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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골동반과 비빔밥
2024년 05월 09일(목) 00:00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다니는 대학생활은 각기 다른 지방문화가 어우러지는 재미가 있었다. 각자 학창시절 음식 기억을 내놓곤 했는데 그게 또 어찌나 신기하던지. 광주 출신 친구들은 상추튀김을 얘기해서 놀랐다. 대구 출신들은 화교들이 만들던 야키우동이니 만두 추억이 별나게 들렸고, 인천 친구들은 해안 도시답게 소라고둥 같은 걸 사먹던 기억을 떠올렸다. 좀 파격적인, 요즘 세대는 믿지 않을 것 같은 별스러운 추억도 있다. 비빔밥이다. 시내서 파는 그런 정식 음식이 아니라 교실에서 도시락을 함께 비벼 먹었다. 어디서 양푼을 구했던 것 같지는 않고 허드렛물을 받아 쓰던 청소용 물통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음식이 정말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소년다운 치기였다. 자기 도시락이 투입되는 걸 극력 반대하는 친구에게는 깔끔떤다고 야유를 날리기도 했던.

요즘은 지역 별미, 이를 테면 전주나 진주 같은 도시 말고는 비빔밥이 흔하지 않다. 익산이나 광주의 육회비빔밥도 있는데 어떤 경우든 특별한 음식이지 언제나, 아무 데서나 팔던 값싼 비빔밥은 요즘엔 찾아보기 힘들다. 1970, 80년대 대중식당에선 거의 필수 메뉴였다. 당근, 콩나물, 무채 정도 넣은 소박한 음식이었다. 여름엔 차가운 콩나물국을 곁들여주었다. 오징어볶음덮밥과 함께 분식집에서도 취급하던 몇 안되는 쌀밥 메뉴이기도 했다. 고기가 흔해지고, 심지어 그 비싼 불고기가 저렴한 수입고기 덕에 뚝배기불고기라는 대중메뉴로 팔리는 시대가 되면서 고추장 넣고 썩썩 비벼 바삐 한 그릇 할 수 있던 그 소박한 비빔밥은 구경이 힘들어졌다.

그때는 패스트푸드가 퍼지기 전이라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초고속 메뉴가 바로 비빔밥이었다. 미리 만들어 둔 나물만 얹고 고추장을 내주면 후딱 먹고 일어설 수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전주식 고급 비빔밥을 먹기 시작한 건 80년대 이후의 일이다. 81년, 전두환 정권이 광주의 비극을 덮기 위해 기획한 국풍 81을 여의도에서 벌이면서 이른바 팔도음식 잔치를 함께 열어 남도의 화려한 비빔밥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90년대에 서울은 돌솥비빔밥의 시대를 맞았다. 돌솥에 밥을 짓고 여러 반찬을 정성껏 내어 비빔밥과 즉석 숭늉을 먹는 형식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여유 있는 고급 외식으로 비빔밥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돌솥비빔밥은 특이하게도 일본에서도 빅 히트를 쳤다. 밥을 비비는 문화가 없었던 일본은 이 음식을 처음 대하곤 어쩔 줄 몰라 했다. 결국 한식당 주인은 직원을 시켜 밥을 직접 비벼주는 서비스를 해주었다는 회고를, 재일 사학자 정대성 교수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비빔밥을 우리가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서 골동반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골동품 할 때 바로 그 골동(骨董)을 쓴다. 왜 비빔밥에 이 한자를 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설렁탕처럼 뼈와 고기를 넣고 오래 끓인 음식을 골동갱이라 했듯이, 뭔가 이것저것 섞거나 오래 끓이는 음식에 골동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공통점만 희미하게 드러날 뿐이다. 또 골동품이 귀하듯, 비빔밥의 원조로 보는 골동반도 값어치 높은 음식이었다. 소고기, 내장, 잣, 버섯 같은 재료를 기름과 간장으로 비비는 음식이니 간편한 대중음식일 리 없다. 물론 저자의 민중들은 골동반은 못 먹어도 비빔밥은 먹었을 것이라 가정할 수 있다. 이것저것 있는대로 반찬을 넣고 비비는 음식은 굳이 기록된 자료가 없더라도 예상 가능한 것이 아닐까. 주막거리에서 흔하게 팔리는 음식이 국밥이었고, 어쩌면 두번 째 메뉴로 비빔밥을 팔았을 수도 있다.

지난 시대의 표준적인 비빔밥, 즉 스테인리스 그릇에 달걀프라이, 시판 고추장, 참기름을 넣은 것은 음식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명제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한때 고급 식기였던 스테인리스는 생산이 늘면서 대중식당에서도 장만할 수 있는 간편한 그릇이 되었고 밀가루의 대량 보급과 고춧가루 생산증대는 공장에서 싼값으로 만든 고추장을 시중에 퍼뜨릴 수 있었다. 여기에 산란계 산업이 성장하면서 70년대 들어 달걀이 더이상 짚꾸러미에 고이 포장되어 농가에서 나오던 방식을 벗어났으니.

지금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이다. 한때 꼬막비빔밥을 파는 프랜차이즈가 생기기도 했지만 남도의 육회비빔밥은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에 여러 번 소개되면서 강력한 팬덤까지 생겼다. 한우를 생고기로 비비는 음식이 대중화된 건 역시 시대의 반영이다. 남도음식의 전국적 인기, 신선유통의 신뢰, 별미를 찾는 식도락이 빚어낸 신 비빔밥 문화인 셈이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