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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한방에 무너진 인간의 자부심 (298) 박쥐
2020년 01월 30일(목) 00:00
에셔 작 ‘천국과 지옥’
요즘 같은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전염병이 온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힘으로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자부심이 바이러스 한 방에 속수무책이어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한없이 작아진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원인 병원체의 숙주가 박쥐로 지목돼 새삼 박쥐가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에겐 낯선 일이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오래도록 박쥐를 길상물의 하나로 여겨왔고 도교에서 비롯된 신선사상에 의해 천년 묵은 박쥐를 잡아먹으면 장수한다고 믿어져서 식용으로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 조상들도 박쥐무늬를 식기나 의복, 장신구, 가구 등에 그려 넣어 복을 염원하는데 사용해왔다. 반면 서양에서 박쥐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 보인다.

네덜란드 출신의 초현실주의 작가 마우리치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는 대표작인 무한원형 시리즈 중 ‘천국과 지옥’(1960년 작)을 통해 숨은 그림처럼 찾을 수 있는 악마를 박쥐로 묘사하고 있다. 천사와 악마의 형상들이 4중 및 3중 회전축에 의해 중심에서 주변으로 한없이 축소 복제하면서 만들어지는 무한한 세계를 보여준다.

천사는 자신의 윤곽으로 악마를 만들고 악마는 그의 윤곽으로 천사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얼핏 흑백 문양의 나열로 보이지만 하얀 부분에 초점을 맞춰보면 성스러운 천사의 모습이, 검정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박쥐를 닮은 악마의 모습이 기괴하게 이어진다.

에셔는 도형을 이용해 빈틈이나 겹침 없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테셀레이션’이라는 대칭적 기법을 통해 “선과 악이라는 대립되는 관계도 파괴가 아닌 공존하는 관계”라는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했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박쥐는 식용으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주었지만 그 안에 무시무시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숨어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박사>