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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열사의 비장한 외침 헛되지 않도록
‘5·18법’과 ‘전태일 3법’ 처리해야
공정과 평등에 여전히 목마른 사회
2020년 11월 18일(수) 06:00
논설실장·이사
올해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에 대한 국민적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발단은 이른바 ‘조국 사태’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자녀들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여기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논란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올 들어 본격화된 재판에서 조 전 장관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고, 추 장관 아들 논란은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물론 해당 사안들이 ‘검찰 개혁’ 추진 과정에서 잉태됐고, 진영 논리에 따라 부풀려진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노출된 불평등·불공정의 여러 단면은 젊은이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6월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파견근로자 신분이던 보안 검색 직원 1902명을 ‘청원 경찰’ 형태로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하면서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을 재소환했다. 이들 사례는 우리 사회가 공정과 평등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다. 5·18 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이후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세월이 지났건만,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은 여전히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종사자들이 잇따라 과로로 쓰러진 것이다. 올해에만 벌써 열세 명이 희생됐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터넷 쇼핑이나 배달을 통한 언택트 소비가 급증한 탓이다.

지난 5월 광주의 한 택배회사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갑자기 의식불명에 빠져 숨졌고, 한 달 뒤에는 목포에서 택배 노동자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택배 물량이 30% 이상 폭증한 가운데 분류 작업과 배송까지 날마다 14~15시간씩 일하다 과로사 했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우리가 클릭 한 번만으로 원하는 물건을 집에 앉아서 받는 편리함을 누리는 이면에, 택배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조건과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한계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또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이른바 ‘김용균법’이 시행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설비에 끼이거나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2년 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운송 설비 점검을 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됐지만 사고의 핵심 원인이었던 위험 업무의 하도급을 일부 용인하면서 일터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 매년 산업재해로 숨지는 노동자는 2000여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망률이 가장 높다.

만약 이러한 현실을 윤상원과 전태일 열사가 보았다면 얼마나 통탄했을까.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불의에 맞섰던 광주의 윤상원 열사, 그리고 70년대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대구 출신 전태일 열사. 이들이 가신 지 벌써 40~50년이 지났다. 지난 11월 13일은 전 열사 50주기였고 지난 5월 27일은 윤 열사 40주기였으니.

그들은 민주화와 산업화의 제단에 목숨을 던져 ‘시대의 들불’이 되었다.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 열사의 마지막 외침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것이었다.(‘전태일 평전’, 조영래) 윤 열사도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비장한 말을 유언처럼 남긴 뒤 생을 마쳤다. 노동운동을 하며 사회 변혁을 추구했던 그들이 염원한 건 정의·공정·평등의 가치가 강물처럼 흐르는,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두 열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며칠 전 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먼저 광주시 광산구 신룡동(임곡) 천동마을에 있는 윤 열사의 생가 ‘해파재’(海波齋). 담벼락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아버지께 보냈던 편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뒷마당에는 들불야학에서 함께 활동했던 그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새겨져 있다.

전 열사의 분신 현장인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도 둘러봤다. ‘전태일 다리’(버들다리) 바닥에는 시민들이 추모와 다짐을 새겨 넣은 동판 4000여 개가 빼곡했다. 다리 중간에는 열사의 반신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전 열사는 죽어서도 평화시장과 청계천 일대를 굽어보며,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염원하고 있는 듯했다.

전 열사와 윤 열사는 생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윤 열사는 전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시대를 이끈 양심으로 시공을 초월해 끈끈히 이어져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살려 광주시와 대구시가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펼친다면 영호남 화합은 물론 국민 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의 마지막 비장한 외침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 것인가? 50년 전에 비하면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긴 했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전체 사업장의 6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350만 명은 근로기준법에서 배재돼 있다. 대리운전 기사, 택배 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 200만 명도 기본적인 노동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원청 기업의 책임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위험의 외주화’로부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 등 이른바 ‘전태일 3법’이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됐다. 법안 제정을 위한 국회 입법 청원에는 10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국민적 공감대도 폭넓게 형성됐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야 모두 겉으로는 ‘전태일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법안 처리에는 미온적이다.

‘노동 존중 사회’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5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전 열사에게 최고 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훈장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전 열사의 염원이 담긴 ‘전태일 3법’부터 초당적 협력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진실로 그의 외침에 응답하는 정치권의 자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윤상원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5·18 진상 규명과 왜곡 처벌을 위한 특별법 및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 법안 처리다. 이들 법안은 이번 정기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