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13기 리더스아카데미 - 정지아 작가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강연
“소설은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야기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태도 풀어내
‘이념과 인간 관계’ 깊은 사유 공유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야기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태도 풀어내
‘이념과 인간 관계’ 깊은 사유 공유
![]() 정지아 작가가 지난 27일 광주시 서구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 5층 연회실에서 열린 제13기 광주일보 리더스아카데미에서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
“소설은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내가 싫어했던 사람, 상처받은 시간, 설명되지 않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그 과정이 바로 글쓰기죠.”
지난 27일 광주시 서구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 5층 연회실에서 제13기 광주일보 리더스아카데미의 여섯 번째 특강이 열렸다. 강사로 나선 정지아 작가는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정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작가로서 마주해 온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태도 변화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냈다.
정 작가는 구례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 소설 ‘빨치산의 딸’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다. 그는 만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5·18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등 굵직한 수상 내역을 보유한 소설가다. 펴낸 책들은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과 장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회복을 독창적인 서사로 풀어내 왔다.
그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구상 계기로 “2008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분위기에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봤다”고 말하며, 비전향 장기수와 구례 주민들의 대조적 태도,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갈등과 침묵, 정서적 거리 등이 소설을 쓰게 된 결정적 장면이었다고 밝혔다.
정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엿보며 언어로 재구성하는 사람’이라며 “동료 작가보다는 ‘직업도, 삶도, 생각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깃거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편 소설을 쓰기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그리려 했기 때문이었다”며 인간의 다양성과 모순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필요성을 짚었다.
서울 생활을 접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구례로 내려간 정 작가는 지방 공동체의 구조·정서와 함께 구례라는 공간의 역사적 특수성을 새롭게 체감하게 됐다. 구례는 6·25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도연맹 학살을 피한 지역으로, 이념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정서가 깊은 마을이다.
“구례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함부로 재단하지 않아요. 거의 모든 가정에 ‘빨갱이’와 ‘군인’이 함께 존재하거든요. 어느 편도 쉽게 욕하지 못해요. 그건 상처를 공유한 사람들의 조용한 연대예요.”
정 작가는 장례식에서 조화를 내던지며 “빨갱이가 죽었는데 박수라도 쳐야지!”라 외치던 인물을 언급하며 “보통의 딸이면 ‘우리 아버지는 죽어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아버지의 삶은 얼마나 쓸쓸했는가’ 하며 회한에 잠겨야 될 텐데 나는 순간 오히려 유레카를 외쳤다. ‘이거다. 이거 소설이다.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구나. 이거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삶의 아이러니를 소설로 끌어내는 작가적 감각을 드러냈다.
그는 또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객관보다 중요한 건 주관적 지지”라고 강조했다. “나는 엄마가 ‘미스코리아에만 나가면 따놓은 당상이다’고 했을 때 ‘왜 저래? 미친 거 아니야?’ 했어요. 근데 그 주관적인,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이 결국 나를 일으키는 힘이었더라고요.”
정 작가는 특히 이념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공유했다. 그는 어린 시절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존재와 ‘빨갱이의 딸’이라는 낙인이 어떻게 자신에게 각인됐는지 회고하며 한 사람의 생애가 단순한 이념의 잣대로 재단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희 아버지는 전향서를 쓴 변절자였고, 그래서 비전향 장기수들에게조차 외면받았어요. 그런데도 그분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오셔서 ‘열사’냐 ‘인사’냐를 두고 밤새 싸우시더라고요. 플래카드에 적을 단어 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었죠.”
그는 이념의 대립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문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절히 이야기했다.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일화들은 마치 하나의 사회 축소판처럼 느껴졌고, 작가는 그 속에서 소설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처음엔 저도 사상의 순결을 지킨다는 비전향 장기수분들을 처음 뵐 때 굉장한 기대와 설렘을 갖고 그분들을 만났어요. 하지만 그냥 그분들도 ‘동네 할배’들이더라고요. 아무리 위대한 선택을 했다고 해도 세상과 단절된 채 변화 없이 머무르면 성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정 작가는 “말로만 휴머니즘을 외쳐봤자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삶의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애 전체를, 망가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와 시대를, 그리고 그 안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한 인간을 이야기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 작가는 고통을 통과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관용을 품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소설로 증명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살면서 겪는 모순, 상처, 모멸은 글로 써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돼야 사랑할 수 있어요. 결국 문학은 삶을 다시 사랑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
지난 27일 광주시 서구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 5층 연회실에서 제13기 광주일보 리더스아카데미의 여섯 번째 특강이 열렸다. 강사로 나선 정지아 작가는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정 작가는 구례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 소설 ‘빨치산의 딸’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다. 그는 만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5·18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등 굵직한 수상 내역을 보유한 소설가다. 펴낸 책들은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과 장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회복을 독창적인 서사로 풀어내 왔다.
정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엿보며 언어로 재구성하는 사람’이라며 “동료 작가보다는 ‘직업도, 삶도, 생각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깃거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편 소설을 쓰기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그리려 했기 때문이었다”며 인간의 다양성과 모순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필요성을 짚었다.
서울 생활을 접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구례로 내려간 정 작가는 지방 공동체의 구조·정서와 함께 구례라는 공간의 역사적 특수성을 새롭게 체감하게 됐다. 구례는 6·25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도연맹 학살을 피한 지역으로, 이념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정서가 깊은 마을이다.
“구례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함부로 재단하지 않아요. 거의 모든 가정에 ‘빨갱이’와 ‘군인’이 함께 존재하거든요. 어느 편도 쉽게 욕하지 못해요. 그건 상처를 공유한 사람들의 조용한 연대예요.”
![]() 정지아 작가 |
그는 또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객관보다 중요한 건 주관적 지지”라고 강조했다. “나는 엄마가 ‘미스코리아에만 나가면 따놓은 당상이다’고 했을 때 ‘왜 저래? 미친 거 아니야?’ 했어요. 근데 그 주관적인,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이 결국 나를 일으키는 힘이었더라고요.”
정 작가는 특히 이념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공유했다. 그는 어린 시절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존재와 ‘빨갱이의 딸’이라는 낙인이 어떻게 자신에게 각인됐는지 회고하며 한 사람의 생애가 단순한 이념의 잣대로 재단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희 아버지는 전향서를 쓴 변절자였고, 그래서 비전향 장기수들에게조차 외면받았어요. 그런데도 그분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오셔서 ‘열사’냐 ‘인사’냐를 두고 밤새 싸우시더라고요. 플래카드에 적을 단어 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었죠.”
그는 이념의 대립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문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절히 이야기했다.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일화들은 마치 하나의 사회 축소판처럼 느껴졌고, 작가는 그 속에서 소설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처음엔 저도 사상의 순결을 지킨다는 비전향 장기수분들을 처음 뵐 때 굉장한 기대와 설렘을 갖고 그분들을 만났어요. 하지만 그냥 그분들도 ‘동네 할배’들이더라고요. 아무리 위대한 선택을 했다고 해도 세상과 단절된 채 변화 없이 머무르면 성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정 작가는 “말로만 휴머니즘을 외쳐봤자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삶의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애 전체를, 망가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와 시대를, 그리고 그 안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한 인간을 이야기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 작가는 고통을 통과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관용을 품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소설로 증명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살면서 겪는 모순, 상처, 모멸은 글로 써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돼야 사랑할 수 있어요. 결국 문학은 삶을 다시 사랑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