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예향] “곁에 있는 식물과 더불어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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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예향] “곁에 있는 식물과 더불어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예향 초대석] 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
뿌리·줄기 등 식물의 모든 기관 그림으로 기록
세밀화 대신 식물학 그림·일러스트로 표현해야
무궁화·상사화 속 식물 전부 기록 남기고 싶어
팟캐스트 통해 우리땅에서 자라는 식물들 소개
2025년 04월 21일(월) 19:05
식물세밀화는 식물 종(種)의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특징을 담아내는 예술이자 과학이다. 식물의 생식기관(꽃)과 뿌리, 줄기, 잎, 열매, 수피, 겨울눈 등 식물의 모든 기관이 그림 한 장에 모두 기록된다. 그래서 식물세밀화보다 ‘식물학 그림’이나 ‘식물학 일러스트’가 보다 정확한 용어이다. 20년 가깝게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식물세밀화가)이자 원예학 연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식물세밀화가)·원예학 연구자는 식물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종(種)의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특성을 정확하게 그림으로 기록한다. 또한 신문 칼럼과 저술, 오디오 팟캐스트 활동을 통해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들과 식물학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식물 세밀화’ 대신 ‘식물학 그림’으로 불러야”=식물의 개화부터 결실까지 한살이를 지켜보며 ‘식물의 보편적 특성’을 그림으로 기록해야 하는 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식물 세밀화가)는 식물의 시간을 따른다. 만화방창(萬化方暢)하는 봄 또한 복수초부터 벚나무, 수수꽃다리, 장미에 이르기까지 봄꽃의 개화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한다. 그래서 봄철에는 여느 계절보다 더욱 바쁘게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꽃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서울 태생인 이 작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원예학을 공부했다. 대학 진학 당시 부친이 “식물만 보고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냐” 응원했고, 스스로도 “산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연, 식물을 찾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 학부 3학년 수목학 수업을 통해 ‘식물 세밀화’를 처음 접했다. 대학 졸업 후 국립수목원에서 4년 동안 식물 세밀화가로서 활동했다. 이때 소나무·전나무처럼 방울 열매가 열리는 ‘구과(毬果)식물’(바늘잎나무·침엽수) 40여 종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을 맡아 수행했다. 이후 국립수목원을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며 식물·나무를 연구하는 국가 기관과 프로젝트를 협업하고, 신종 식물을 발표하는 연구논문을 비롯해 ‘파브르 식물기’와 같은 책 표지, 아이돌 그룹 CD 커버에도 식물학 그림을 그리는 등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이우만(조류세밀화가)·최원형(환경작가)·회복(동물권 활동가)과 함께 생태에세이 ‘자연으로 향하는 삶’(가지 刊)을 펴냈다.

-‘식물세밀화’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식물세밀화’라는 용어 보다 ‘식물학 그림’(일러스트), ‘식물학 일러스트레이션’(Botanical illustration)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원어가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도감을 내는 출판사에서 ‘식물 세밀화(細密畵)’라고 용어를 쓴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세밀’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가 없어요. ‘식물 세밀화’라는 용어 때문에 제가 일을 하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세밀’이라는 게 무슨 극사실(極事實)로 그리는 그림을 떠올리기 쉽잖아요.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이랑 비슷한 게 ‘메디컬 일러스트’(인체 해부도) 같은 거죠. 제가 그리는 건 식물 해부도고, 과학 일러스트라는 걸 설명해야 되니까 어려움이 많았어요. ‘식물학 그림’은 식물도감에 들어가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예를 들어서 ‘복수초’와 ‘세(細)복수초’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 도감을 보잖아요. 그러니까 종(種)의 특징인 뿌리부터 줄기, 잎, 꽃, 열매 등 식물의 모든 기관이 기록되어야 해요.”

-사진이나 영상의 시대인 21세기에 ‘식물학 그림’이 여전히 필요한 까닭은 뭔가요?

“만약에 외계인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種)을 기록한다고 했을 때, 마른 사람을 한 명 보고서 사진을 찍어요. 그러면 진짜 덩치가 큰 사람을 봤을 때 ‘이건 사람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어요. 같은 종일지라도 개체마다 서로 다른 특징들이 있단 말이에요. 사진은 그런 것들을 그대로 담아요. 말하자면 동물이 아닌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 직립보행과 눈·코·입·귀, 팔·다리 개수처럼 종의 보편적인 특징을 강조하고, 개체 변이는 축소해서 그려내는 게 ‘식물 세밀화’에요. 여기에서 사진과 차이가 있는 거죠. 사진은 개체 변이를 그대로 담지만 ‘식물 세밀화’는 수천 장의 사진묶음, 평균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식물 세밀화가는 식물에 대해서 잘 알아야 돼요. 그 식물 종의 보편적 특징이 뭔지 알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최대한 많은 자생지에서 다양한 개체를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인 ‘진노랑상사화’.
-‘식물의 책’(2019년)에서 “식물세밀화는 짧으면 1년, 길면 10년 이상이 걸리는 호흡이 긴 작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노랑상사화’는 최종 완성까지 9년이 걸렸던데 한 장의 ‘식물학 그림’(식물세밀화)이 완성되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나요?

“만약에 제가 민들레를 그려야 된다, 라고 하면 민들레꽃이 피고 열매 맺는 거를 기다려야 되는 거고, 식물의 생애에 나타나는 그런 과정들이 모두 담겨야 돼요. 도감은 언제든지 민들레를 봤을 때 식별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다 기록해야 되는 거죠. 그러려면 봄부터 가을까지 그림을 그려야 되는 거죠. 그런데 1년 동안 민들레만 보고 있을 수가 없단 말이에요. 올해 놓치면 내년에 그려야 되는 거죠. ‘진노랑상사화’도 꽃은 매년 봤는데 열매 맺는 시기를 계속 놓치다 보니까 열매를 못 그려서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거죠. 또 중요한 건 그림을 완성했는데 더 많은 개체를 보고 수정할 게 있으면 수정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수정을 거듭할수록 정확도에 가까워지는 거예요.”

◇“식물은 내가 사는 데를 사랑하는 어떤 매개 될 수 있어”=이소영 작가는 식물학 그림을 그린 지 올해로 17년이 됐다. 식물학 그림을 그리는 한편 광주일보와 서울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 클립 ‘이소영의 식물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신문 지면을 통해 발표되는 에세이는 식물에 대한 정보를 뛰어 넘어 작가의 지극한 식물 사랑을 담고 있다. 또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미래문화유산대학원 겸임교수로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가의 칼럼을 보면 식물을 그리면서 하는 사유(思惟)와 식물을 대하는 태도가 눈길을 끈다. ‘식물에 관한 오해’(2024년)에서 독자들에게 한국 특산식물이 아닌 제비꽃과 같은 평범한 ‘도시 틈새식물’을 통해 ‘포용’과 ‘성의’를 갖춘 식물문화를 강조한다.

“물론 지구상에는 보전이 시급한 식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식물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인간이 매기는 순위일 뿐, 식물 사회는 서로의 가치를 계산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지금 각자의 발밑에 피어나기 시작한 제비꽃을 향해 한 번쯤 무릎 꿇고 들여다보는 성의,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다양한 식물을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이 아닐까 싶다.”

특히 7년 동안 월 2회 방송하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이소영의 식물 라디오’ 활동이 돋보인다. 매월 두 차례 음성으로 청취자들에게 식물이야기를 들려준다. 영국 런던에 있는 ‘큐(Kew) 왕립식물원’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시각 장애인의 산책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금까지 ‘오디오 클립’을 계속 하는 건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유튜브는 계속 눈으로 봐야 되는데, 제가 하고 있는 식물 팟 캐스트의 경우 청소하거나 설거지 할 때도 들을 수 있어서, (청취자들이) ‘유튜브로 가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댓글로 해줬거든요. 그냥 작업실에서 녹음을 해요.”

◇ “무궁화와 상사화 속 전부 그림으로 기록하고 싶어”=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생태·환경 교육을 중시한다. 어릴 적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를 관찰한 경험이 자연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국립수목원에서 활동하며 ‘공적인 책무’가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었다고 한다. ‘사명감’과 ‘즐거움’을 안고 남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소외 지역을 기꺼이 찾아간다. 이런 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이 “나는 식물을 좋아해요!”, “식물학자가, 농부가 되고 싶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소영 작가는 한국에서 육성된 ‘무궁화’ 품종 전부와 한국에서 자생하는 5종의 ‘상사화 속 식물’ 시리즈를 그림으로 기록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우리 식물을 사랑하는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생을 밀고 나갈 필생(畢生)의 과제이다. 생동하는 봄날, 식물그림작가는 등산화로 갈아 신고 채집봉투와 가위, 루뻬(돋보기)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겨 관찰해야할 식물에게로 향한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이소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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