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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닭고기
2023년 05월 31일(수) 22:00
광주 양동시장에 잘 가는 대폿집이 있다. 아, 그 시장 입구에는 육회를 살 수 있는 좋은 식육점도 있다고 쓴 적이 있다. 하여튼 그 대폿집을 가려면 지도에도 안 나와서 다니던 감으로 찾아야 한다. 수산물 골목을 지나 닭전을 거쳐야 한다. 살아 있는 닭 냄새가 나면 제대로 찾아가는 중이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산 닭의 냄새를 나는 기억한다. 닭을 기르는 사람이 맡는 냄새가 아니라. 닭전에 수용된 산 닭의 냄새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소, 돼지, 닭의 도축 문제를 고심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미 서울 시내에 있는 도축장을 외부로 옮기려고 계획했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시내에 많은 현방이 있었다. 현방이란 소를 잡고 매달아(懸) 파는 가겟방(房)을 의미했다. 정부에서 반합법으로 허락한 전문가들의 장소였다. 반합법이란 것은 조선은 소 도살을 금지하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이 먹었다. 그래서 노비 계급이 운영하는 현방은 ‘불법으로 소를 잡되’ 대신 속전, 즉 벌금을 냈다. 일종의 조선시대식 편법이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과태료를 내면서 그냥 불법적인 일을 계속하는 것인데 이 시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조선시대 소 잡는 일은 사실상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소 현방, 도살장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마장동, 독산동까지 갔다가 이마저도 폐쇄되고 더 외곽, 즉 경기도로 옮기게 된다. 마장동과 독산동은 이제 도매시장 역할을 한다. 광주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닭은 도축법 같은 걸 적용받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가용으로 길러서 닭 잡는다고 고발당하지도 않았다. 처리가 깔끔하고,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을 못 잡게 한 지 이미 50여 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다툼이 있다. 특히 토종닭 등을 잡아서 즉석에 팔아 생계를 잇는 식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별도의 법률이나 조례로 토종닭 등을 소규모로 도축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현장과는 괴리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18년부터 전통시장 등의 인근 지역에 소규모 도계장 설치 지원을 추진해 왔지만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하여튼 닭도 도축법의 적용을 받아서 산 닭을 잡지 못하게 된 것이다. 조류 독감 문제도 여기 끼어 있어서 복잡한 일이다.

닭고기의 위생 처리를 위한 관의 개입은 1970년대 중반에 이미 본격화되었다. 1975년 9월 농수산부는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성남 등 7개 도시에서는 닭을 재래식 방법으로 잡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산 닭 즉석 도축은 이어졌다. 지금은 양계장 닭으로 100퍼센트 육계가 공급되는데, 오랫동안 닭 시장은 달랐다. 수집상이 시골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닭을 샀다. 온갖 품종이 섞여 있었다.

“빨간 닭, 노란 닭, 검은 닭 등 온갖 닭이 다 있었고 그렇게 산 닭을 철망에 넣어 배로 운반해서 인천까지 와서 팔았다.” 한 시장 닭전 주인의 증언이다.

1981년 정도가 되면 단속이 심해진다. 산 닭을 진열해서 팔기 어려워진다. 닭의 부산물을 우리가 거의 먹지 않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도축장과 소비지의 거리가 멀어지고, 산 닭을 바로 잡지 않으니 내장은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워졌다. 산 닭 시절에는 모래집, 간, 내장, 닭발 등을 알뜰하게 챙겼다. 닭 내장 전골집도 참 많았다. 일반 전골에 비해 아주 쌌기 때문에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참 찾기 어렵다.

닭은 개화기에 선교사, 일제 강점기엔 서양 닭 품종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토종닭보다 알을 많이 낳고 살이 빨리 찌는 품종을 도입한 것이다. 토종닭은 일 년에 100개 미만의 알을 낳지만 현재의 산란계 품종은 거의 300개까지도 알을 낳는다. 매일 낳는 셈이다. 프라이드치킨으로 쓰는 육계도 엄청나게 빨리 자란다. 육종, 사료 발달로 불과 30일도 안되어 시중에 풀린다.

닭고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단백질 부족 시대를 더 오래 견뎌야 했을 것이다. 소와 닭은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먹는 만큼 고기로 돌려 주는 비율이 적다는 뜻이다. 그만큼 수입 비율도 높다. 소비에 비해 기르는 일이 따라가지 못한다. 닭은 그런 면에서 가난한 우리들에게 효자 육류였다. 자급률이 아주 높다. 가공용을 빼면 사실상 자급도 가능하다. 오늘도 우리는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와 닭칼국수와 백숙 한 냄비의 즐거움을 누린다. 좋은 닭을 키우고, 닭고기 요리를 만드는 많은 요리사들에게 고맙다. 닭고기 만세다.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