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병원 개원이 뉴스가 되는 세상- 채희종 디지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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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병원 개원이 뉴스가 되는 세상- 채희종 디지털 본부장
2025년 09월 24일(수) 00:20
우리 세대에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 주변의 지인 10명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해결이 불가능하다’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하나같이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AI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우리 세대가 지구온난화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적극적인 실천과 국제 협력을 통해 개선의 여지는 분명히 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간에 비해 AI가 인간과 세상을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내친김에 전남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를 물었다. 우리 세대에 지방 소멸과 지역 의료 붕괴를 해결할 수 있을까. 대다수가 ‘해결이 어렵지만 완화시킬 수는 있다’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렇지만 약간의 희망이 섞인 어정쩡한 답을 내놓았다. 또 AI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단기간 내 완전 해결은 어렵지만, 적극적인 대책과 제도 개선이 병행된다면 일정 부분 개선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전제로 인간은 사태의 완화가, AI는 사태의 개선이 가능하다는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지방소멸과 함께 온 지역의료 붕괴

하지만 십 수년 동안 지역 의료 취재를 담당한 입장으로서는 지방 소멸과 지역 의료 붕괴, 특히 지역 의료 붕괴는 우리 세대에 해결이 불가능해 보인다. 지역 의료 붕괴는 지방 소멸과 함께 왔지만 이 둘은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부작용이자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집중화는 한때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수도권 일극화를 초래해 이제 발전은커녕 국가의 균형과 체계를 기반부터 뒤흔들고 있다. 역대 정권이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지만 오히려 수도권은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팽창한 상태이다.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균형은 저출산으로 이어져 국가소멸을 부추기고 있다.

지역 의료, 특히 농어촌지역 의료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인구 유출과 저출산에 따른 환자 수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결국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 의료 대책을 찾는다는 것은 연골이 닳아 버린 무릎에 파스만을 붙이는 사이비 의료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이 와중에 최근 대한의학회가 ‘지역의료정책 문제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광주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해 패널 토론자로 참여했다. 지역의료의 고사를 막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과 지역 민간 상급병원 및 지방의료원, 지역 1·2차 병원의 역할 재정립과 효율적 운영 방안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주제발표들이 이어졌다.

매 순간 그럴싸하고 실행된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공감했지만 심포지엄이 끝난 뒤에는 한 발표자(지방 종합병원 의사)가 내뱉듯이 말했던 한마디만이 기억에 남았다. 대부분이 의대 교수와 의사, 의료인인 참석자들을 향해 “솔직히 여기 계신 선생님들도 자식이 어렵게 공부해 의사가 됐는데, 시골에 내려 가서 개원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5시간 가량 진행된 심포지엄의 핵심이자 결론이었다. 국가와 의료계, 지자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의사들은 농어촌에 내려갈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해결이 되겠는가. 어쩌다 뜻 있는 의사가 있어 시골에 개원하면 그 지역 메인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전남 농어촌 지역 필수분야 의사 수는 서울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환자 수는 서울보다 20% 가량 높고, 산부인과나 소아과가 단 한곳도 없는 지역이 태반이다. 이번 포럼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수많은 제안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시골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한가한 얘기이다. 지금 당장 임신부가 불안해도 아이가 아파도 갈 곳이 없는 데 말이다.



병원 운영 위한 환경조성 시급

지방 소멸이 해결되거나 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단언컨대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어떤 노력도 쓸모 없다. 지금은 단 한명의 의사라도 시골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급선무다. 먼저 지자체들은 농어촌에 병·의원을 개설하려는 의료인을 위한 전담 부서를 만들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병·의원은 청년 고용 효과가 크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만큼 지역 소멸기금이나 지역 균형발전기금 등을 통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병·의원이 부담하는 각종 세금을 줄여주거나 면제할 필요가 있고, 타지역에서 내려 온 의료인과 병원 직원들에게 1만원 주택과 같은 주거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더불어 이들 병·의원의 조기 안착을 위해 지역 인재를 고용할 경우 인건비 절반을 2년여 정도 지원하는 지역인재 고용 지원금 제도를 5년으로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정부와 의료계는 필수 의료 분야의 전공의 정원을 늘리고 의료 수가도 조정해야 한다. 특히 기피 분야와 고난이도 분야의 의사 양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고위험 수술과 적극적 진료로 인한 문제 발생시 법적 부담을 안는 방안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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