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서양의 삶과 풍습…흥미진진 ‘숨겨진 역사’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역사 이야기를 읽는 밤, 정기문 지음
![]() |
![]() ‘휴네퍼의 사자의 서’에 나와 있는 심장 무게 달기 의식. 저승의 신 오시리스는 저울 한쪽에 죽은 자의 심장을 올리고 다른 한쪽에는 깃털을 놓아 죽은 자를 심판한다. |
![]() 중세의 수레바퀴 형벌 |
스파르타 병사들이 전투 전에 머리를 손질한 이유는? 중세 귀족들은 왜 고기를 잘 썰어야 했을까? 결혼식장에서 신랑은 왜 신부의 오른쪽에 설까?
역사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는 없다. 역사는 당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물론 사고방식, 풍습 등을 담고 있다. ‘과거는 오래된 현재’라는 말처럼 지나온 역사는 바로 오늘을 있게 한 시간이다.
기원전 1100년경 삼손이라는 대장부가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맨손으로 짐승을 잡고 이스라엘을 농락하는 블레셋 사람을 꼼짝 못하게 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힘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알기 위해 미인계를 동원한다. 기생 들릴라를 통해 그 비밀이 머리카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삼손이 잠든 틈을 타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린다.
이에 반해 머리를 짧게 잘리는 것은 모욕이나 죄를 함의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형 직전 머리가 짧게 잘리는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역사는 가치 판단이 가능한 학문이자 이야기로 접근할 수 있는 문학이기도 하다. 교훈을 전달하기도 하고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서사로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군산대학 역사학과 정기문 교수가 펴낸 ‘역사 이야기를 읽는 밤’은 흥미롭고 이색적인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저자는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 등 역사를 모티브로 한 책들을 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해왔다. 이번에 펴낸 ‘역사 이야기를 읽는 밤’은 예전 만담꾼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구수하면서도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부터 로마제국, 중세, 근대에 이르는 서양인들의 삶과 풍습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기묘한 관습, 행동양식, 이색적인 법률 등에 얽힌 에피소드와 일화는 역사 이면에 드리워진 ‘숨겨진 역사’다.
중세시대 상류층은 현대인들보다 많은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짐승을 통째로 요리해 식탁에 올려놓고 잘라 먹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고기를 잘라 분배하는 일은 위엄 있고 교양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주인이 부탁하는 지체 높은 손님은 직접 고기를 잘라줄 만큼 고상한 행위였다.
18세기에 이르러서까지도 고기를 능숙하게 자르는 일은 식탁의 중요한 관례였다. 에라스무스는 “고기를 잘 써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일자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중대한 문제다. 17세기 런던에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모직산업이 발달하면서 양을 치기 위한 용도로 많은 면적의 땅이 수용되었고, 이로 인해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야 했다. 도시로의 이농현상이 극심해지면서 런던의 인구가 7배 이상 폭증했다는 기록도 있다.
도시 인구의 급증은 도시 빈민 양산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던 터라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국에서는 일자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 4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 시행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도박이나 술에 중독돼 죽어갔으며, 당시 대문호 토머스 모어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말로 당대 문제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책에는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한 편 한 편의 글들은 오래 전 할머니로부터 듣는 옛 이야기처럼 흥미로우면서도 호기심을 부추긴다. 또한 이야기 사이사이 당대의 문화와 문명, 인간의 삶과 행동 양식 등이 곁들여져 있어 읽는 맛을 더해준다.
<북피움·2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