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의 미소 - 이보람 예향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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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의 미소 - 이보람 예향부 부장
2025년 08월 13일(수) 00:20
광복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교과서 속 인물들을 떠올린다. 단호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흐릿한 흑백 사진 속에서만 만났던 독립운동가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AI 복원 기술 덕분에 그 얼굴들이 선명해지고 움직이며 심지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기까지 한다. 마치 긴 세월을 건너와 후손들에게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 듯하다.

복원된 유관순 열사의 미소를 처음 보았을 때 오래된 사진 속 침묵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경험을 했다. 옥고로 퉁퉁 부은 얼굴만 기억 속에 각인돼 있다가 열일곱, 제 나이에 맞는 발랄한 걸음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뭉클하고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독립운동가들이 웃고 있는 영상을 보며 “슬프면서도 찡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후손들에게 기를 넣어 주시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고도 했다.

AI 복원 작업은 2023년 3·1절을 맞아 국가보훈부가 독립운동가 흑백사진을 컬러로 복원하며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방자치단체, 박물관, 기념관 등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활발히 이어졌고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서 영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움직임과 표정이 더해지자 마치 시간의 장벽을 뚫고 우리 앞에 걸어 나오는 듯 생생해졌다. 되살려낸 그들의 웃음은 단순한 표정이 아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믿었던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다. 김구 선생의 선명해진 사진 속 눈빛에서도, 윤봉길 의사의 또렷해진 미소에서도 같은 울림이 전해진다. 오랜 세월의 안개가 걷히자 그들은 더 이상 박물관 속 초상화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숨 쉬는 이웃처럼 가까워졌다.

기술이 해낸 일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기억을 살리고 역사를 다시 숨 쉬게 하는 일이다. 젊은 세대가 잊고 있던 역사를 ‘살아 있는 이야기’로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지켜낸 이 땅에서 너희는 어떤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화면 속 그들의 눈빛에서 강한 메시지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흑백사진 속에서 걸어 나온 그들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의 우리가 그들의 뜻과 빛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보람 예향부 부장 bo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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