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역사 ‘펜’으로 맞서온 文鄕 광주 정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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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역사 ‘펜’으로 맞서온 文鄕 광주 정신을 만나다
[ 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로-프롤로그]
현대사 최대 비극 5·18 상처 안은 고장
억압과 탄압, 소외와 설움 속 문학 꽃피워
한강 작가, 지난해 노벨문학상 쾌거
‘광주정신’ 작품에 녹여 세계에 큰 울림
광주, 한국과 세계 문학 중심지 발돋움
김현승·박용철 등 문인들의 삶과 문학
2025년 02월 16일(일) 19:45
지난 2023년 북구 각화동 시화마을에 개관한 광주문학관은 광주문학의 역사와 다양한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벼락같은 축복’이었다. 광주 문학, 한국문학에 내리는 서광(瑞光)의 빛이었다.

흔히 상스러운 빛, 좋은 일이 일어날 징후를 서광이라 한다. 현재보다 내일, 그리고 미래에 더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배어 있다.

광주의 모산(母山)은 무등산이다. 무등산 옛 이름은 서석산(瑞石山)이다. 조선시대 역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광산현 산천조에는 무등산과 서석산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무등산은 (광산)현의 동쪽 10리에 진산이며, 무진악 또는 서석산(瑞石山)으로도 불린다.’

서광(瑞光), 즉 서석산에 비친 빛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자구 그대로의 서광이자 미래의 어느 시점에 경사가 일어날 조짐을 내포한다.

빛의 일반적인 특징은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다. 들이치듯 퍼붓는 경향성을 띄기에 이러저러한 예단을 넘는다. 막연한 가늠과는 차원이 다르다. 빛이 스며들면 거짓이 들어설 틈이 없다. 한 줌도 안 되는 허위는 이내 증발하고 만다. 생명이 움트고, 진실은 드러나며, 정의는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문학적 관점에서 광주 출신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광주가 세계문학중심도시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갖췄다는 의미다. 광주에 뿌리를 둔 문학이 지난 시대 곡절과 불의를 극복하고 마침내 세계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일빌딩245 1층에 마련된 ‘카페,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5·18을 모티브로 한 한강의 장편소설이다.
몇 해 전부터 한강 작가는 세계문학 중심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출판계는 머잖은 미래에 한강이 노벨상을 받으리라 예상을 했다. 한국 최초 부녀(한승원, 한강) 이상문학상 수상 이력에서 보듯 한강은 부친 한승원의 작가적 성실성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일궈왔다. 다만 노벨상은 수 년 후에나 현실화될 것이라 짐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미래’가 예상보다 빨리 눈앞의 현실이 되었고, 광주의 자부심이 되었다. 특히 ‘광주정신’ 등을 모티브로 상흔의 역사를 정치하게 형상화한 작품 등이 노벨문학상 선정 근거가 되었다는 것은 세계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주는 한강 작가의 수상에 앞서 지난 200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감격을 누렸다. 광주는 ‘인동초’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다. 군사독재의 사슬 아래 DJ와 광주가 감내해야 했던 참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5·18 당시 광주와 김 전 대통령 모두는 가혹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DJ의 노벨상 수상이 지역민에게 각별했던 것은 그 훼절과 핍박의 역사를 견디고 세계 평화의 도시, 전도자로 우뚝 섰다는 데 의미가 있다.

광주문학관 벽면에 걸린 한강 노벨상 수상 축하 플래카드.
유무형의 소외와 배제의 틈바구니에서 광주와 남도는 오랫동안 ‘소외와 설움’의 대명사였다. 그 강고한 판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그 자장은 이전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당시 김상욱 경희대학교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에 주어진 노벨상 2개 모두 광주와 관련된 것이다. 적어도 노벨상 수상위원회라는 틀로 본 서구인의 시각에서, 우리가 이룬 것들 중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정점에 도달한 것이 광주였다는 뜻”이라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란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민주주의, 인권 같은 것이다”라고 밝혔다.

무참하게도 문학은 상처와 상흔, 핍절과 빈한, 억압과 탄압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역설의 미학이다. 광주 문학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불의한 ‘역사의 강’을 도저하게 거슬러왔던 힘은 사랑과 진실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강의 문학 또한 그런 태토위에서 꽃을 피웠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광주는 그런 자부심과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키고 견지해 온 도시다. 세계 여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광주만의 정신, 광주만의 가치, 광주만의 의미가 문학 속에 살뜰히 내재되어 있다.

예로부터 광주는 예향(藝鄕), 문향(文鄕), 미향(味鄕)으로 불렸다. 이 가운데 문향(文鄕)은 광주 정체성을 지지하고 견인하는 가장 본질적인 어휘다. 역사 이래로 광주에는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이들의 작품은 지역 문학뿐 아니라 한국 문학을 풍성하게 살찌웠으며 다양한 콘텐츠로 전이됐다.

조선시대 호남 사림의 대표 눌재 박상을 비롯해 광주전남 근현대문학의 효시 조운 시인, 광주 민족문학의 시작 김태오 아동문학가 등을 들 수 있다.

이어 김영랑 등과 동인지 ‘시문학’을 창간한 용아 박용철, ‘광주현대문학의 아버지’ 다형 김현승, 광주에서 활발한 창작을 하며 저마다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열었던 조태일, 김남주, 문병란 시인을 비롯해 송기숙, 문순태, 한승원 소설가 등은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들이다.

또한 오월 민중항쟁을 시로 형상화한 김준태 시인을 비롯해 80년 시의 시대를 역동적으로 열었던 ‘오월시’ 동인, 광주동인문학의 역사인 ‘원탁시회’ 등은 광주의 문학을 대표한다.

광주문학관 내부의 5·18 관련 자료 공간.
공간적 관점에서도 광주의 문학이 지니는 역사는 남다르다. ‘광주의 어머니’ 무등산을 배경으로 탄생한 가사문학, 누정문학은 면면히 광주의 문학을 이어가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넘어 문화와 인문학 보고로서 무등산의 가치와 정신은 누대에 걸쳐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광주 출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광주는 제2의 문학 중흥기를 맞았다. 이번 시리즈 기획 의도는 한국과 세계문학중심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문향(文鄕) 광주의 저력과 역사성, 문학과 인문 정책 등 세계문학중심도시로서의 면모 등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데 있다.

또한 5·18로 대변되는 의로움의 상징 ‘광주정신’, 지역을 넘어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남긴 문인들 김현승, 박용철을 비롯해 5월 문학을 통해 광주의 정체성을 자신만의 작품 세계에 녹여냈던 작가들의 삶과 문학도 다룰 예정이다.

아울러 책 읽는 인문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의 정책, 2023년 개관한 광주문학관의 현재와 미래, 다채로운 시민 참여 문학 프로그램 등을 소개함으로써 제2 한강을 배출할 수 있는 광주의 역량과 과제를 폭넓게 소개할 계획이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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