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오월’을 기억하는 방법- 김미은 편집국 부국장·여론매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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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면 기이한 감정에 휩싸인다. 분명 공포 영화가 아닌데,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섬뜩하다. 단 한 장면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본 것만 같다. 영화에 삽입된 미세한 어떤 ‘소리들’과 불안한 음악이 줄곧 머리 속을 떠다닌다. 불현듯,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까지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이야기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이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한 가정의 평온한 일상이다. 군복을 차려 입고 출근을 준비하는 독일군 장교,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는 아내, 자전거를 타고 푸른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 실존 인물인 루돌프 회스의 근무처가 담장 바로 옆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사실이 이 기이함을 만들어낸다.
예술가에 상상력을 허하라
영화를 보는 내내 담장 너머를 떠올리며 전율했다. 몇 년 전 취재차 방문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산처럼 쌓여 있는 수 천 켤레의 신발과 잘려나간 머리카락, 수용소의 아이들 사진, 가스실의 존재. 오후 늦게 도착해 관람객이 거의 없었던 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더욱 더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영화에 수용소 장면은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저런 삶이 가능할까” 여겨지는 한 가족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처음엔 아우슈비츠 현장을 기억하는 나의 경험이 감정을 극대화시킨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한데 그렇지 않았다. 지인 역시 유대인 학살을 다룬 그 어떤 영화들보다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전율이 일었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자연스레 ‘오월 광주’를 다룬 예술 작품들이 떠올랐다. 더불어 우여곡절 끝에 원형복원이 결정된 후 현재 공사를 진행중인 5·18 최후 항전지 옛 전남도청에 들어설 전시 콘텐츠에 생각이 미쳤다.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박제된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무엇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면 5·18 45주년을 맞지만 오월 광주를 대표할 만한 예술작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당사자인 광주를 비롯해 국내외 예술인들이 숱하게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 결과물은 빈약하다. 예술가의 역량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시키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작품을 만들던 이들도 ‘광주’를 소재로 작업할 때면 실력 발휘를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역사적 무게와 시대적 사명에 부담을 갖고 작업하는 이들에게 광주 사람들, 특히 오월 관계자들의 ‘고착화된 시선’은 본의 아니게 그들의 날개를 꺾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같은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5·18은 광주의 정체성과 직결되기에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국내외 작가들 역시 5·18을 작품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최고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도록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광주가 해야 할 일이다.
광주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새롭게 부임한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등 시립예술단체들 역시 ‘오월 공연’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포부를 늘 밝힌다. 올해 다시 본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은 여전히 감동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시립단체 작품과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은 손에 꼽을 정도다. 광주의 예술가들도 이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오월 관련 코미디 한편이 나와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월 관계자의 열린 마음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지난 23일 5·18 단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 전시 설계 및 제작·설치 기본 설계 보고회’를 가졌다. 지난 2월 도청 전시 설계 착수보고회를 가진 이후 나온 첫 결과물이다. 추진단은 도청을 랜드마크 이상의 ‘마인드마크(Mind mark)’로 삼는다는 기조 아래 도청 본관, 상무관 등에 설치할 전시 콘텐츠를 공개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콘텐츠와 함께 들어설 조형물 등 예술작품들을 제작하는 데 작가들의 발칙한 상상력이 발휘되면 좋겠다. 자기 검열에 빠진 예술가, 눈치를 보는 예술가가 생산해내는 작품이 감동을 줄 리 없다.
앞으로 도청 콘텐츠 관련 설명회가 열릴 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제대로 된 ‘오월 광주’의 완성을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월 관계자들 역시 시민사회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두번 다시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옛 전남도청의 준공 기한은 오는 2025년 10월이다.
예술가에 상상력을 허하라
영화에 수용소 장면은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저런 삶이 가능할까” 여겨지는 한 가족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처음엔 아우슈비츠 현장을 기억하는 나의 경험이 감정을 극대화시킨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한데 그렇지 않았다. 지인 역시 유대인 학살을 다룬 그 어떤 영화들보다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전율이 일었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자연스레 ‘오월 광주’를 다룬 예술 작품들이 떠올랐다. 더불어 우여곡절 끝에 원형복원이 결정된 후 현재 공사를 진행중인 5·18 최후 항전지 옛 전남도청에 들어설 전시 콘텐츠에 생각이 미쳤다.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박제된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무엇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면 5·18 45주년을 맞지만 오월 광주를 대표할 만한 예술작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당사자인 광주를 비롯해 국내외 예술인들이 숱하게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 결과물은 빈약하다. 예술가의 역량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시키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작품을 만들던 이들도 ‘광주’를 소재로 작업할 때면 실력 발휘를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역사적 무게와 시대적 사명에 부담을 갖고 작업하는 이들에게 광주 사람들, 특히 오월 관계자들의 ‘고착화된 시선’은 본의 아니게 그들의 날개를 꺾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같은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5·18은 광주의 정체성과 직결되기에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국내외 작가들 역시 5·18을 작품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최고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도록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광주가 해야 할 일이다.
광주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새롭게 부임한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등 시립예술단체들 역시 ‘오월 공연’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포부를 늘 밝힌다. 올해 다시 본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은 여전히 감동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시립단체 작품과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은 손에 꼽을 정도다. 광주의 예술가들도 이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오월 관련 코미디 한편이 나와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월 관계자의 열린 마음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지난 23일 5·18 단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 전시 설계 및 제작·설치 기본 설계 보고회’를 가졌다. 지난 2월 도청 전시 설계 착수보고회를 가진 이후 나온 첫 결과물이다. 추진단은 도청을 랜드마크 이상의 ‘마인드마크(Mind mark)’로 삼는다는 기조 아래 도청 본관, 상무관 등에 설치할 전시 콘텐츠를 공개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콘텐츠와 함께 들어설 조형물 등 예술작품들을 제작하는 데 작가들의 발칙한 상상력이 발휘되면 좋겠다. 자기 검열에 빠진 예술가, 눈치를 보는 예술가가 생산해내는 작품이 감동을 줄 리 없다.
앞으로 도청 콘텐츠 관련 설명회가 열릴 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제대로 된 ‘오월 광주’의 완성을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월 관계자들 역시 시민사회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두번 다시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옛 전남도청의 준공 기한은 오는 2025년 10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