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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기행] 한국민화뮤지엄…민화 속 세상을 찾아서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소재…2015년 개관
민화 총 5천 여점 소장 ‘국내 최대 규모’
영어·프랑스·일본·중국어 해설도 가능
매년 민화공모전 개최…계승·발전에 앞장
2024년 04월 04일(목) 08:30
한국민화뮤지엄 1층 상설전시실 전경.
전문가의 유익하고 재미있는 해설과 작품을 통해 옛날로 ‘시간여행’ 할 수 있는 민화박물관이 강진에 있다. 바로 강진 대구면 청자촌길에 위치한 ‘한국민화뮤지엄’이다. 민화 수집은 물론 민화 연구와 전시기획, 관련 도구 및 상품개발 등으로 민화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민화는 조선시대 왕족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그릴 수 있었고 소유할 수 있어 당시의 사회·경제·문화상을 들여 다 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 자료이다. 다만 다른 유물에 비해 뒤늦게 가치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 다소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한국민화뮤지엄’은 지난 2015년 강진군이 건립한 공립박물관으로, 현재는 오슬기 관장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또 ‘한국민화뮤지엄’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국내 최초의 민화박물관인 ‘조선민화박물관(관장 오석환)’과 자매 박물관이며, 오석환 관장과 오슬기 관장은 부녀지간으로 민화의 계승·발전 및 대중화에 2대가 앞장서 오고 있다. 미술사 전공자인 오슬기 관장은 조선민화박물관 학예실장으로 근무하다, 개관 당시 강진군의 요청에 따라 지금까지 박물관을 운영해 오고 있다.

한국민화뮤지엄의 특징은 국내 최대 규모인 민화 5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도슨트를 통한 작품 해설, 직접 민화를 그려볼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이라는 점이다.

또 4D 체험장을 통한 가상 체험 그리고 민화 그리기 재료와 교구재·책·굿즈 등 다양한 상품을 자체 개발하는 등 박물관의 역할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오슬기 관장은 “우리 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많아 독특하고 특징 있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순환전시를 하고 있으며, 방문객 중에는 몇 가지 주요 작품을 다시 보고자 하거나 전시 안 된 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 방문객들의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다”고 밝힌다.

민화 수집은 해외 출장 또는 해외 경매사이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지금까지 민화인지 잘 모르고 간직돼왔던 작품 등을 구입하고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소장하게 된 작품 5000여 점을 주기적으로 순환전시 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1·2층에 총 4개의 전시실이 있다. 1층에는 민화 상설전시실을 비롯해 민화 체험장·4D 영상체험실·뮤지엄 샵 등이 있으며, 상설전시관에는 소장 작품 중 200여 점을 분기마다 바꿔가며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기획 전시실·생활민화전시실·춘화전시실·자료실 등이 있다. 기획전시관은 주로 현대 민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1년에 8~16건의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또 19세 이상의 방문객만 관람이 가능한 춘화전시실에는 국내·외 작품 수 십여 점이 전시돼 있다. 모든 전시실에는 세계적으로 특허 된 조명을 설치해 작품 손상을 방지하고, 작품에만 조명함으로써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여 전시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같은 세심한 배려 덕분인지 작품을 접할 때마다 도슨트의 해설과 함께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분위기이다.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작품으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호작도, 어변성룡도, 낙화병풍, 효도, 책거리도.
전시 작품 중 각별한 특징이 있거나 관객들의 시선이 많이 쏠리는 작품으로 오 관장이 선택한 6점을 소개한다.

먼저 호랑이와 까치, 소나무를 소재로 한 작호도(鵲虎圖)이다. ‘좋은 소식 불러오고 액운은 막아 준다’는 뜻으로 정월 초하루 대문 앞에 붙이는 문배그림이다. 특히 전시된 작호도는 관객이 작품 속 호랑이 눈을 보면서 이동하면 호랑이 눈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으로 작호도 중에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다음은 책과 다양한 기물을 그린 책거리도 병풍으로, 대부분 짝수로 8폭인데 전시된 작품은 7폭으로 현재 남은 1점의 그림을 찾고 있는 중이다. 7폭 중 미국 순회전 때 미국인들의 인기를 끌었던 그림으로 ‘노름판에 시간을 허비하면 이무기가 되어 땅에 떨어지고, 책을 많이 읽으면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뜻을 담은 내용을 한 폭이 시선을 끈다.

다음으로 소개된 작품은 인두로 그린 낙화(烙畵) 10폭 병풍이다. 낙화 대부분은 나무에 그려져 있는데 반해 전시 작품은 모두 종이에 그린 것이 특이하다. 불에 달궈 뜨거운 인두를 한지에 그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희귀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어 한국민화뮤지엄 작품 중 관객들의 인기 작품 중 하나인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이다.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등용문의 고사를 담은 것으로 입신출세와 시험합격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선비를 뜻하는 잉어가 여의주(장원급제 상징)를 물기 위해 물 속에서 도약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어, 과거를 앞둔 친구나 지인에게 선물로 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다음은 부엉이를 소재로 한 효도. 의외로 흔치 않은 민화로 박물관 소장 작품 중 유일한 효도이며, 밤에 눈을 뜨고 있어 재물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뜻으로 곳간에 주로 붙이는 그림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산신도(山神圖)를 꼽는다. 절이나 사당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산신도는 일제강점기 때 가장 많이 도난 당했으며, 도난품인 것을 숨기기 위해 제작년도 등 기록을 삭제한 게 많다고 한다. 하지만 박물관의 작품은 1856년 제작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현재 전남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특히 비싼 돌가루를 사용해 빨간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2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중인 현대민화 작품전으로 이정윤 작가 작품(사진 위)과 유순덕 작가 작품(아래).
한국민화뮤지엄 2층 기획전시실은 현재의 민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등 민화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1년에 최소 8회부터 최다 16회의 특별전시를 기획하면서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이정윤 작가와 유순덕 작가의 초청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5월 말까지 열릴 예정이다.

오 관장은 “홍대 동양화 전공한 이정윤 작가는 장생도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사슴을 인간의 영혼에 빗대 청록색을 활용해 현대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균형의 숲’이라는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중견작가인 유순덕 작가는 전통적으로 민화에 많이 사용하는 호랑이와 닭의 도상을 팝 아트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년 대한민국민화공모전도 개최해 민화에 대한 계승 발전에 앞장서고 있으며, 수상작에 대한 전시회도 열고 있다.

또 한국민화뮤지엄은 민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단 한 명의 관람객이라도 도슨트가 함께하며 작품에 대해 재미있는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영어·프랑스·일본·중국 등 외국어 해설사가 대기하고 있어 외국인들도 충분한 작품 감상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민화뮤지엄은 작품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직접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관람 후 직접 그릴 수 있는 체험실을 마련해 어린이·성인 등 누구나 민화를 직접 그려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가상의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박물관 인근 지역을 둘러 보고, 또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가상 체험이 가능한 4D 체험관도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민화 그리기 재료, 민화 도서, 민화 굿즈, 교구재, 생필품 등 다양한 상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오 관장은 “과거의 민화를 계승하면서 오늘날의 민화를 새롭게 선보이고, 내일의 민화를 내다 볼 수 있는 박물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계속 연구하고 기획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면서 “관람객들이 민화에 대해 재미있고 친근한 느낌을 받아 부담 없이 자주 찾아올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가꿔가겠다”고 밝혔다.

입구에 들어서면 양 쪽 벽 위에 어진화가 석지 채용신 선생의 작품 두 점이 걸려 있어 박물관의 깊이를 말해주는 듯한 한국민화뮤지엄에 ‘살아있는 박물관’ 체험을 갖고자 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기를 기대한다.

/글·그림=서승원 기자 swseo@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