으로 들어온다는 첩보가 동운동 시민군들 사이에 퍼졌다. 시민군 조장은 도청 상황실에 보고하고 건물들 옥상 위로 올라가 경계를 섰다. 계엄군이 화정동 쪽 지름길로 오지 않고 빙 돌아서 동운동 방면으로 온다고들 하니 이상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시민수습위원들과 협상하는 척하면서 측면을 공격하는 야비한 짓이었다.

도청에 있던 시민군들은 총기를 지급받았다. 또다시 급하게 기동타격대를 모집했다. 다행히 버스 1대와 트럭 1대를 채울 정도로 대원들이 모였다. 이관택은 상무관에서 장례 일을 보다가 기동타격대 대원을 자원했다.

급조한 기동타격대는 모두 광천동으로 갔다. 광주천 건너편의 동운동과 광천동에 방어선을 치기 위해서였다. 이관택이 속한 대원들은 송원전문대학 부근의 천변다리에서 모두 하차한 뒤 매복했다. 천변다리 동네 주민이 매복 장소까지 내려와서 응원했다.

“수고가 많소. 커피를 끓어놨응께 집으로 와서 한 잔씩 마시쑈.”

“아따, 따땃한 커피가 잠도 쫓아불고 최고지라.”

이관택 대원들은 서너 사람씩 교대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동네 주민의 호응은 기동타격대 대원들에게 은근히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과연, 밤중이 되자 총소리가 났다. 총성이 몇 발 울리고 그친 것으로 보아 총격전은 아니었다. 아마도 계엄군이 극락강을 타고 동운동까지 정찰을 나온 듯했다.

밤 11시쯤이었다. 대원들은 총소리를 듣고는 하나 둘 슬그머니 사라졌다. 혼자 남은 이관택은 불안했다. 군대에 가서 훈련받은 경험이 없었으므로 상황판단을 못했다. 그도 역시 매복한 곳에서 나와 정신없이 뛰었다. 무턱대고 달리다가 숨이 차 어느 열려진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놀라 물었다.

“누구여?”

“시민군인디 계엄군헌테 쫓겨왔그만요.”

“얼능 들어오쑈. 거그 있지 말고. 으디서 온 길이요?”

“저짝에 매복허다가 총소리가 나서 이짝으로 달려왔그만요.”

“나가지 말고 오늘밤은 우리 집서 자씨요.”

주인은 품팔이 노동자였다. 광주에서 난리가 나 보름째 일을 못해 굶어죽을 지경이라고 투덜거렸다. 이관택은 주인의 이런저런 하소연을 들으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주인이 방을 나간 뒤 불을 껐지만 잠은 저만큼 달아나버렸던 것이다.

총소리는 왜 났을까? 누군가가 또 계엄군의 총에 죽지는 않았을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의 짐작대로 죽은 사람은 20대 후반의 미장공 강정배였다. 그는 건축 일을 마치고 노동자들과 어울려 광천동 어느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귀가 중이었다. 마침 가는 방향이 엇비슷한 진흥고 수위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웠다. 그는 친구 한 명과 진흥고 수위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동운동 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계엄군이 운암동 변전소 앞을 달리는 오토바이를 보고는 그대로 총격을 가했다. 그는 가슴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친구는 즉시 31사단으로 연행돼갔다. 계엄군은 그를 변전소 숙직실로 데려다놓고는 새벽녘에 숨이 끊어지자, 부근 밭으로 옮긴 뒤 대충 묻고 철수해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