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ACC’를 보고 싶다 - 박진현 문화·예향담당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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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ICE)를 타고 1시간 30분쯤 달리자 칼스루헤(Karlsruhe) 중앙역에 닿았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곳은 뷔르템베르크주에 속하는 인구 30만 명의 중소도시다. 베를린, 뮌헨 등 대도시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명소가 거의 없어 관광객들이 건너 뛰기 때문이다. 독일은 매년 전 세계에서 3700여 만 명이 찾는 관광대국이지만 칼스루헤는 특수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1989년 ‘ZKM(Zentrum fur Kunst und Medien·예술과 미디어센터)’이 개관하면서부터다.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센터와 함께 세계 최고의 미디어아트센터로 부상하며 매년 평균 전 세계에서 28만여 명이 다녀가는 문화도시로 변신한 것이다. 특히 지난 2015년부터 ‘슐로스리히트슈피레’(Schlosslichtspiele·궁전 라이트쇼)가 열리는 가을 시즌에는 칼스루헤행 기차가 매진이 될 정도다.
칼스루헤의 미래 바꾼 ZKM
지난달 초, 기자가 찾은 ZKM은 독특한 조합의 외관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5층 규모의 고풍스런 건물과 전면이 유리로 마감된 모던한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글로벌 미디어 축제의 본고장인 만큼 최첨단의 고층 건물을 떠올린 내 예상과 달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날 것 그대로의 철제 구조물이 ‘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1층 로비를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잡은 대형 전시실에는 마침 세계적인 퀄리티를 자랑하는 ZKM 소장품 상설전 ‘끝나지 않은 이야기’(The Story That Never Ends)가 열리고 있었다. 뉴욕의 모마(MoMA), 런던의 테이트모던 등 유명 미술관의 현대미술 섹션에서나 만날 수 있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미디어아트 대표작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사실, 20~21세기의 미디어아트 1만2000점을 소장하고 있는 ZKM은 전 세계의 미술관들이 앞다투어 러브콜을 보낼 만큼 독보적이다. 개관 30주년인 지난 2019년에는 독일 최초의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에 선정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독일인들의 자부심을 높였다.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업그레이드 하는 등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결과다.
최근 취재차 방문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ZKM을 소환시켰다. 제2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9월 26일~11월 8일)의 개막 공연인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가 열린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국내외에서 몰려든 관객들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국내 유일의 오페라 제작극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2003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기획·제작한 전막 오페라는 완성도 높은 무대로 국내 공연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6편의 오페라 축제 라인업에서 눈길을 끄는 건 ‘미인’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창·제작 콘체르탄테(협주곡)인 미인은 지난해 문을 연 대구 간송미술관의 개관 특별전에서 화제를 모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오페라하우스측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그림속 인물들을 무대예술로 되살려내는 새로운 시도인 만큼 향후 쇼케이스 등을 거쳐 볼륨을 키운 뒤 해외팬들을 사로잡는 K-오페라의 산실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이미 올 초 에스토니아의 ‘사아레마 오페라축제’ 등에 참가해 제작 역량을 인정 받아서인지 K-뮤지컬의 신화를 쓴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바통을 대구에서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기분 탓일까. 개관 10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둘러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왠지 다르게 보였다. 지난 2015년 11월 광주의 장밋빛 미래를 내걸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숨가쁘게 달려온 ACC의 10년 여정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스쳐 지나갔다. 초창기 랜드마크 논란에서부터 대표 콘텐츠, 창·제작 기능, 지역문화예술과의 협업 등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강산이 변한 만큼 대중성을 살린 콘텐츠와 10회째를 맞은 크리에이터스 레지던시, 지역협력회의 발족 등 ACC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시적 성과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그저 그런 소도시를 세계적인 미디어 발신지로 키운 ZKM, K-오페라의 메카를 꿈꾸는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새삼 복합문화기관의 역할과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한다. 시민들의 문화마인드를 높이는 플랫폼에서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브랜드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ACC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건 그 때문이다. 이젠 그동안 쌓은 역량을 모아 국내는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할 ‘온리 원(Only one) 콘텐츠’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진리는 근래 한류열풍에서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전 세계인을 사로잡을 ‘메이드 인 ACC’의 탄생을 고대한다.
지난달 초, 기자가 찾은 ZKM은 독특한 조합의 외관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5층 규모의 고풍스런 건물과 전면이 유리로 마감된 모던한 건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글로벌 미디어 축제의 본고장인 만큼 최첨단의 고층 건물을 떠올린 내 예상과 달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날 것 그대로의 철제 구조물이 ‘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1층 로비를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잡은 대형 전시실에는 마침 세계적인 퀄리티를 자랑하는 ZKM 소장품 상설전 ‘끝나지 않은 이야기’(The Story That Never Ends)가 열리고 있었다. 뉴욕의 모마(MoMA), 런던의 테이트모던 등 유명 미술관의 현대미술 섹션에서나 만날 수 있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미디어아트 대표작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사실, 20~21세기의 미디어아트 1만2000점을 소장하고 있는 ZKM은 전 세계의 미술관들이 앞다투어 러브콜을 보낼 만큼 독보적이다. 개관 30주년인 지난 2019년에는 독일 최초의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에 선정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독일인들의 자부심을 높였다.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업그레이드 하는 등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결과다.
최근 취재차 방문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ZKM을 소환시켰다. 제2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9월 26일~11월 8일)의 개막 공연인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가 열린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국내외에서 몰려든 관객들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국내 유일의 오페라 제작극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2003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기획·제작한 전막 오페라는 완성도 높은 무대로 국내 공연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6편의 오페라 축제 라인업에서 눈길을 끄는 건 ‘미인’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창·제작 콘체르탄테(협주곡)인 미인은 지난해 문을 연 대구 간송미술관의 개관 특별전에서 화제를 모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오페라하우스측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그림속 인물들을 무대예술로 되살려내는 새로운 시도인 만큼 향후 쇼케이스 등을 거쳐 볼륨을 키운 뒤 해외팬들을 사로잡는 K-오페라의 산실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다. 이미 올 초 에스토니아의 ‘사아레마 오페라축제’ 등에 참가해 제작 역량을 인정 받아서인지 K-뮤지컬의 신화를 쓴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바통을 대구에서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기분 탓일까. 개관 10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둘러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왠지 다르게 보였다. 지난 2015년 11월 광주의 장밋빛 미래를 내걸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숨가쁘게 달려온 ACC의 10년 여정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스쳐 지나갔다. 초창기 랜드마크 논란에서부터 대표 콘텐츠, 창·제작 기능, 지역문화예술과의 협업 등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강산이 변한 만큼 대중성을 살린 콘텐츠와 10회째를 맞은 크리에이터스 레지던시, 지역협력회의 발족 등 ACC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시적 성과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그저 그런 소도시를 세계적인 미디어 발신지로 키운 ZKM, K-오페라의 메카를 꿈꾸는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새삼 복합문화기관의 역할과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한다. 시민들의 문화마인드를 높이는 플랫폼에서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브랜드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ACC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건 그 때문이다. 이젠 그동안 쌓은 역량을 모아 국내는 물론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할 ‘온리 원(Only one) 콘텐츠’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진리는 근래 한류열풍에서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전 세계인을 사로잡을 ‘메이드 인 ACC’의 탄생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