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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여왕이 들려주는 명곡들 속 애틋한 이야기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추억으로 가는 당신
주현미 지음
2020년 05월 22일(금) 00:00
가요 ‘봄날은 간다’는 젊은 날엔 봄인 줄 모르고 살다 문득 돌아보면 떠오르는 그런 노래다. 강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풍경. 이보람 ‘벚꽃’ 일러스트. <쌤앤파커스 제공>
이맘때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가사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다. 먹먹함과 쓸쓸함, 애잔함이 밀려온다.

가수 주현미는 오래 전부터 이 노래를 부를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젊은 날 봄인 줄 모르고 바쁘게 살다 문득 돌아보면 떠오른다는 그 노래.

바로 ‘봄날은 간다’이다. 가수 전영록의 모친 백설희가 부른 노래로, 1953년 박시춘 작곡가가 곡을 만들었다. ‘슬프면서 허탈한 감정을 체념한 듯 담담하게 풀어낸’ 가사는 오랜 흑백 사진 같은 울림을 준다.

“연분홍 치마, 새파란 풀잎, 열아홉 시절은 세월 따라 흘러갑니다. 우리는 그 빛나던 청춘을 슬픈 마음으로 떠나보냈지만, 다시 꽃이 피고 별이 뜨고 새가 날 때를 기다립니다. 봄은 가지만 또다시 봄은 오니까요. 우리 가요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봄날은 간다’, 눈을 감고 따라 불러보면 좋겠습니다.”

‘트로트의 영왕’ 주현미가 들려주는 불후의 명곡 50선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됐다. 한국가요 100년, 주옥같은 명곡들에 얽힌 이야기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 바로 그 것. 주현미는 한국가요 100년사를 들려주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음악 인생을 이야기한다. 글과 음악 오디오가 결합된 책에는 QR코드가 있어, 누구든 명곡을 감상할 수 있다.

주현미가 들려주는 명곡들은 공통적으로 애틋하다. ‘봄날은 간다’의 작사가 탄생한 배경은 이렇다. 미술을 좋아했던 손로원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청상(靑孀)의 어머니는 아들의 방랑을 말없이 지켜보며, 늘 아들을 그리워했다. 죽기 전 어머니가 유언처럼 남긴 말은 노래 모티브가 됐다. “로원이 장가드는 날 나도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장롱에서 꺼내서 입을 거야. 내가 열아홉에 시집오면서 입었던 그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손로원은 어머니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봄날은 간다’라는 가사로 탄생하기에 이른다.

전쟁 나간 오빠를 대신해 나룻배를 젓는 소녀의 이야기 ‘처녀 뱃사공’도 애달프다. 1958년 윤부길이 가사를 썼다. 그는 윤항기와 윤복희의 부친이다. 윤부길은 어느 날 공연을 위해 낙동강을 건너다, 뱃사공이 처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자매가 교대로 노 젓는 일을 하는데, 사연인즉 군에 입대해 소식이 끊긴 오빠를 대신해 나룻배를 운행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훗날 여동생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오빠는 전쟁 중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손인호가 불렀던 ‘비 내리는 호남선’은 발표 당시엔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 출마했던 신익희 선생이 선거를 앞두고, 호남선 열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작스럽게 숨진다. 국민 지지를 받던 민주당 후보가 사망하면서 정권교체는 무산된다. ‘비 내리는 호남선’ 가사와 맞아떨어지면서 공전의 히트를 친다.

작곡자 박춘석과 작사가 손로원이 경찰에 불려가 고초를 당한 건 불문가지다. 그러나 이들은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시기 1년 전 노래를 만들었다는 증거를 제출하고 풀려난다. 나중에 신익희의 사인은 뇌일혈로 밝혀진다.

책에는 주현미의 히트곡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담겨 있다. 올해로 데뷔 35주년을 맞아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 탄생하게 된 얘기를 풀어놓았다. ‘비 내리는 영동교’는 남국인이 작곡을, 그의 아내 정은이가 가사를 붙였다. 노래는 강남일대가 개발되던 시대를 담고 있을 뿐, 강남발전과는 상관이 없다. 단지 “연인과 이별한 여인이 슬퍼하며 밤비 내리는 영동대교 위를 걷고 있는 내용”이 가사의 줄거리다.

또한 주현미는 ‘선창’, ‘비 내리는 고모령’, ‘불효자는 웁니다’ 등 전통가요에 담긴 사연도 풀어놓는다. 무대 뒤편의 일화, 가수 주현미가 있기까지 남편을 비롯한 가요계 인사들과의 추억도 담겨 있다.

“철들기 전부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가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 지도 모른 채 따라 불렀지요. 옛 노래들이 언제부터인가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떠올리고 ‘남쪽 나라 내 고향’은 어디쯤일까 궁금해지고 허리춤에 달아주는 ‘도토리묵’은 어떤 맛일까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제야 그 노래들을 제대로 불러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한 곡 한 곡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쌤앤파커스·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