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출신 박송아 작가 첫 소설집 ‘마지막 서커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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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 박송아 작가 첫 소설집 ‘마지막 서커스’ 펴내
2023년 09월 04일(월) 17:35
기성세대들은 어린 시절 가끔씩 동네에서 열리던 서커스를 보곤 했다. 농한기 때면 마을 공터나 논바닥에 서커스 천막이 쳐지고, 마을 회관에는 공연 포스터가 붙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가 보았던 서커스는 추억과 함께 아련한 향수로 남아 있다.

화려한 액션과 신들린 듯한 단원들의 묘기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어떤 것도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신들린 손짓과 몸짓이 그려내는 연기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고 완벽했다.

첫 소설집 ‘마지막 서커스’를 펴낸 광주 출신 박송아 작가.
그러나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들의 묘기 이면에 드리워진 슬픔과 아픔을. 겉으로 드러나는 마술과 달리 더러 삶은 마술이 아닌 신산함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박송아 작가가 첫 소설집 ‘마지막 서커스’(아시아)를 펴냈다. 작품집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서커스는 서커스인데 마지막이라, 분명 작가는 우리 삶의 어떠한 본질이나 모습을 ‘서커스’라는 키워드로 상징화했을 거였다.

“저는 늘 서커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화려한 조명과 무대에서 기이한 마술과 곡예를 펼치는 광대와 동물, 웃음과 찬사로 이어지는 공연 이면에 존재하는 상처와 슬픔이 마치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201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2022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선에서 유력 문학상 수상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는 작가에게는 ‘공백’이 아닌 ‘내공’을 기르는 훈련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개인 소설집 발간을 위해 노력했지만 출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그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박 작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였다”며 “할머니는 제가 글을 쓰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지지해주셨던 소중한 분이었고 교감하며 존경했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첫 소설집 ‘마지막 서커스’를 발간한 박송아 소설가.
박 작가는 학부 때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 이후 문예창작학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는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다. 현재는 대학에서 강의를 병행하며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작품집 표제작 ‘마지막 서커스’는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세 명의 인물들과 버려진 그들을 ‘진짜’ 아버지처럼 받아들여준 ‘가짜’ 아버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장애를 가진 세 명에게 서커스 공연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비난과 처벌을 받게 된 ‘가짜’ 아버지는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떤 준비를 마련해준 것일지 모른다.

또 다른 작품 ‘배꼽의 기원’도 작가의 상상력과 직관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한편으로는 페이소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배꼽이 간지러워지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 버릇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결국에는 혼자 남게 돼요. 주인공이 스스로 죽음을 원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의 원인이 아버지인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태어난 이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결국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절박한 분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잿빛의 우울함만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노태훈 문학평론가는 추천사에서 “박송아의 세계가 절망으로만 점철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약자들이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악다구니를 쓰면서도, 구원을 외치면서 폭력과 죽음을 방조하고 자행하는 와중에도 다시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기 때문이다”고 평한다.

박 작가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냐’는 물음에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끝까지 읽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오고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글이었으면”한다는 말에서 향후 작품의 방향이 가늠되었다.

그는 예전에는 소설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소원’으로 생각한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소설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마치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쁘고 감사할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줄 말을 권했더니 ‘마지막 서커스’에 나오는 말을 인용했다.

“‘당신이 누구든, 우리가 누구든, 다른 누군가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다시 말해 살아가는 일은 수많은 부딪침과 마주하는 일이지요. 오늘도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부디 타인의 무례한 관점과 태도 속에서 자신의 삶과 살아가는 방식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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