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芝江) 양한묵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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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芝江) 양한묵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08월 21일(월) 00:15
“북악산은 짙푸른데 해거름에 올라서보니/ 무너진 성 십 리에 흰 연기만 피어나네./ 무성한 숲에 바람이 일어 나뭇잎만 떨어지고/ 깨진 누대 아래 쓸쓸하게 잠드네.”

얼마 전 광복절을 즈음해 일제강점기 해방의 꿈을 노래했던 지강(芝江) 양한묵 선생(1862~1919)의 한시집 ‘청산’(나무자전거)이 발간됐다. 양현승 전 국민대 글로벌인문지역대학 한국어문학부 교수가 번역한 작품집은 국권침탈기 역사의 격랑 속에 묻혀 있던 지강의 보석 같은 한시들을 담고 있다.

위의 시 ‘8월에 북악에 올라 벗과 창화하다’(3)는 빼앗긴 나라의 실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양한묵이 천도교 도사로 있으면서 ‘천도교회 월보’(1911년 6월호~1919년 1월호)에 약 8년여에 걸쳐 연재한 한시 작품 가운데 하나다. 해가 저무는 무렵 친한 벗과 북악에 올라 멀리 저편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읊은 시다. 무너진 성을 따라 피어나는 흰 연기는 일제에 짓밟힌 처참한 조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남에서 태어나 화순에서 성장했던 양한묵은 전남 유일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손병희 선생을 보필해 천도교인들을 영도하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선포했지만 이후 일경에 체포된다. 안타깝게도 선생은 서대문 감옥에서 암살을 당했는데, 33인 중 유일하게 옥중에서 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을 번역한 양현승 교수는 “청산은 지강 선생이 찾았던 대한독립이고 이상향이며 무한 에너지 원(源)인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해하는 과정에서도 ‘푸른 산’으로 하지 않고 한자음 ‘청산’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우리의 민요를 비롯 전통 시가 문학에서도 자주 쓰이듯이 시적인 의미를 더 깊고 넓게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했다.

일제강점기 지조가 남달랐던 문인들은 목숨을 걸고 시를 썼다. 매천 황현의 ‘절명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육사의 ‘광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대표적인 저항시들이다. 지강 양한묵도 독립운동사를 넘어 문학사적 관점에서도 저항시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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