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사람 손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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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사람 손이 귀하다
2023년 09월 20일(수) 23:00
예전에 일본 취재를 간 적이 있다. 밤에 출출해서 숙소 밖을 어슬렁거리는데, 멀리서 ‘짬뽕’이라고 쓰인 집이 보이는 게 아닌가. 뜨거운 국물이 당기던 참에 얼른 가봤다. 넓은 식당에 어린 직원 혼자 졸고 있다가 나를 맞았다. 짬뽕 한 그릇을 주문하자 그는 웍에 재료를 넣고 볶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계의 스위치를 켰다. 놀랍게도 짬뽕 재료 볶는 기계였다. 원통형 몸통 안에 재료를 넣고 볶는데, 원통 사이로 타오르는 불이 들어가서 ‘불맛’ 내는데 손색이 없었다.

10년도 넘은 일이었다. 당시엔 신기하기만 했다. 숙련된 기술자 없이, 인건비를 줄여서 음식을 만드는 데 최적이었달까. 그래도 기계에 맛을 맡긴다는 건 그다지 신뢰도 높은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코로나가 진정되고 전세계에서 식품 관련 전시회가 다시 열린다. 여러 카테고리 중에 기계분야도 있다. 이 쪽의 화두는 역시 사람 대신 요리를 해내는 기계다. 과거에도 여러 식품기계가 있었지만, 사람의 기술을 대신한다기보다 힘쓰는 일을 맡는 게 주종이었다. 요새 기계는 아주 섬세해졌다. 앞서 짬뽕 볶는 기계도 진화를 거듭해서 거의 사람이 볶는 것과 차이가 없는 제품이 나온다. 일본에서 가장 예민한 요리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초밥도 기계화되고 있다. 만두도, 김밥 싸는 기계도 나왔다.

요새 홍콩의 명물 딤섬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 많다. 딤섬은 만두만을 뜻하지 않지만, 상당 몫이 만두이기는 하다. 만두는 고단하게 반복된 작업을 해야 한다. 당시 홍콩은 독립된 지역이었고, 외곽의 중국 본토에서 온 싼 임금의 이주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그 일을 해왔다. 20년 전 쯤 홍콩 취재때 만난 한 딤섬 요리사는 “하루 14시간 이상, 1년에 거의 쉬지 않고 일해서 고향에 돈을 부친다”고 했다. 그런 싼 임금의 성실한 외부 노동자의 힘으로 홍콩 딤섬의 저렴한 값과 품질을 지켜왔던 건 사실이다. 이제는 홍콩에서도 더 이상 아주 싼 임금 노동자를 확보하기 어렵다.

만두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한류 음식 수출로 대박을 친 한 재벌회사 만두도 자동화 기계의 발전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었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사람 손에 필적하게 정교하고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며, 유지 보수비도 적게 드는 기계는 이제 요리를 대신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이미 떡볶이 같은 단순 작업은 로봇도 할 수 있다. 인간 서버를 대체하는 로봇을 식당에서 흔하게 본다. 식당가의 공통 화제는 손님이 없다가 아니라 ‘일할 사람이 없다’로 압축되고 있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기사가 있었다. 여의도 한 식당에서 ‘월 350만원을 줘도 지원자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댓글의 요지는 이랬다. “주 6일에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350만원 주는 게 결코 높은 임금이 아니다. 게다가 이 식당은 장사가 잘되어 일이 엄청나게 힘들다. 350만원이 결코 많지 않으니 지원자가 없는 것이다.” 맞다. 시급 기준으로 해도 그다지 높지 않다. 게다가 노동 강도도 높고, 근무시간이 길어서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요새 식당이나 술집은 하루 종일 일하는 업종은 인기가 없다. 저녁 장사, 즉 주로 술을 팔며 점심 장사를 안 하는 집이 그나마 직원 구하기 유리하다. 근무 시간이 짧아서다. 점심과 저녁을 모두 파는 일반적인 식당은 아침 9시에는 출근해야 하고 밤 9시가 넘어야 일이 끝난다. 중간에 좀 쉰다고 해도 가게에 거의 종일 묶여 있다고 느낀다.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에 외면받기 딱 좋다.

예전에야 평생 먹고 살 기술을 배운다는 명분과 절박감이 있었다. 이제 요리 기술은 사람에게 직접 배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유튜브도 있고 온갖 요리책과 인터넷 레시피가 있다. 더구나 지금 한창 요리를 하는 젊은 세대의 출생 숫자는 나이 든 우리 세대에 딱 절반밖에 안된다. 그러나 식당 숫자는 전국적으로 여전히 50만 개를 넘나든다. 사람 손이 귀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변화는 도처에서 느낄 수 있는데, 식당도 마찬가지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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