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실리외교와 이념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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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실리외교와 이념외교
2023년 09월 14일(목) 00:00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외교의 하책(下策)은 이념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상책은 국익을 우선하는 실리외교다. 조선의 군주 중 인조는 이념외교의 대표격이고 광해군은 실리외교의 대표격이다. 광해군 때 중원을 차지한 한족(漢族)의 명(明)과 만주족의 후금(後金:청)이 다퉜다. 만주족 누루하치는 1616년(광해군 8년) 흩어진 부족들을 통합해 후금을 건국했는데 후금이라는 국호는 약 5백여 년 전 한족의 송(宋)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던 금(金:1115~1234)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뜻이었다.

명은 조선에 군사를 파견해 후금을 협공하자고 제안했다. 명은 불과 20여 년 전의 임진왜란 때 군사를 보내 일본군과 싸웠던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은 후금과 명의 전쟁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조선이 중원을 지배하지 못할 바에야 중원의 패권을 장악하는 쪽과 국교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당파를 막론하고 모든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파병을 주장하자 할 수 없이 재위 11년(1619)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여 명의 군사를 보냈다. 강홍립의 조선군은 후금과 첫 전투에서 이겼으나 뒤이은 전투에서 패전했다. 강홍립은 전멸을 택하는 대신 항복해서 병사들을 보호하는 길을 택했다. 강홍립은 조선군의 참전이 광해군의 자의가 아님을 누르하치에게 설명했고, 누르하치는 조선의 사정을 이해하고 동정을 표시했다. 후금에 억류된 강홍립은 광해군에게 몰래 밀서를 보냈고 이 밀서 덕분에 조선은 후금의 동정을 샅샅이 알 수 있었다.

광해군은 국교회복을 원하는 일본과도 과거의 은원을 묻어둔 채 수교에 응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 동부 쪽의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정권을 장악했다. 이에야스가 임란 때 자신은 군사를 파견하지 않았다면서 수교를 요청하자 광해군은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을 도굴한 범인 인도를 요구했다. 도쿠가와 막부가 대마도의 죄수 두 명을 인도하자 이들을 효수하고 국교를 수복했다. 광해군은 물론 이 두 죄인이 도굴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둘의 효수로 명분을 살리고 수교한 것이다.

정권을 빼앗긴 서인들은 광해군의 이런 실리외교를 임금의 나라 명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고 광해군 15년(1623) 계해정변(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를 옹립했다. 인조와 서인정권은 실리외교를 전면폐기하고 ‘명을 받들고 청에 반대’하는 숭명반청(崇明反淸)노선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가 인조 5년(1627)의 정묘호란과 인조 14년(1636)의 병자호란이었고, 인조는 삼전도 치욕을 겪어야 했다.

지금 윤석열 정권의 외교행보를 광해군의 실리외교의 재연이라고 보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공산 전체주의’ 같은 용어 사용에서 보여지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냉전적 사고로 외교를 다루는 듯하다는 점이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치켜세우고 우리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비하했는데도 돌아온 것은 혼밥이었던 것과 사드배치 보복 등이 겹치면서 반중감정이 크게 확산되었다. 자국을 역사의 중심으로 보지 못하고 주변부로 본 문재인 정권의 외교관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한미동맹에 일본까지 끌어들여 동맹으로 승격시키려는 윤석열 정권의 이념외교를 합리화시켜주지는 않는다.

북한을 적으로 간주해서 미국과 일본을 끌어들이면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을 끌어들이게 되어 있는 것이 이 땅이 가진 지정학적 구도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파마스톤 총리는 “우리에겐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구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고 영구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다”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과거 적국이었던 미국과 최고수준의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홍범도 장군이 순국했던 1943년 당시 임시정부의 자리에서 소련은 미국·영국·중국과 함께 동맹국이었다. 그런 홍범도 장군에게 철지난 ‘공산주의자’ 딱지를 씌우는 현 정권 사람들에게 역사를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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